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벼랑에선 부품업계 다시 한번 뛰자 (14);과당경쟁

『해외에서 수주활동을 벌일 때 가장 조심하는 것은 이같은 사실이 국내업체에 알려지는 경우입니다. 국내업체와 수주물량을 두고 맞붙는 경우 채산성을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전광판을 제조하는 모 업체 사장은 지난해 전광판 수출을 진행하면서 국내업체들끼리 과당경쟁으로 인한 폐해에 진저리를 친다. 국내업체끼리 가격경쟁이 벌어지면 가격은 제조원가 이하로 떨어지는 경우도 일쑤고 감정싸움으로까지 번지는 경우를 종종 경험했기 때문이다.

최근 내수가 극도로 침체되면서 수출전선에 뛰어드는 부품업체들이 큰 폭으로 늘고 있다. 그러나 과당경쟁이라는 고질병을 고치지 않고서는 치열해진 수출열기가 과당경쟁으로 인한 채산성 악화로 이어지지 않을까하는 우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이같은 우려는 국내 부품업체들의 주 생산품목이 기술집약적 제품이 아니라 가격우위를 바탕으로 하는 노동집약적 제품에 몰려있기 때문이다. 노동집약적 제품은 가격이 가장 큰 무기로 작용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가격경쟁력을 갖추면 너도나도 시장에 뛰어드는 형태를 보여 치열한 시장쟁탈전이 벌어지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에서 벌어지는 시장경쟁이 도를 넘어 과당경쟁으로 이르게 되면 문제가 심각해진다.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와 중소기업연구원이 지난해말 1천1백12개 중소제조업체를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대다수 중소업체들이 올해 경기가 악화될 것으로 보고 있으며 이의 가장 큰 원인을 업체들의 과당경쟁으로 인한 수요감소를 들었다.

또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가 지난해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해외시장에서 1, 2개 제한된 수요처를 놓고 국내업체들간의 과당 수주경쟁은 갈수록 늘고 있는 것으로 지적됐다. 해외에서의 과당경쟁은 제살깎기식의 출혈경쟁으로 이어지게 되고 결과적으로 국가 이미지까지 떨어뜨리게 된다고 업계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그러나 이러한 국내업체들과 다르게 해외업체들은 가격담합으로 보일 정도로까지 과당경쟁을 지양하고 있다.

도요타교세이는 니치아사에 이어 세계에서 두번째로 청색 LED 상용화에 성공하고 국내 시장에 진출했다. 청색 LED는 현재 판매가격의 50% 이상이 수익으로 연결되는 고부가가치제품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수익성이 보장된다면 후발업체인 도요타가 가격을 내리는 방식으로 시장을 잠식하는 것이 국내업체들의 상식이다. 그러나 도요타는 니치아 제품가격에 비해 5% 정도의 낮은가격으로만 청색 LED를 국내업체들에 공급하고 있어 현재까지 국내시장 점유율이 10%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그런데 최근까지도 이러한 가격정책을 계속 구사하고 있다. 서로의 수익성을 보장해주는 예다.

일본 반도체업체들의 국내 지사는 계속되는 물량감소로 업체간 시장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고 있지만 가격을 무기로 타업체 물량을 빼앗는 시장정책은 꿈도 꾸지 않는다. 이럴 경우 그 업체가 업계에서 따돌림 받는 것은 물론 결국에는 일본 전체의 이익에도 반하는 것을 깨닫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부품업체들의 산업구조가 바뀌지 않는 이상 업체간의 치열한 시장경쟁은 끊임없이 벌어질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과당경쟁을 지양하자는 내부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업체들간 자율적인 시장 원칙 준수가 요구되는 시점이다. 서로 수익성을 보장하는 범위내에서 시장경쟁이 이뤄져야 하고 타업체의 물량을 중간에서 빼돌리는 얌체 상혼은 더 이상 발생해서는 안된다는 게 업체들의 한결같은 바람이다. 또 거친 경기를 묵인하는 것이 아니라 자주 반칙을 선언, 페어 플레이를 유도하는 심판의 역할도 강조되고 있다. 지난해 한국전기공업진흥회가 해외 입찰시 과당경쟁을 줄이고 회원사간 공정경쟁질서를 확립하기 위해 「해외입찰 자율조정 협의회」를 구성키로 한 것이 좋은 예다.

<유형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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