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맨홀 (55)

사내는 길게 담배연기를 내 뿜으며 시선을 테라코타에서 다시 화면으로 옮겼다.

흑인남자와 백인여자의 자세가 바뀌어 있었다. 백인여자가 소파에 드러누운 채 다리를 들고 있었고, 그 위로 흑인 남자가 올라타 있는 자세가 되어 있었다.

「비쥬린브히타캄」 사내는 화면 속의 흑인남자와 백인여자의 모습이 「비쥬린브히타캄」의 자세라는 생각을 했다. 「카마수트라」에 나오는 용어. 여자가 두 다리를 넓게 벌림과 동시에 높이 들고 남자의 물건이 삽입되었을 때 여자의 음부가 기지개를 켜는 모양을 설명한 용어였다.

사내는 알고 있었다. 「비쥬린브히타캄」 외에도 여자의 음부를 넓히는 방법을. 「웃드푸트라캄」은 여자가 머리를 바닥 위에 낮게 늘어뜨리고 궁둥이를 높이 하여 음부를 들든지 혹은 궁둥이 밑에 무엇을 받쳐 놓기도 하는 자세를 말한다. 이 자세는 여자의 음부가 들려서 마치 꽃이 핀 것과 같이 되는 것을 나타낸 말로, 「웃드푸트라캄」은 꽃이 핀다는 뜻이다. 이 경우 남자의 물건이 완전히 삽입되자마자 남녀의 어느 한편이 먼저 동작을 시작하게 되는데, 여자의 경우 허리로 하고 남자가 할 경우라면 발을 뻗어 접합을 완전하게 하는 자세를 말한다. 「인드라니캄」은 여성 상위에서 두 다리를 벌리고 두 팔로 몸을 받쳐드는 것을 말하는데, 여자의 음부가 가장 넓혀지게 되는 자세이다.

화면에서는 흑인남자가 「비쥬린브히타캄」 자세의 백인여자 위에서 팔굽혀펴기를 하듯 몸 전체를 아래위로 반복하는 모습이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웨앵, 웨앵. 정지된 화면의 소리를 대신하여 흐르는 재즈에 밖에서 사이렌 소리가 요란하게 섞여 들었다.

사내는 길게 담배 연기를 내 뿜으며 리모콘의 버튼을 조작했다.

모니터에 광화문 네거리 풍경이 나타났다. 도로 한복판에서 불꽃이 솟구치는 것이 보였다. 사내는 조금씩 리모콘을 조작했다. 카메라의 방향이 점차 불길이 솟구치는 곳으로 움직여 갔다. 20여 미터 이상 높이 치솟는 불꽃과 함께 검은 뭉개 연기가 솟구치고 있었다.

사내는 소파에서 일어서 엉거주춤한 걸음걸이로 창가로 다가섰다. 솟아오르는 연기 아래로 광화문 네거리 한복판 맨홀에서 불꽃이 치솟고 있는 것이 보였다.

불꽃. 불꽃이 훨훨 솟아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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