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지적하는 것이지만 참으로 말이 넘쳐 흐르는 세상이다. 라디오를 들으면 말, TV에서도 말, 신문을 펼쳐도 말, 말들이 귀로 눈으로 밀려 들어온다. 그러나 정작 가슴속으로 스며 들어오는 말은 드물다. 말은 누구나 한다. 정치가는 이 나라의 장래와 민생을 두고, 지식인은 세상 이 구석 저 구석의 잘되고 못되는 일에 대해, 근로자 단체들은 어떻게 하면 땀 흘려 일하는 사람들의 소득과 복지를 개선할 수 있을까 하고, 그리고 소비자도 원하는 상품, 서비스, 가격, 품질에 관한 요구를, 모두 소리 높여 말 한다. 그러나 사실과 부합되는 말도, 오래 지켜지는 약속도, 옳은 판단과 지혜로운 소리도, 사리에 맞는 요구도 귀담아 들으면 흔하지는 않다.
말은 옛적부터 매우 조심 하도록 가르치고 있다. 말을 통하여 만사가 이루어지는 것이나 말로 인하여 일 또한 망쳐 버릴 수도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말들을 함부로하는 버릇이 있는 것 같다. 선거에서 공약으로 내세운 말들이 얼마나 잘 지켜질 것인가 살펴 보지도 않고서 박수치고는 잊고 만다. 지식인이며 언론이 하는 말들이 얼마나 일관성이 있었던가 과거 신문이나 잡지를 끄집어 내어 오늘과 대조해 보면 일목요연한데도 그런 작업하는 사람이 있다는 소리 자주 듣지 못하는 것은 그 일 할 사람 또한 지식인이라서 인가. 세상사 모두 다 순리대로 흘러 가도록 되어 있다면 억지스러운 말은 맥을 추지 못할 것 같은데 그러지 않고 억지가 자주 도리를 눌러 앞서 가니 딱하다.
말은 첫째로 정확해야 한다. 사실과 일치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 연말 우리 경제가 큰 난국을 맞이하여 기업의 변혁을 위해 첫째 조건으로 내세우는 것이 바로 투명성인데 이 낱말이 뜻하는 것이 정확성이다. 경영 내용을 알리는 문서상의 말들이 사실을 정확하게 반영하고 있다면 불투명할 것이 따로 없다. 경영의 장표와 기록이 정확한가 아닌가를 객관적으로 따지는 기관과 제도는 마련되어 있다. 그 기록에 담긴 말들이 정확하게 쓰이도록 평소에 감시하고 지도하지 못하고 그 잘못을 묵인하고 있다가 필요에 따라 힘의 지렛대로 삼는 관행에 문제가 있다. 후미진 곳에서 기다려 교통규칙 위반을 적발하는 사람들이나, 번연히 못 지킬 말치레 인줄 알면서도 박수치고 쉽게 잊어 버리고 마는 국민도, 다 그런 관행부터 고쳐 나가야 경영의 투명성도 보장되고, 말이 바로 쓰인다.
말의 일관성과 논리성은 말하는 사람의 품격과 지성의 수준을 나타낸다. 지성도, 품격도 다 팽개치고 세계와 담 쌓고 내 멋대로 살 작정이라면 그만이다. 그러나 개방된 사회에서 신용을 쌓아 경쟁의 궁극적 승자가 되기를 원한다면 스스로 쓰는 말의 길을 바로 잡아야 할 것이다. 오늘 한 말이 어제와 다르고, 저 곳에서 한 말이 이 곳에서 바뀌고, 말의 앞뒤 맥락조차 뒤죽박죽이라면 누가 그 사람의, 그 회사의, 그 나라의 말을 믿겠는가. 말을 믿지 못하면 사람도 따라서 못 믿는다. 우리들 초등교육, 고등교육에서 논리에 관한 공부를 얼마나 시켜 왔던가. 논리는 정치야 고사하고, 사업과 기술에서 조차 쓸모없는 것으로 뒷전에 밀려 나와 있지나 않았는가 싶다.
한 공동체가 쓰는 말은 곧 그 사회의 문화를 나타낸다. 기업 마다 제각기 그 내부에서 통용되는 언어체계가 있는데 그 가운데서 비교적 분명한 것으로는 정관이나 사규 등이 있고 명문화되거나 분명치는 않으나 서로 의사가 통하는 고유의 언어체계 즉 기업문화 내지 규범 같은 것이 있어 그 속에서 일하며 살고 있는 법이다. 이것이 얼마나 외부의 다른 세계의 다른 문화 체계와 잘 어울리고 소통이 쉽게 되는지의 여부에 따라서 그 기업의 국제화 내지 세계화의 정도를 가늠할 수 있다. 개방된 시장에서 세계적인 경쟁을 하고 그 규칙을 따른다는 것은 바로 세계에 통용되는 말을 할 줄 안다는 것이고 단지 외국어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끝으로, 말은 하는 사람의 의도와 성의 여하에 따라서 참이 될 수도 있고 거짓이 될 수도 있다. 상대방의 마음을 감동시키거나 어떤 행동을 유발하려면 때로는 사실과 다른 말도 효과적일 수는 있다. 특히 창작의 영역에서는 그런 경우가 많다. 고지고식한 말만 하는 사람이 꼭 현실사회를 잘 이끌어 간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헛된 말은 적절한 한계를 그어서 자제하지 않으면 그로 말미암아 일을 그르치고 만다. 특히 조직을 이끄는 지도자 일수록 말에 참됨이 담겨 있어야 아래 사람이 따라 움직인다. 크나큰 변혁기에 직면한 우리 지도자는 정치가이건, 지식인이건 경영자이건 누구나 말을 입 밖으로 뱉어 내기 전에 한두번쯤 자기 진심을 다져볼 필요가 있다. 난국을 헤치고 새 도약을 위한 혁신을 하는데 있어서는 정계나 산업계에서나 국민 대중이나 저마다 모두 말의 질서를 바로 잡는 것부터 서둘러야 될 것이라 생각한다.
<李憲祖 LG전자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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