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은 인간의 타고난 양면적 기질을 대변한다.
인간은 훨훨 타오르는 불을 보며 내면의 현상계에서 직접적으로 형상화시키지는 못하는 심성을 끄집어낼 수 있다. 그것은 위안이었다. 정화였다. 밝음과 어둠, 신성함과 음란함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불은 바로 인간의 심성을 대변하는 매체였다.
또한 이교도와 유일신 신봉자들과의 끊임없는 반목과 싸움에서도 불은 늘 그 싸움과 제사의 도구로 이용되었다.
유대교의 야훼는 불과 구름기둥의 형상으로 인간 앞에 나타났다. 그는 여러 신상을 섬기고 그 앞에서 음란한 행각을 벌이는 사람들과 도시를 불로 소멸했다. 이교도들도 불로 제사를 드리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불은 모두 같은 불은 아니었다.
축복의 불과 저주의 불이 있었다. 야훼는 제단의 불이 아닌 다른 불로 제사를 드린 사람들을 벌했다. 이교도인들은 자기의 자식을 불로 태워 불 제사를 드렸다. 이처럼 불은 악한 것을 소멸시키는 신성함도 지녔지만 인간의 본능 깊이 내재해 있는 음란과 사악함을 발산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었다.
신전의 신상 앞에서 타오르는 불을 배경으로 公娼과 때로는 짐승과의 현란한 교합의식을 행하기도 했다.
그리스의 여사제 복장을 한 미모의 서양여성들, 그들은 마치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여신과도 같은 신성함과 미를 눈부시게 발산한다. 그러나 고대에 있어서의 여사제란 신전의 공창이었다. 여사제와 교합은 곧 제사요, 예물인 셈이다.
인간은 본능적 욕구와 재물에 대한 욕심을 만족시켜 줄 신을 끊임없이 만들어 내고, 허물고, 또다시 만들어 숭배했다. 의식을 통해 가장 더럽고 추한 것이 순식간에 가장 신성하고 아름다운 것으로 변한다면 그것은 숭배의 대상될 수 있었다.
사내는 다시 맥주 한 모금을 들이키고 창 밖을 내다보았다. 자기가 시도한 행위의 결과물을 확인하는 것이다.
균의 작용에 의해 이루어지긴 하지만 섬세한 순간의 진행적 차이로 인해 부패냐 발효냐가 결정지어지듯이 사내는 자신의 모든 계획이 순간순간 어떻게 진행되느냐에 따라 부패냐 발효냐로 구분될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성공과 실패는 의미가 없다.
그 진행과정을 살피는 것 자체가 흥미로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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