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맨홀 (266)

김지호 실장은 사고직전까지 보고 있던 요람일기의 내용을 떠올렸다. 글자 하나하나에 당시 조선의 통신시설과 민초들의 설움이 깃들어 있는 내용이었다.

요람일기가 씌어질 당시인 1904년, 일본은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고 조선을 손아귀에 넣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다. 그 과정에서 일본은 전쟁중이라는 미명 아래 조선의 통신시설을 강제로 점거하고, 자기들 마음대로 통신선을 군용선으로 전용했다. 조선의 일반 통신선에 자신들의 군용 통신선을 연접하여 군용화시켰다. 요람일기에는 그러한 내용들이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었다. 김지호 실장은 요람일기를 읽으면서 그 당시의 상황들을 현실처럼 느끼며 안타까움을 느꼈었다.

요람일기는 한평생 통신역사 정립을 위해 온몸을 바쳐온 진기홍 옹의 정성으로 발굴한 책이었다. 만일 그 책을 찾지 못했다면 우리나라의 통신역사는 한부분이 잘려져 나간 상태로 남아 있었을 것이고, 당시 통신시설에 대한 일본의 만행도 드러나지 않고 묻혀버렸을 것이다.

그러나 진기홍 옹은 아직도 찾지 못한 인(人)권의 행방 때문에 애를 태우고 있었다. 분명히 씌어졌는데 찾을 수 없는 것. 김지호 실장은 진기홍 옹이 천(天)권과 지(地)권을 찾을 때 겪었던 어려움도 잘 알고 있었다. 그때도 어떻게 도와야 할지를 늘 안타깝게 여겼었다.

『김 실장,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지만 어째든 눈앞에 보이는 현실이오. 커스터머 칩의 프로그램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를 파악해 보아야겠소.』

고개를 끄덕이는 횟수가 많아진 김창규 박사는 계속 안경을 치켜올리고 있었다.

『김 박사, 이번 사태의 전체적인 느낌이 심상치 않아요. 인위적인 움직임이 감지가 돼요. 독수리가 새겨진 이 커스터머 칩을 확실하게 파악합시다. 아직까지 단서가 될만한 유일한 부품이오. 지금 위성을 다시 끌어내릴 수는 없소.』

『알겠소. 정상적인 프로그램 언어를 사용했다면 별 문제가 없을 것이지만, 새로운 프로그램 언어를 사용했다면 내용 파악이 쉽지는 않을 것이오.』

『우리가 도와주어야 할 것은 없습니까?』

『메인보드를 연구소로 가지고 가서 시험하겠소. 어차피 사고회선이 복구되어 다시 절체되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테니까 먼저 연구소에서 시험을 해보겠소. 일반적인 에러가 아니라 특수한 바이러스 프로그램이 수행되는 것을 보아서는 만만치 않을 것이오.』

『김 박사, 시간은 얼마나 걸리겠소?』

『예측할 수 없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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