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맨홀 (28)

백인 여자가 질러대는 괴성과 흑인 남자의 거친 신음소리가 재즈와 절묘하게 어우러지고 있었다. 사내는 시선을 화면에 고정한 채 흐르고 있는 노래를 흥얼흥얼 따라 불렀다.

화면에는 아래에서 위로, 45도 각도의 고정된 카메라에서 잡은 흑인 남자와 백인 여자가 엉겨붙어 벌이는 장면이 적나라하게 보여지고 있었다. 여자의 괴성과 남자의 신음소리가 박자를 맞추듯 이어졌다.

凹凸.

오목할 요(凹), 볼록할 철(凸). 사내는 凹와 凸이 격렬하게 결합과 분리를 반복하고 있는 화면이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웨앵- 웨앵- 웨앵-

창밖에서 몇 대의 소방차가 달려오며 질러대는 사이렌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사내는 천천히 리모콘을 조작했다. 화면이 바뀌었다.

조금 전까지 보였던 흑인 남자와 백인 여자의 격렬한 정사 장면이 사라지고 화면 가득 연기가 자욱하게 깔려 있는 도로의 전경이 나타났다.

시청 쪽. 자욱한 연기로 인해 시야가 좁아져 있었다. 경광등을 켠 소방차들이 줄지어 서 있는 것이 언듯언듯 보였다.

경복궁 쪽. 경복궁 정문인 광화문 앞은 연기가 없었지만 종합청사 뒤의 지하철 입구와 안국동 쪽에서 검은 연기가 솟구치고 있었다.

종로 쪽. 광화문 네거리에서 종로 3가 쪽의 환풍구에서 줄지어 검은 연기가 치솟고 있었다. 도로의 모든 차량의 통행이 통제되고 있었다. 멀리 종로 2가와 3가 부근까지 연기가 가득차 있었다.

사내는 다시 리모콘을 조작했다. 리모콘의 작은 화면에 점 하나가 나타났다. 20층. 카메라의 위치를 표시하는 점이었다.

옥상에서 길게 아래로 내려진 배수관을 따라 아래위로 오르고 내릴 수 있도록 설치되어 있던 카메라의 위치가 리모콘에 나타나고 있는 것이었다. 아래 위 뿐만이 아니라 옆으로도 이동할 수 있도록 설치된 카메라였다. 사내는 그 카메라의 렌즈를 통해 창연 오피스텔 각 실을 훔쳐보곤 했다. 1820호실 여자의 생활도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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