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맨홀 (56)

광화문 네거리 한복판 맨홀에서 솟아오르는 불꽃을 바라보면서 사내는 야릇한 미소를 지었다.

자기의 음모를 시각적으로 확인하면서 짖는 미소였다. 수많은 컴퓨터 프로그램을 짰지만 직접적인 결과를 얻을 수는 없었다. 모든 결과는 화면상에서 그칠 뿐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 결과가 불꽃으로, 그것도 광화문 네거리 한복판에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사내는 가끔 자신이 기생충 같다는 생각을 하곤 했었다. 자기 자신이 직접 이룰 수 있는 것은 지금까지 아무것도 없었다. 프로그램을 짜고, 그것이 가동되어 화면에 비쳐지고, 그것뿐이었다. 오락 프로그램이라는 이름으로 화면에서 시작하여 화면으로 끝나 버릴 뿐이었다. 실질적이며 구체적인 것은 없었다. 생산적인 것은 하나도 없었다. 모든 것은 화면 내에서 그치고 마는 것이었다.

섹스. 섹스만이 사내에게 행위에 대한 결과를 느낄 수 있게 했다. 손끝과 입술, 혀의 움직임에 따라 직접적인 반응을 느낄 수 있었다. 아래쪽에 돌출 된 작은 부분 하나로 상대 여자의 감정과 인식의 흐름, 육체의 미세한 움직임까지도 감지할 수 있는 섹스. 섹스는 사내에게 육체적 행위에 대한 직접적인 반응을 제공해 주었다.

사내에게 섹스는 조각그림 맞추기였다. 사내는 어렸을 때부터 그림 맞추기를 할 때마다 늘 한 조각을 의도적으로 남겨 두었다. 나머지 한 조각이 들어갈 공간은 뻔한데 굳이 그 공간을 메워 버린다는 것은 재미가 없었다. 완전히 드러낸 여자의 몸은 그를 흥분시키지 못했다. 한 조각 한 조각 벗어 던지다가 가장 은밀한 곳만 남았을 때, 그 부위조차 요염한 자세로 인해 잠시 감추어져 있을 때 사내의 흥분이 시작되는 것이었다. 이제 가시화하기 시작한 사내의 음모 또한 모자이크 식으로, 조각그림 맞추기 식으로 전개될 것이다. 차례차례 사내는 흥분을 느끼게 될 것이다. 물론 한 조각은 남겨 둔 채.

아직도 성이 풀리지 않은 채 꼿꼿하게 서 있는 물건 때문에 어정쩡한 걸음걸이로 소파로 돌아오면서 사내는 리모콘을 조작했다. 「비쥬린브히타캄」 자세로 하늘 향해 다리를 든 백인여자의 자지러지는 모습이 화면에 비쳐졌다.

9시 카메라, 흑인남자와 백인여자의 중간을 잡은 카메라에서 凹凸의 분리와 결합되는 모습이 반복적으로 비쳐지고 있었다. 사내가 리모콘을 조작하자 화면의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소리. 흑인남자가 자기의 물건을 거머쥐고 외마디 소리를 질렀다. 응축된 액체가 백인여자의 체모 위로 분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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