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맨홀 (361)

김지호 실장은 통제실을 벗어나 옥상으로 올라섰다.

여명.

여명의 빛이 푸른 한강 물로 어리고 있었다. 서서히 아침이 밝아오고 있는 것이었다. 알맞게 찬 늦가을 바람이 정신을 맑게 했다.

통제실 건물 옥상에서 바라다 보이는 한강이 아름다운 빛으로 새벽을 열고 있었다. 통제실 바로 옆의 망원정(望遠亭) 앞에 줄지어 늘어선 버드나무가 벗겨지는 어둠을 따라 산들거렸다.

밝아오는 아침.

그 어느 때보다도 길었던 이틀.

김지호 실장은 담배 한 개비를 뽑아 물고 불을 붙인 다음 지난 이틀 동안을 되돌아보았다.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사고들이었다. 그것도 동시에 일어났다. 상식적으로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현실로 나타난 것이었다.

그리고 증명할 수는 없지만 확신할 수 있는 어떤 느낌에 대한 단서를 찾고, 그 끝을 잡기 위해 애썼던 시간들이었다.

무얼까. 정확하게 무엇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무언가 잡히는 대로 그 끝을 추적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는 것이다.

추적. 빨리 날이 밝고 시간이 지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독수리 형상이 그려진 칩이 문제가 아니었다. 통제실의 자동절체시스템 고장에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우리나라 통신망을 교란시키려 한 어떤 음모가 느껴지는 것이다. 그 음모의 한끝을 잡고 있다는 확신을 느끼는 것이었다. 모든 통신매체의 특성이 그러하듯 제한된 인력이 제한된 공간에서 이 업무를 수행하고 있고, 그 업무 또한 보편성이 없고 총체적이지 않은 상태에서 분야별로 업무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그 음모의 감을 누구나 감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어서 날이 밝고, 어떤 것이든 그 끝을 쫓고 싶은 것이다.

길게 담배를 빨아들이며 차츰차츰 변해가는 한강을 바라보았다.

붉은 기운이 강물에 실려 세상으로 번지고 있었다. 뽀얀 안개를 따라 조금씩 조금씩 세상을 깨워나가고 있었다. 강 건너로 물안개에 싸인 선유봉이 바라보였다.

선유봉에서 통제실이 자리하고 있는 이곳으로 지금부터 백여년 전 우리나라 최초의 통신선이 한강을 가로질러 가설된 것이었다.

김지호 실장은 길게 담배연기를 빨아들이며 붉은 빛으로 물들어가는 한강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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