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세계화" 구호만으론 안된다

현재 "세계화"는 정부구호에 앞서 기업이 사활을 걸고 추진하는 절대절명의명제가 돼 있다. 정부의 "세계화" 구호가 처음 나온 게 지난 대통령 선거때이니 벌써 3년째 접어든 것이다.

이미 상당수 대기업의 경우 좁은 국내시장만으로는 기업의 생존 자체가 불가능할 만큼 거대화했다. 정부가 구호를 외치지 않아도 기업이 스스로 살아남기 위해 세계로 뻗어나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또한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국내시장이 세계시장의 하나로 편입되는 개방상황을 피해갈수 없게 돼버렸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의 대기업정책이 어떤 방향성을 갖느냐 하는 것은 매우중요한 문제다. 명확한 철학위에 일관된 정책 추진이 요구되는 것이다. 물론원칙을 위한 원칙에 매몰되는 것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상황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하되 발전방향에 대한 분명한 비전을 갖고 "우리의 시장"을 "우리가 주인"이 된 입장에서 열고 닫을 힘과 의지가 요구된다는 얘기다.

개방은 갈수록 가속화할 것이고 그 과정에서 끊임없는 선택이 요구될 것이다. 그 선택이、 분명한 철학을 토대로 해서 내려지지 못할 때 정책은 우왕좌왕하게 되고 무질서한 개방을 초래할 것이다.

근래 들어서만 해도 우리 사회는 몇 가지 시장개방에 따른 선택의 문제에직면했다. 한글코드 논쟁과 최근의 마이크로소프트네트워크(MSN) 불공정 시비가 좋은 사례다. 뿐만 아니라 아직 국내에 본격 상륙하지 않은 채 우리 연안을 맴돌고 있는 외국 기본통신 및 부가통신 사업자들과의 경쟁을 위해 정부의 정책이 어떤 선택을 해야 할 것인지도 중요한 문제로 남아 있다.

최근 컴퓨터통신 이용자들 사이에서는 한국통신의 패킷통신망인 "하이네트피" 사용료 부과방침에 대해 조직적 저항이 번지고 있다. "형평성"을 내세운데이콤의 요금부과요청이 수용된 것이라고 한다. 아직은 국내 기업간의 형평을 내세워 이렇듯 사용자 이익을 외면하는 요금정책이 강행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식의 기업운영 체질이 외국 통신사업자들의 본격적인 국내시장진입시점에까지 이어질 경우 경쟁력을 지탱할 수 있을지 생각해볼 일이다.

정부가 이제까지 유지해온 기업의 과보호정책은 이같은 시장상황에 적응할능력과 기회를 빼앗은 결과만 초래했다. 그렇다고 무질서한 개방정책을 무턱대고 지지할 수도 없다. 이런 개방정책은 저항력도 키우지 못한 국내기업에그나마 남아 있는 면역체계를 파괴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의 뜻만으로 시장개방을 늦추고 당길 수 있는 상황이 아님을이제까지의 체험으로 충분히 깨달았다. 무턱대고 문을 안으로 걸어잠그는 것이능사가 아니라는 것도 역사에서 배워왔다.

세계화의 원리는 요즘 대중적 인기가 높아지고 있는 바둑에 비유될 수 있다. 아무리 넓은 영토를 차지하고 철통같이 수비한다 해도 외부로 연결된 통로가 완벽하게 차단된다면 이미 내가 차지한 영토는 내 것이 아니라 나를 포위한 적의 영토라는 사실도 그렇고、 내 땅만 지키고 적지로 나아가지 않으면결국 모두를 빼앗기고 만다는 사실도 그렇다.

우리 시장은 열지 않으면서 남의 시장에만 들어갈 수도 없고 남의 시장으로뚫고 들어가길 포기하면서까지 내 시장만 지키고 앉아 있을 수도 없는 일이라면, 결국 어떤 경우는 양보하고 어느 영역은 지켜야 할지에 대한 분명한원칙과 전략이 있어야 할 것이다.

거대공룡화한 세계적 대기업들에 우리 시장을 고스란히 내줄 수는 없다.

필요한 것은 명확한 전략과 적합한 전술을 개발하고 실천하는 일이다.

이제는 정부의 구호가 아니라 올바른 철학과 명확한 비전、 그리고 시의적절한 정책의 선택이 필요하다. 이 길만이 스스로의 생존을 위해 세계화를 택한기업에 보탬이 될 뿐만 아니라 결국 국익으로 연결될 것이다.

브랜드 뉴스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