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은 인간을 연약하게 만든다.
군중 속에서의 고독. 고독에도 주기가 있었다.
그때 환철이 다가왔다. 우연처럼. 혜경은 아직도 우연이라고 여기고 있었지만 우연은 결코 아니었다.
혜경은 환철을 통하여 그 고독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다른 세계를 보고 느낄 수 있었다. 그 세계는 새로운 세계는 아니었다. 이미 혜경의 육체와 의식 속에 잠재되어 있던 세계였다. 환철이 그것을 끄집어내준 것이었다.
혜경은 자신의 방에 걸려 있는 대형 사진을 떠올렸다. 자신이 입주하기전, 그곳에서 지냈던 환철의 그림이었다.
요르다엔스의 「프로메테우스」.
그 그림의 프로메테우스는 쇠사슬에 묶인 채 거꾸로 매달려 있었다. 인간에게 불을 훔쳐다준 죄로 제우스에게 미움을 받아 영원한 고난을 받고 있는 프로메테우스. 그의 눈빛은 자학과 쾌감을 동시에 느끼고 있는 듯한 눈빛이었다.
그 눈빛은 위안의 눈빛이었다. 환철의 오피스텔로 다가들 때마다, 환철이 자신의 침대를 찾은 후 아침을 맞았을 때도 혜경은 프로메테우스의 눈빛을 위안으로 삼을 수 있었다. 고통과 쾌락을 동시에 느끼는 듯한 눈빛.
프로메테우스 옆에는 검은 독수리가 그려져 있었다. 열려 있는 프로메테우스의 가슴을 후벼파기 위해 때를 기다리는 독수리였다. 제우스는 거꾸로 매달아 놓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프로메테우스의 간이 생성될 때마다 독수리에게 쪼아 먹히는 고통을 당하도록 했다. 하늘 높이 날면서 먹이를 찾고, 단 한번에 노린 먹이를 채가는 독수리. 단 한번에 먹이를 채지 못했을 경우 그 먹이를 잡기 위해 설설 기지 않고 깨끗이 포기한 채 하늘로 오르는 독수리. 하지만 그림속 독수리의 눈빛은 객관화한 눈빛이었다. 날카로운 부리를 감춘 채 언제든 프로메테우스의 곁을 떠나도 상관없다는 표정이었다. 그 표정은 환철을 닮아 있었다. 환철, 그 독수리는 바로 환철이었다.
혜경은 그림을 볼 때마다 프로메테우스의 가슴을 쪼는 독수리가 환철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 독수리가 혜경의 육체와 의식에 불씨 하나를 심었다. 섹스. 처음 그 불씨는 미미했다. 그러나 그 불씨는 불현듯 솟아올라 훨훨 타오르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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