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의식의 교각 (204)

『고맙소.』

그러나 눈은 질책의 뜻을 담고 있다.

『죽일 것까지는 없었잖소?』

『아니 그렇지 않소. 당신들은 업보라고 부르지만 나는 냉혈이라고 부르오. 당신한테 한 걸 생각해보시오.』

고비는 하라다 가즈오 쪽으로 눈길을 보낸다.

『저 사람은 어쩔 작정이오?』

『이 자는 눈물 한방울도 흘릴 가치가 없소.』

하라다 뒤에 서며 카를로스가 말한다.

눈깜짝할 사이에 카를로스는 하라다의 두개골 밑 부분을 칼로 가른다.

바라보는 고비의 입이 벌어진다.

하라다의 머리는 국립극장에서 마지막 역할을 마친 인형처럼 풀썩하더니옆으로 뻗는다.

고비는 다시 역겨워진다.

『기어이 죽였군!』

카를로스는 하라다의 두개골 뒤로 손을 집어넣더니 전선이 달린 실린더 하나를 꺼낸다.

『자,』

고비에게 상자를 보이면서 카를로스가 말한다.

『마지막 경의를 표하고 싶소?』

놀란 고비가 입을 열 틈도 없이 카를로스는 긴 코트 주머니 속으로 카트리지를 떨어뜨린다.

『이제 가보도록 하죠.』

둘은 미닫이 문을 통해 정원으로 나간다. 고비는 아직도 일본 양말을 신고있고 카를로스는 도마뱀가죽 부츠를 신고 있다.

『어떻게 해서?』

카를로스를 뒤쫓아가며 고비가 묻는다.

『그렇게 놀란 토끼눈을 하지 말고 나가는 문이나 찾아보도록 하죠.』그들은 저택의 끝부분에 이른다.

낮은 문 하나가 나무뒤 벽에 숨어 있다.

『그래, 여기 있을 줄 알았지.』

문을 밀면서 카를로스가 말한다.

그때 엔진의 시동이 걸리는 소리가 들리고 헤드라이트 불빛이 덫처럼 그들을 옭아맨다. 카를로스는 잠시 긴장하는 듯했으나 곧 여유를 되찾는다.

긴 검정색 다임러 승용차가 그들을 향해 다가온다. 앞에는 일장기가 펄럭이고 있다. 자동으로 문이 열린다.

『들어가시지, 친구.』

뒷문을 잡으며 카를로스가 말한다.

그리고 자신은 조수석에 주저앉는다.

『그런데 말이오,』

차가 움직이면서 귀에 익은 목소리가 고비를 환영한다.

『형씨, 참 볼 만하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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