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맨홀 (342)

하루가 지났다. 정말 긴 하루였다. 그리고 또 다른 하루가 밝아오고 있었다.

통제실. 너무나 조용했다. 평상시 같으면 자동절체시스템 돌아가는 소리라도 들렸지만 바이러스에 의한 장애로 시스템이 정지된 지금 그 어느 때보다도 통제실 안은 조용했다. 김지호 실장은 보던 자료를 그대로 둔 채 지난 하루를 되돌아보았다.

전쟁. 그저께 저녁부터 시작된 통신대란은 하나의 전쟁이었다. 광화문 네거리 맨홀 속의 화재로 인해 발생한 통신대란은 이곳 통제실을 전쟁터로 만들어 놓았다. 30만 회선이 넘는 통신회선이 맨홀 화재로 한꺼번에 두절되고 자동절체시스템에 고장이 발생했다. 1호 위성과 2호 위성에 관제장애가 발생했다. 시외교환기의 부하율이 급상승했고 각 지점의 전자교환기 부하율도 급상승하여 호 제한 기능까지 넣어야 했다. 그것도 동시에 발생했다.

김지호 실장이 20년 넘게 이 직장에서 근무하면서 겪었던 많은 사건과 고장을 합친 것보다도 이번의 사고는 더욱 크고, 다양했으며, 충격적이었다. 단 하나의 시설에 고장이 발생해도 온 회사가 난리가 날 만큼 그렇게 중요한 시설들이 한꺼번에 다 고장이 나버린 것이었다.

이제 모든 조치는 끝났다. 일단 임시로 작업이 되어 있었지만 전국의 통신망 운용에는 문제가 없다. 화재가 발생한 광화문 쪽 일반가입자 회선 일부가 현재까지 장애상태로 남아 있을 뿐이다. 처제가 다니는 일동은행의 온라인 회선에 대한 고장수리 확인도 끝냈다. 각 지점의 교환기 부하율도 평상시와 같이 최소의 수치를 나타내고 있다.

김지호 실장은 영등포 지점의 시외교환기 부하율을 확인했다. 평상시보다도 낮은 수치를 나타내고 있었다. 모든 것은 안정적. 보고서 작성도 끝냈다. 이제 남은 것은 임시로 절체하여 운용하고 있는 케이블을 화재가 발생한 맨홀에서 작업이 완료되는 대로 원래의 회선으로 절체해주면 되는 것이다. 자동절체시스템이 정상으로 동작한다면 이러한 불편없이 자동으로 회선이 절체될 것이지만, 현재에는 맨홀 화재와 동시에 발생한 장애 때문에 연구소 김창규 박사 팀이 프로그램을 분석하는 중이다.

김지호 실장은 읽던 자료로 다시 눈을 돌렸다.

요람일기(要覽日記).

어제 낮 맨홀 화재현장에서 만났던 진기홍 옹이 설명해주던 내용이 그대로 기록되어 있었다. 1904년 러시아와 일본이 우리 땅에서 벌인 전쟁 중에 각종 통신시설이 어떻게 피탈당했고 그 통신시설이 전쟁에 어떻게 활용되었는가가 자세히 기록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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