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맨홀 (275)

승민은 다시 자신의 소설을 떠올렸다.

이곳으로 오기 전까지도 자신의 컴퓨터에 올려놓고 애를 쓰던 소설이었다.

맨홀 속 케이블에 화재가 발생한다. 오프라인 된 은행의 타인명의 계좌에서 대량의 현금이 인출된다. 그리고 무인경비시스템이 오프라인 된 상태에서 황금당의 금은보석이 감쪽같이 없어진다.

무엇보다도 화재가 발생한 장소였다. 자신의 소설에서 등장하는 화재현장과 실제로 화재가 발생한 곳이 일치하고 있는 것이었다.

승민은 다시 황금당 안의 전화기를 살폈다. 시간이 상당히 흘렀지만 전화기가 이용되지 않았다. 전화회선이 두절되어 있으면 당연히 무인경비시스템도 오프라인이 되어 있을 거였다.

우르릉, 과르르릉.

전철이 지나치는 듯 다시 도로 전체가 울렸다.

승민은 점퍼의 깃을 세우고 모자를 눌러쓴 채 지나쳤던 황금당 앞을 다시 지나쳤다. 종업원들 뿐, 한가롭게 여겨졌다. 여전히 전화를 사용하는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승민은 종탑이 있는 쪽으로 다가서 지하도 입구로 내려섰다.

냄새. 매캐한 냄새가 여전히 승민의 후각을 자극했다.

지하도. 지하도를 건너 반대편 출구로 나설 때까지도 그 냄새는 계속되었다. 반대편 출구로 빠져나온 승민은 길 건너 황금당 안을 살폈다. 바로 앞에서 오래 지체하는 것보다는 멀리서 바라보는 것이 위험부담을 줄일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여전히 사람들은 없었다. 여전히 전화를 이용하지 않고 있었다. 이제 정리할 시간이 되었는지, 종업원들이 내부를 정리하고 있었다.

우르릉, 과르르릉.

도로가 흔들렸다. 승민은 다시 지하 맨홀 속에 들어섰을 때의 일은 떠올렸다,

『현재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를 정보사회라고 합니다. 정보는 필요한 곳에 있어야 가치를 갖습니다. 아무리 좋은 정보라 해도 필요로 하는 곳에 있지 않으면 그 정보는 필요 없는 정보입니다. 통신매체는 그 정보에 가치를 부여합니다. 정보를 필요로 하는 곳으로 전달하는 것이 바로 통신매체입니다.』

승민은 당시 초청한 문인들에게 통신의 중요성을 설명해주던 관계직원의 말을 주의 깊게 들었었다. 이미 땅속 깊은 곳에 설치되어 있는 각종 케이블 등, 맨홀의 시설에 경이로움을 느끼던 참석자들은 그 설명에 빨려들 수밖에 없었다.

그 와중에서 당시 질문을 가장 많이 한 사람이 승민이었다. 승민은 맨홀 속에 처음 들어서는 순간 소설적 가치를 감각적으로 느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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