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간데 없이 바닥을 모르고 떨어졌던 D램 반도체 가격이 반등세로 돌아서고 있어 국내 반도체산업에 서광이 비치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이다. 아직 속단할 수는 없지만 예사롭지 않은가격 오름세는 앞으로도 상당 기간 계속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조심스런 진단이다.
새해 초부터 시작된 16MD램 제품의 현물시장 가격상승세가 열흘 이상 지속되고 있는 데다 최근에는 공급물량이 크게 확대되고 있는 64MD램 가격까지 동반 상승하고 있어 2년여 동안 D램업체를 괴롭혀온 메모리 반도체 가격하락 사태가 사실상 진정되고 있다.
이같은 세계적인 시장변화는 지난해 가격폭락 사태에다 국제통화기금(IMF) 한파까지 겹쳐 주름살이 깊게 파인 국내 반도체업계에는 고무적인 현상이 아닐 수 없다. 새해 초까지 만해도 대만 등 후발국의 거센 도전, 대외 신용도 하락, 원화가치의 급락, IMF체제에 따른 투자경색 등 어느 것 하나 국내 반도체산업에 희망적인 변수가 보이지 않았다는 게 업계의 현실적인 상황인식이었다.
그러나 이번 D램 가격 상승세는 국면전환의 청신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윈도98의 출시에 따르는 PC 메모리 수요의 팽창, 세계 정보화 추세로 인한 정보통신기기 수요확대 등 전반적인 수요증가가 예상되는 데다 싱크로너스나 램버스D램 등 고부가가치 메모리 반도체 시장이 서서히 기지개를 펴고 있는 것도 올해 하반기에 반도체시장을 활성화시킬 수 있는 호재로 작용하고 있다. 여기에 한국과 일본의 메모리업체들이 불황타개를 위해 64MD램으로의 세대교체를 강행하면서 생산수율 등 기술과 마케팅에서 미처 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한 후발업체들의 자연적인 도태까지 예견되고 있는 상황이다.
세계 반도체 전문 시장조사기관들이 내놓는 예상 수치들도 이같은 국내 반도체업계의 낙관적인 전망을 뒷받침해 주고 있다. 일례로 반도체부문의 전문 시장조사단체인 ICEC(Intergrated Circuit Engineering Corporation)는 국내 반도체산업 경기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16MD램의 경우 평균 가격이 98년 6달러 51센트, 99년 5달러 80센트, 2000년 5달러 25센트로 안정화할 것이라는 희망적인 관측을 내놓은 바 있다.
이같은 지표들은 무엇보다도 반도체산업의 회생을 위한 외적 요인은 충분하다는 점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국내 D램 산업은 시장 측면이나 기술적인 측면에서 적정 수준의 비교우위를 가지고 있는 분야이기 때문에 금융시장이 안정되고 국가 신용도가 회복될 경우, 급속히 제 자리를 찾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그러나 이같은 전망에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대만 등 후발국들이 국내 반도체업체들의 아성으로 굳어진 D램 시장에 눈독을 들이면서 시장 자체의 공급 제어력이 상실된 것이 첫번째 변수다. 업체간 합의에 의해 공급량을 조절할 수 있는 단계를 넘어섰다는 의미다. 대량 물량작전에 나서고 있는 대만업체의 공세를 어느 선에서 방어하느냐가 국내 반도체 산업의 사활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현재의 시장 주력상품이 16MD램에서 64MD램으로 급속히 세대교체되고 있어 상대적으로 기술기반이 취약한 후발업체들을 여하이 따돌리느냐가 가격안정과 시장 지배력 확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관건이다.
문제는 차세대 제품인 2백56MD램 이후의 시장에 대비한 시설 투자가 제대로 진행되지 못할 경우, 국내 반도체 업체들의 세계 시장에서의 입지가 급속히 약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IMF 측이 한국의 반도체산업을 자동차 분야와 함께 과잉투자의 모델로 지목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국내 반도체업체들의 투자 분위기가 급속히 냉각됐다. 투자를 하려해도 투자 재원 확보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반도체산업은 기술개발과 생산 및 마케팅, 그리고 차세대 제품에 대한 시설투자가 톱니바퀴 돌아가듯 한치의 오차도 없이 병행해야 하는 독특한 특성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반도체 업계는 최근의 조심스런 상승무드가 2000년대까지 이어질 수 있도록 시설투자는 물론 기술개발, 생산, 마케팅, 가격 등에 이르는 종합전략을 주도면밀하게 세워 질적 도약으로 연결시켜야 할 것이다. 가격메카니즘에 좌우되는 허약한 산업체질을 비메모리사업 확대 등의 구조조정을 통해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게 급선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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