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수의 특이점(Singularity) 시대]〈14〉 AI 시대의 인간 노동은 생산보다 소비 측면에서 더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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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수 싱귤래리티 금융 소사이어티(SFS) 간사

대학 시절의 경험이다.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면서 주말을 이용해서 부모님이 계시는 춘천을 기차로 오갔다. 당시에는 비둘기호였기에 많은 시간이 걸렸지만 기찻길 옆 북한강 수계를 감상하는 것은 그나마 장시간 여행의 지루함을 달래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한 가지 조건이 있는데 바로 옆 좌석의 동반자를 잘 만나는 것이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피곤한 사람이 탈 경우 기차 여행은 괴로움으로 반전했다.

한 번은 사이비 종교에 심취한 분이 옆자리에 탔다. 이분이 자꾸 휴거(세상이 종말할 때 구원받는다는 의미)가 얼마 안 남았으니 자기 종교시설에 와서 구원을 받으라고 끊임없이 권유했다. 청량리역에서 출발할 때 의례차 인사를 한 것이 잘못하면 춘천역에 다다를 때까지 계속될 판이었다. 한 시간 남짓 계속된 그의 설득에 지친 나는 무례하지만 대화를 끊어버리려고 마음을 먹었다.

“선생님, 잘 알겠습니다. 인류의 멸망, 재앙을 앞두고 휴거를 받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한 가지 질문이 있는데 선생님 종교의 신도가 대략 어느 정도 됩니까?”

그러자 그는 마침내 자신의 설득이 통했다고 생각했는지 한껏 고무돼 대답했다.

“서울에서는 수천명, 전국적으로 2만명 이상 됩니다.”

“2만명이요, 그래요, 그럼 저는 휴거에 동참하지 않겠습니다. 왜냐하면 하루아침에 저의 소중한 가족들이 한 명도 없는 세상에 혼자서 구원을 받아 남기 싫습니다. 그리고 생각해보니 이 지구상에 달랑 2만명이 남아버리면 무슨 사는 의미가 있을까요? 제가 좋아하는 노래를 불러주는 가수도 없고, 영화도 만드는 사람도 없고, 이렇게 멀리 여행하는 기차 시설을 운영하는 사람들도 없을 것 같고 프로야구 구장에서 응원하는 재미도 없고 아무것도 없이 그냥 사는 데 급급한 세상이 될 것인데. 휴거로 살아남으나 죽으나 큰 차이가 없어 보이네요.”

그가 너무 황당했는지 아무런 얘기 없이 나에게서 눈을 돌려 차창 밖을 보았고 나는 눈을 감고 편안하게 남은 여정을 마칠 수 있었다.

최근 인공지능(AI)의 생산성에 관한 해외 논문을 읽다 보면 이상하게도 계속 이 잊혀질 만한 학창 시절의 경험이 자꾸 상기되는지 모르겠다. 비록 시나리오이기는 하지만 논문들의 주장이 AI로 인해 인간의 직업들이 하나둘씩 자동화가 진행될수록 인간은 노동시장에서 밀려나고 최악의 경우 완전실업 상태에 직면한다는 것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등장한 이론이 생산은 AI가 하니 막대한 잉여소득을 얻은 자본가에게 막대한 세금을 부과하고 이를 재원으로 모든 사람에게 보편적인 기본소득(UBI)을 지급하자는 정책이 구체적으로 논의되고 있다.

재앙에 가까운 실업을 예상하는 것은 거의 모든 연구논문이 사용하고 있는 과업기준 생산함수(task-based production model)에 기인한다. Y=f(K, L)이라는 생산함수에서 인간은 L, 즉 노동에 한정될 뿐이다. AI를 도입해 L을 계속 대체하면 할수록 생산에서 인간노동(L)의 비중은 작아지고(즉, 해고가 진행되고) K, 즉 자본의 비중은 늘어난다.

현실을 보면 반드시 AI 도입이 해고와 직결되지는 않는다. 예를 들면 물류창고를 AI 도입으로 자동화하고 있는 아마존의 경우 해고가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대량해고 없이 AI 에이전트를 도입하고 있는 월마트 사례도 있다. 비교적 간단한 아마존의 물류창고 자동화와 달리 소매고객과의 접점이 중요한 월마트의 경우 AI 에이전트를 전면 도입할 경우 조직을 바꾸고 작업 순서도 재정비하고 인력을 재배치하고 데이터 시스템도 달리 구축해야 하기 때문에 당장 해고부터 진행하기는 어려운 현실적 제약이 있다고 보인다.

따라서 양 회사의 차이는 근본적인 차이라기보다는 기술 확산의 차이가 가져오는 일시적인 현상에 불과할 가능성이 높다. 이로 인해 전기 등 다른 기술 도입과 마찬가지로 현재 AI의 경우에도 생산성 증가 효과가 초기에 낮게 나타나는 이른바 생산성 J커브 효과(productivity J-curve)가 관찰되고 있다.

하지만 보다 장기적으로 자동화 기술이 진전되면 결국 노동과 조직의 병목이 풀리면서 인간 노동은 AI로 완전히 대체되는 상황을 가정할 수 있다. 결국 월마트도 대량해고를 진행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위 생산함수에서 인간노동(L)이 사라지고 Y=f(K)로 변하면서 폭발적인 생산성 향상이 가능해진다.

인간노동이 줄어들지언정 여전히 존재하면 AI의 무한정한 투입이 있더라도 수확체감의 법칙이 작용하지만 완전히 사라지면 이러한 법칙이 작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인간의 완전한 실업 상태를 의미한다. 물론 AI로 완전대체라는 의미는 동일한 일자리를 인간도 수행할 수 있다는 의미이지만 그 경우 임금은 자본의 한 단위 비용과 같은 극심한 저임금 상황이기 때문에 실업과 큰 차이점이 없을 것이다.

이러한 AI 시대 인간 노동의 완전자동화는 대량실업으로 연결된다는 논리는 과연 합리적인 논리적 결론인가?

먼저 1960년 미국 경제학자 보몰(William J. Baumol)이 관찰한 불균형 성장모형을 생각해보면 다음과 같은 반론이 가능하다. 보몰은 경제에서 생산성이 빠르게 상승하는 부문과 그렇지 않은 부문이 존재할 경우 생산성이 오르는 부문의 임금 상승이 진행되지만 생산성 향상이 거의 없는 분야 역시 임금 상승이 진행될 수밖에 없는 관계를 관찰했다. 만일 생산성 향상이 없는 부문의 임금이 그대로일 경우 노동이 임금이 높은 부문으로 이동하기 때문이다.

AI 시대에는 AI가 복제 가능한 재화와 지식서비스의 생산성을 극단적으로 높이는 반면 인간의 시간에 의존한 부분의 경우 생산성은 정체된다. 왜냐하면 하루 24시간이라는 인간의 시간은 물리적으로 복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베토벤 현악 4중주 연주를 생각해보자. 1820년에 베토벤 현악 4중주를 연주하려면 연주자 4명 그리고 약 30분의 시간이 필요했다. 이 상황은 200년이 지난 2026년에도 같다. 같은 곡을 연주자 2명 또는 15분 만에 연주할 수 없다.

이처럼 공연의 노동생산성은 그대로이지만 같은 기간 제조업에서는 엄청난 생산성 증가가 일어났다. 문제는 생산성 증가율이 높은 부문(제조업 등)의 임금이 오르면서 생산성 향상이 거의 없는 공연예술도 인력을 확보하기 위해 임금을 올릴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보몰은 이 현상을 비용질병(Cost Disease)이라고 불렀지만 AI 시대 이를 다시 생각해보면 인간 노동에 대한 희소성 프리미엄이라고 할 수 있다. 제조업 생산성이 크게 증가해 사회의 잉여소득이 커지면 사람이 직접 해야 하는 노동의 기회비용이 높아진다. AI가 작곡과 연주까지 완벽하게 하더라도 인간이 무대 위에서 연주하는 공연의 가치는 더욱 높아진다. 왜냐하면 AI 음악의 희소성은 점차 사라지는 반면 세계적인 피아니스트가 실제로 지금 현장에서 연주하는 것은 복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과거 농업혁명으로 농업생산성이 향상되었을 때 농업 비중이 크게 줄었고 상대적으로 제조업과 서비스업이 늘어났고 제조 관련 생산성 향상을 경험하면서 다시 한번 서비스업의 비중이 늘어났듯이 AI로 인해 제조업은 물론 서비스업 내에서도 사람이 하는 일의 부가가치가 더욱 높아지는 경제로 구조가 변하면서 생산성이 높아진 산업이 경제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줄어드는 역설이 드러날 것이다.

AI 시대 인간노동은 세 부분으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먼저 코딩, 콘텐츠 제작, 분석 등 AI로 복제 및 대체가 가능한 부분의 경우 AI로 인해 생산성이 매우 빠르게 증가한다. 둘째로 AI에 의해 보조받는 영역을 생각할 수 있다. AI가 생산성을 크게 높이지만 인간도 필요하다. 의료, 교육, 컨설팅 등의 영역이다. 마지막으로 AI가 없는 진정한 인간 노동의 영역이다. 여기서는 인간 존재 자체가 상품으로 스포츠 및 공연, 인간관계, 의례, 공동체, 인간이 만든 예술품 등이라고 할 수 있다.

AI가 발전할수록 노동은 첫 번째에서 둘째 및 셋째로 이동하고 산업 규모 역시 그에 따라 변할 것이다. 따라서 AI로 인해 완전자동화가 진전된다고 하더라도 대량실업으로 연결되지는 않는다.

소비 측면에서 인간노동을 생각하면 대량실업은 더욱 현실화되기 어렵다. 현실 세계 사람들은 인간과의 상호작용 자체에서 만족을 얻기 때문에 많은 소비 부문에서 인간 선호가 존재한다. 이 때문에 AI 보육서비스보다는 인간 보육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더 높다.

따라서 생산과정에서 AI가 인간노동을 지속적으로 대체하더라도 소비 측면에서의 인간노동의 가치는 상대적으로 높아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인간 경험이 중요한 많은 기존 산업의 경우 AI로 완전 자동화가 가능하더라도 임금이 폭락하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바둑은 이미 AI에 의해 완전히 대체 가능한 상황이라 생산성 기준으로만 보면 인간 프로기사의 역할이 사라져야 하지만 바둑에 대한 수요는 여전히 존재한다. 왜냐하면 소비자가 원하는 것은 최선의 수를 찾는 것만이 아니라 대국 상대방과의 경쟁, 불확실성, 바둑판에 흐르는 대국자의 감정, 그리고 약자가 강자를 이기는 서사 등이기 때문이다.

인간 경험이 중요한 스포츠 산업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AI가 진행될수록 세계적인 골프선수들은 지금보다 몇 배 많은 상금을 벌어들이게 되고 관련 골프산업은 지금보다 몇 배 성장할 것이다. 이미 우리는 타이거 우즈가 평생 벌어들인 명목가치 상금을 스카티 셰플러가 몇 년 만에 쉽게 넘어선 세상에 살고 있다.

바둑과 골프의 사례가 주는 교훈은 간단하다. AI가 더 잘할 수 있는 영역에서도 실업은 현실화되지 않았고 인간 경험이 핵심인 분야에서는 더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하게 될 것이다.

AI 기술이 진전하면서 소비자는 AI가 생산할 수 있는 일반 재화 및 서비스와 실제 인간의 손길과 관심이 들어있는 재화 및 서비스라는 선택을 마주하게 된다. 후자의 예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직접 가르치는 수업, 사람이 직접 연주하는 공연, 실제 인간과 하는 스포츠, 인간 바둑기사의 대국, 프로야구 경기장에서 군중의 응원, 실제 인간과의 대화, 사람이 만든 예술작품 등은 AI가 인간노동을 대체하면 할수록 더 높은 부가가치를 산출하는 재화와 서비스가 된다.

이처럼 인간의 시간이 다른 인간의 효용함수에 직접 들어간다면, AI가 생산한 풍요가 오히려 희소하고 복제 불가능한 인간 시간에 대한 수요와 상대가격을 높일 수 있다.

기존 과업기준 생산함수에서는 “기계가 생산할 수 없는 것, 즉 인간은 무엇을 생산할 수 있나?”를 묻는다. 이 질문에서는 AI 능력이 인간 능력을 추월할수록 인간의 경제적 가치는 사라진다.

하지만 “기계가 모든 것을 생산하고 생산과정에서 인간을 대체한다고 하더라도 인간은 다른 인간에게 무엇을 원하는가? 즉 다른 인간에게서 어떠한 노동, 서비스를 원하는가?”라고 질문할 경우 AI가 인간을 대체해 모든 것을 생산할 수 있게 되어도 인간에 대한 수요가 여전히 남아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경제모델에서는 현실적인 노동 전환 기간에 따른 일시적인 마찰적 실업이 존재할지언정 구조적인 대량실업을 예상하기 쉽지 않다. 따라서 현재의 많은 논문들이 주장하듯이 AI가 직업 또는 과업의 몇 %를 자동화할 수 있는가만 가지고 장기 실업을 예측하는 것은 불완전한 모형일 뿐만 아니라 현실과 동떨어진 가정이라고 생각된다. AI 시대의 고용 문제는 기술 능력뿐 아니라 인간의 선호에 관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미래에 사람은 AI에 둘러싸여 혼자 살지 않는다. 현재와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의 존재, 다른 사람의 시간을 소비하면서 사는 것이다. 결국 AI로 인한 대량실업은 현실화되기 어렵다. 이런 이유로 앞의 기차 여행 경험이 임박한 AI 시대에 자주 상기되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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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시대, 인간 노동은 어디로 이동하나

유재수 싱귤래리티 금융 소사이어티(SFS) 간사 yoojs6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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