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반평] "재키 브라운" OST

지난 94년 세계 영화계는 새파랗게 젊은 감독 퀀틴 타란티노의 등장에 경악했다. 기발한 아이디어에 바탕을 둔 시나리오 작가 출신의 이 젊은이가 폭력과 요설로 점철된 여러 독립 영화를 찍은 다음 큰 발자국을 내딛듯이 찍은 영화 「펄프 픽션」이 칸느영화제에서 대상을 타고 미국 영화계에서도 크게 각광을 받았기 때문이다.

단순히 폭력미학이라고 치부하기에는 너무나 복합적인 요소를 많이 지닌 타란티노 영화 스타일은 곧 전세계 영화광들에게 하나의 유행으로 번졌고 이래저래 순작용과 부작용을 불러 일으켰다.

「펄프 필션」에서는 70년대 최고 스타에서 긴 공백으로 2류 배우로 전락해버린 존 트래볼타가 정상의 연기파 배우로 화려하게 돌아왔고,흑인 배우 새무얼 잭슨과 묘한 분위기의 우마 서먼 등이 크게 주목받은데다 독립 영화에 출연하던 배우들이 대거 출연해 어정쩡하면서도 「황당한」 분위기 연출에 일조해 수 많은 찬반 극단의 평가를 불러 일으켰다.

음악도 이 영화에서는 한 몫을 했다. 주로 60,70년대의 히트곡들이 사용돼 타란티노의 취향을 그대로 반영하기도 했다. 특히 「디스코의 황제」였던 트래볼타의 위상을 패러디한 춤 경연대회에서 서먼과 트래볼타가 우스꽝스럽게 몸을 비틀어댈 때 나왔던 곡은 척 베리의 「C’est La Vie」로 이 영화 이후 자주 댄스클럽에서 사용되기도 했다.

그런 타란티노가 3년 동안의 침묵 끝에 새 영화 「재키 브라운」을 발표했다. 재키 브라운이라는 한 흑인 여성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엎치락 뒤치락 사기극에 타란티노의 장기인 폭력과 낭자한 선혈은 여전하다고 알려져 있다. 주인공인 팸 그리어는 70년대의 2류 영화에 자주 등장하던 여성인데 그녀의 대표작인 「폭시 브라운」에서 이 영화 제목을 따왔고,그녀를 위해 이 영화를 기획했다고 할 만큼 타란티노는 그녀의 열렬한 팬이다. 그녀의 목소리도 이 영화 사운드트랙의 「Long Time Woman」이라는 곡에 담겼다.

이 사운드 트랙 역시 추억의 70년대 곡들이 주류를 이룬다. 단 한국인들에게는 그다지 친숙하지 못한 흑인 R&B곡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70년대 사운드에 친숙함을 느끼고 있다면 제목이나 가수는 낯설다고 해도 음악에는 익숙해질 것이다. 끈적끈적하고 흐느적이는 기교의 발라드곡이 R&B의 전부라고 믿고 있는 신세대들도 뱃심 좋은 70년대풍의 이 소울 뮤직에 귀 기울여 볼 것을 절대적으로 권장한다. 첫 곡으로 올라온 바비 워맥의 「Across 110th Street」에서는 아이작 헤이즈의 「Shaft」처럼 70년대 범죄영화 주제가의 극적 분위기를 고스란히 맛볼 수 있다.

<박미아, 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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