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기 정부의 대기업 개혁방향이 가닥을 잡아가고 있는 가운데 13일 김대중 당선자와 주요 그룹 총수가 이에 관한 5개항의 기본 합의문을 발표했다.
이번 합의문의 기본 골격은 재벌의 책임경영, 투명경영, 전문경영을 주축으로 결합재무제표 작성을 의무화하고 상호 지급보증을 철폐한 것이 골자이다.
결합재무제표 작성 의무화는 99회계연도부터, 상호지급보증 금지는 5대 그룹의 경우 99회계연도부터, 나머지 30대 그룹은 2000년부터 도입키로 잠정확정된 상태다. 또 3월까지 자기자본 1백% 이내로 상호지급 보증률을 낮추지 못하는 기업은 5%, 2000년 3월이후 1백% 이상 상호지급 보증한 기업은 5%, 1백% 미만은 3%의 벌칙금리를 덧붙여 부과하는 방안이 확실시되고 있다.
대기업은 이제 선단(船團)식 경영과 문어발식 확장에서 탈피해야 한다. 총외채 1천5백억달러중 대기업의 중복과잉투자 부문이 6백억 달러를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대기업이 현 위기의 책임을 회피하기 힘든 부분이다. 대기업의 몰락은 이제 해당 회사의 몰락으로 끝나지 않고 결국 국민의 부담으로 전가되고 있다. 대기업 개혁에 온 국민의 관심이 집중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합의는 정부와 대기업간 합의라는 형식을 띠고는 있지만 실제로는 비상대책위원회의 재벌개혁안을 중심으로 한 선언적 성격이 강하다. 앞으로 얼마나 제대로 실행될 수 있느냐가 문제다. 외신에서는 벌써부터 『한국의 재벌들은 꿈쩍하지도 않고 임시방편적으로 이 위기만 넘기고 보자는 심사』라며 노골적으로 비난하고 있다. 정부 일변도의 개혁이 돼서는 성과를 달성하기 어렵다. 특히 예전과 같은 마녀사냥식 재벌길들이기식 쾌도난마(快刀亂麻)식 개혁이 돼서는 곤란하다. 기업 내부로부터의 자율적인 개혁을 유도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 금융, 기업, 노동 4자간의 유기적인 개혁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 특히 재벌에 대한 규제부터 풀어야 한다. 규제가 있는 곳에 비리가 있게 마련이다. 정경유착이 존재하는 한 재별개혁은 공염불이다. 정치권의 개혁도 동시에 추진될 때에만 가시적인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기업의 요구사항도 우선 과감히 수용하려는 자세전환이 필요하다. 금융기관의 대출시 보증제도를 철폐하고 기업의 적대적 M&A를 허용하는 한편 기업의 인수합병을 용이하게 하기 위한 기업주조조정특별법을 하루빨리 제정해야 한다.
급격한 개혁도 문제다. 개혁의 속도조절이 필요하다. 준비가 되지 않았고 또 준비하는데 많은 시간이 걸리는 사안들, 예를 들어 상호지급보증 철폐 같은 것을 무리하게 조속히 시행하는 것은 문제가 많다. 정부안대로 자기자본의 1백%를 초과해 계열사에 빚보증한 금액을 정리하려면 무려 6조7천억원이 당장 필요하다. 무엇보다 정리의 틀을 먼저 만들어 주고 단계적으로 추진해 나가려는 노력이 절실히 요구된다. 기업이 무모한 확장으로 벌인 실패의 대가가 지금의 경제난이라면 정부든 기업이든 똑같은 실수를 되풀이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특히 개혁추진위의 성향이 투명하지 않는 한 대기업 개혁의 성공을 장담할 수 없다. 「비즈니스위크」는 지난 1월 19일자 특집기사에서 『김 당선자는 재별개혁을 강력히 추진하고, 정리해고를 허용하는 법안을 통과시키겠다고 밝혔으나 김 당선자의 경제참모들이 경제개혁을 줄기차게 추진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회의가 적지 않다』고 우려하고 있다. 추진위의 투명성이 보장되지 않는 한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기는 힘들다는 지적이다. 입맛에 맞게 대기업을 손보겠다는 식의 오해가 생겨서는 안되겠다. 자율적인 시장개방에 맡기기로 했으면 철저히 맡기는 것이 중요하다. 정부는 이런 자율구조가 순기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유지관리해주면 되는 것이다.
이번 대기업 개혁은 정부가 얼마나 이 같은 자본주의의 원칙과 시장경제원리에 충실하게 따르느냐에 그 성패가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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