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몸집의 유럽 정보기술(IT)시장이 그동안의 긴잠에서 깨어나 기지개를 활짝 켜고 있다.
본격적인 경제회복과 더불어 전자상거래의 급속한 확산,유럽 단일통화인 유러화의 출범,밀레니엄 버그(2천년도 컴퓨터 표기 오류와 관련한 문제) 대책 등 다양한 재료가 발생하면서 기업들이 시스템 교체를 서두르거나 막대한 전산예산을 집행함에 따라 유럽IT시장은 이제 부흥기를 맞게 된 것이다.
또 그동안 무서운 성장세를 보여왔던 아시아국가들이 최근 심각한 경기침체를 겪고 있는 데다 미국의 경우 극심한 가격경쟁으로 수익성 악화가 불가피한 상황이라는 점도 업체들의 관심을 유럽시장으로 돌리게 한 요인으로 작용한다.
이점에서 볼 때 올해 독일 하노버에 열린 「98 세빗」전시회에 여느 때보다 지대한 관심이 쏠렸던 것도 당연한 일. 물론 「세빗」이 미국 추계 컴덱스와 더불어 세계 양대 IT전시회라는 명성을 이미 얻고 있지만 올해는 규모면에서도 사상최대를 자랑하며 세계의 내로라하는 업체들과 바이어들을 한자리에 불러 모았다.
현재 상승세를 타고 있는 유럽 IT시장은 어느 한 분야에 국한되지 않는다. 인터넷 전자상거래에 대한 폭발적인 관심은 IT시장의 새로운 동력이 되고 있고 컴퓨터 하드웨어뿐 아니라 소프트웨어시장도 꾸준히 확대되고 있다. 또 통신시장 개방과 통신망 구축확산에 힘입어 이동전화업체들도 유례없는 호기를 맞고 있다.
이 결과 시장조사단체인 유럽 정보기술관측소(EITO)는 유럽 IT시장이 지난해 8.2%성장에서 올해 9.1%의 성장률을 기록하는 데 이어 내년에는 9.6%로 더 높아질 것으로 내다봤다.
전체 통신시장도 7.1%의 건실한 성장이 예상되는 가운데 특히 지난해 2백46억달러규모로 26%가 늘어난 휴대전화분야는 올해도 20%정도가 더 확대될 전망이다.
또 미국 시장조사업체인 IDC에 의하면 PC시장도 작년비 13.8%정도 늘어나면서 세계시장을 주도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러한 관측의 근거로는 유럽 기업들이 그동안 불황타개를 위해 과감한 구조조정을 단행하는 과정에서 조직과 인력을 축소하는 대가로 전산 환경 구축를 통한 경영효율화에 적극 나서고 있는 데다 오랜 침체에서 벗어난 대기업들이 경쟁력강화를 위해 새로운 시스템으로 무장하고 있는 점을 손꼽을 수 있다.
조직과 인력의 거품을 빼고 효율적인 경영을 위한 수단으로 전사적 자원관리(ERP) 시스템의 도입이 급속히 확산되고 협력업체 및 고객들과도 인터넷을 통해 거래하는 전자상거래이용도 크게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IDC는 유럽 전자상거래시장이 현재 3억4천만달러규모에서 오는 2천2년까지 무려 70배가 넘는 2백4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뿐만 아니라 내년부터 출범하는 단일화폐인 유러화도 IT업체들에게는 호재로 작용한다. 즉 유러화의 유통이 본격화되면 유럽 기업,금융기관들은 기존의 시스템이나 금전등록기를 그대로 사용하는 데는 많은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에 이를 해결하기 위해 대대적인 시스템 수정작업이 필요하다. 이와 관련한 비용은 밀레니엄 버그 해결비용과 거의 막멎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EITO에 의하면 올해 유러화 도입과 관련해 올해 IT분야에 대한 투자액은 지난해 1백억달러보다 2배가 넘는 2백3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일부 IT컨설팅업체들은 기업, 은행들을 대상으로 이미 본격적인 서비스작업에 나서고 있다. 게다가 밀레니엄 버그와 관련한 솔루션작업도 본격화되면서 새로운 전산 수요를 창출하리란 분석이다.
이처럼 유럽 IT시장이 활기를 띠면서 이 지역 매출비중도 크게 늘어나고 있다. 따라서 세계 IT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미국업체들은 앞다퉈 이 지역 사업을 대폭 강화하면서 경쟁체제를 갖추고 있다.
대표적 PC직판업체인 델 컴퓨터는 지난해 4.4분기에만 하더라도 유럽시장 매출 신장률이 61%라는 경이적인 수준을 기록함에 따라 앞으로 이 시장을 전략지역으로 삼을 방침이다.
세계 최대 네트워킹 장비업체인 시스코 시스템스도 조만간 유럽시장에서의 신장률이 미국을 앞지를 것으로 보이며 올해 30∼50%의 성장률이 예상되는 이 시장에 대한 투자를 더욱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세빗에 참가한 컴팩 컴퓨터의 에커드 파이퍼회장은 앞으로 중소기업 시장에 보다 역점을 두겠다며 그 출발점은 유럽이 될 것이라고 천명했다. 파이퍼회장은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유럽시장의 비중이 지난해 30%에서 올해는 40%정도로 높아질 것이라고 예상하면서 이 시장에 대한 각별한 애착을 보여 주었다.
애플 컴퓨터도 지난해 발표한 G3매킨토시가 유럽에서도 판매호조를 보인 데 힘입어 앞으로 디자인,출판,그래픽 분야에 대한 공략을 보다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G3는 지난해 11월 출시이후 유럽에서만 지금까지 10만여대가 팔려나간 것으로 전해졌다.
애플은 또 이 시장의 중요성을 고려,지금까지 미국에서 우선 시행하던 신제품 발표를 앞으로는 유럽과 일본에서 동시에 시행할 방침이다.
그러나 유럽이 세계 IT시장에서 기술주도권을 잡기 위해선 가야할 길이 아직 멀다. 비록 휴대전화기나 스마트카드 등의 일부 분야에선 미국을 앞서지만 전반적인 IT산업은 아직 미국에 많이 뒤져있다. 투자면에서도 미국기업들이 총자본의 3분의 1정를 IT분야에 투자하는 한편 유럽은 4분의 1에 그친다.
PC시장도 장및빛 일색이지만은 않다. 일부 대기업 고객들이 신규 시스템도입을 윈도98과 인텔의 저가 CPU출시 이후로 미룰 것을 고려중인 것으로 알려져 자칫 업체들의 수급전략에 차질을 빚을 수도 있다. 또 PC업체들이 일제히 유럽공략에 고삐를 당김에 따라 미국시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가격전쟁이 여기서도 재연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럽이 아시아와 미국에서 상처받은 업체들에게 또다른 기회를 제공해주고 있는 것만은 틀림없다.
<구현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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