얼마 전 외신 보도에 따르면 세계 최대의 소프트웨어업체인 마이크로소프트사가 일본의 소니와 디지털 가전분야에서 전략적인 제휴관계를 체결한 데 이어 인텔과도 손을 잡아 관심을 끌고 있다. 세계가 이들의 제휴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것은 세계적 규모의 대기업인 이들 3개 회사가 각각 세계 최대의 소프트웨어 회사, 가전 메이커, 반도체 업체라는 상징성 때문만이 아니다.
조만간 정보가전분야의 최대 시장으로 부상할 디지털TV분야에서 이들이 두터운 세력권을 형성할 경우 운용체계 표준화 등 여러 연관분야에서 주도권을 거머쥘 것이 자명하고 그럴 경우 이 시장의 독점마저 우려되기 때문이다. 세계는 지금 미래 핵심산업으로 부상하고 있는 디지털 정보가전 시장에서 누가 먼저 기선을 제압하느냐를 놓고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그러나 국내 전자산업을 일으키는 데 원동력으로 작용한 가전산업은 이제 상당수 품목이 한계사업으로 전락하고 있는 상황이다. 최근의 내수부진은 갑작스럽게 일어난 돌출변수지만 수출분야 역시 채산성 악화와 전반적인 수요부진으로 어려움을 겪어왔다. 일부 성급한 시장분석가들은 몇년 내에 가전분야 수출품목의 상당수가 수익감소로 인해 생산기반마저 무너질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국내 가전산업의 이같은 상황은 빠르게 전개되고 있는 디지털 정보가전분야의 세계동향에 지금 당장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한다면 이 분야에서 우리는 영원한 후발국에 머무를 것이라는 위기감마저 감돌고 있다. 이같은 위기감은 디지털 정보가전 시장의 형성이 기존 전자산업과는 판이하게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는 특성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디지털 정보가전분야는 시장의 특성상 선두그룹을 형성하는 2, 3개 기업만이 전체 시장을 지배하게 될 것이라는 게 시장분석가들의 일치된 전망이다.
자본집약형 산업시대를 이끌어온 기존 가전산업이 대단위 설비투자를 필요로 하는 대량생산체제에 의해 주도됐다면 기술집약형 산업시대의 산물인 디지털 정보가전 산업은 핵심부품이나 핵심기술을 보유한 기업이나 집단만이 이 분야에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례로 아직 세계적으로 상품화 전단계에 있는 디지털TV의 세트당 가격을 5천달러로 볼 때 관련 특허료가 5백50달러로 이미 10%선을 넘어섰다는 것이 최근 관련업계의 추산이다. 톰슨을 비롯해 필립스, AT&T, 제니스, DSRC 등 6개사가 정률 1%씩의 특허료를 신청한 데 이어 관련기술을 보유한 업체들도 영상 및 오디오 압축, 멀티포맷분야에서 일정액을 특허료로 징수할 전망이다.
여기에 그래픽유저인터페이스나 운용체계 등 아직 특허료 산정을 하지 않고 있는 기술도 수두룩한 실정이다. 핵심기술을 보유하지 못한 기업이 이 분야에서 살아남기란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기 만큼이나 지난한 일이다.
이같은 상황에서 국내 전자업체들이 디지털 정보가전분야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갈길도 멀고 해야 할 일도 산적해 있다. 전자산업의 기존 구조를 전면적으로 개혁하는 길만이 유일한 대안이라는 자성의 목소리도 여기저기서 흘러나오고 있다.
이 분야의 국내 시장이 디지털 정보가전분야를 수용할 만한 시스템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이같은 상황에 대한 인식이 선행돼야 한다. 의식전환 없이 기존 체제로 새로운 디지털 정보가전 시장을 공략하려는 것은 더욱 큰 문제다.
디지털 정보가전은 가전업계의 전유물이 아니다. 통신이나 소프트웨어 등 정보통신분야와 기술적으로나 마케팅분야에서 유기적으로 결합되고 역할이 분담될 때만이 이 분야 시장을 주도하고 헤쳐나갈 수 있다. 국내 업체간에 분쟁이 있으면 조정하고 상호간에 협력하는 분위기가 조성되지 않으면 디지털 정보가전의 미래는 없을 것이다.
동맹세력을 확대하기 위해 보유기술을 공개하고 적과의 동침도 서슴지 않는 세계적인 기업들로부터 우리 기업이 배울 것은 너무나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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