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크 차이나] 국적보다 생산지를 본다…중국 정부조달 '본국제품' 새 기준

[기고·박지민의 비욘드 차이나] 한국계 중국법인은 중국산으로 인정받을 수 있나

중국 정부조달에서 '중국산' 의미가 바뀌고 있다. 과거 외국기업은 현지법인을 세워도 국유기업과 정부기관 조달에서 보이지 않는 장벽을 경험했고, 반대로 중국기업이 수입한 제품이 중국 브랜드라는 이유로 국산처럼 취급되는 경우도 있었다. 2026년 시행된 정부조달 본국제품 기준은 기업 국적과 지분보다 제품이 어디에서 만들어졌고, 부품비용과 핵심공정이 어디에 남았는지를 기준으로 삼으려 한다.

본국제품(本国产品)은 중국 브랜드나 중국계 기업 제품과 같은 말이 아니다. 중국 내에서 생산되고, 중국산 부품비용 비율이 제품별 기준을 충족하며, 일부 품목은 핵심부품과 핵심공정을 중국 안에서 수행한 제품을 뜻한다.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중국의 새 조달정책은 기업의 국적보다 제품의 생산과 공급망을 보고 '중국산'을 판정하는 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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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지금 본국제품 기준을 만들었나

중국 정부조달은 의료기기, 정보통신, 교육장비, 교통·에너지와 공공서비스의 거대한 시장이다. 그러나 본국제품 정의가 명확하지 않으면 구매기관과 지역이 자의적으로 '국산'을 판단하고, 외국기업과 외지기업의 참여가 달라질 수 있다. 산업정책과 시장개방의 기준도 불투명해진다.

재정부가 공개한 최신 연간자료 기준으로 2024년 중국 정부조달 규모는 3조3750억4300만위안이였다. 정보기술·의료·교통·교육·공공시설처럼 정부와 공공기관이 큰 구매자인 분야에서 본국제품 판정은 단순 원산지 규칙이 아니라 시장접근 조건이 된다.

중국은 전국 통일 대시장과 외국인투자 동등대우를 추진하면서 정부조달 국산지원도 명문화할 필요가 있었다. 2025년 국무원 판공청이 발표하고 2026년 1월 1일부터 시행한 정책은 생산지·부품원가·핵심공정을 기준으로 본국제품을 정의하고, 외국인투자기업과 중국기업에 동일한 판정기준을 적용한다.

정책은 개방과 현지화를 동시에 추구한다. 외국기업이 중국에서 실제로 생산하고 현지 부품과 공정을 사용하면 본국제품으로 인정받을 길을 열지만, 완제품을 수입해 현지 브랜드나 유통망만 붙인 제품은 혜택을 받기 어렵다. 조달정책이 외국기업의 '시장 진입'에서 '중국 내 생산과 공급망 참여'로 조건을 바꾸는 셈이다.

20% 가격평가 우대가 만드는 차이

정부조달에서 본국제품과 비본국제품이 경쟁하면 본국제품의 제안가격을 평가할 때 20%를 차감한다. 실제 지급가격을 20% 깎는 것이 아니라 입찰점수 산정에서 가격을 낮게 보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본국제품이 100달러, 수입제품이 85달러라면 본국제품 평가가격은 80달러로 계산될 수 있다. 품질과 다른 조건이 비슷하다면 상당한 우위다.

여러 제품이 포함된 조달사업에서는 조달물 전체에서 본국제품이 차지하는 비용비중과 품목별 판정에 따라 가격평가 우대가 달라질 수 있다. 다만 구체적인 원가범위와 적용방식은 품목별 기준과 개별 입찰서식을 확인해야 한다. 제품별 부품비율과 핵심공정 기준이 아직 순차적으로 마련되는 단계이기 때문에 하나의 수치를 전국 모든 품목에 일반화해서는 안 된다.

다만 우대는 모든 구매에 동일하게 적용되지 않는다. 국제조약과 협정에 다른 규정이 있으면 그 규정을 따르고, 수입이 허용되는 사업도 본국제품 우대는 별도로 작동한다. 비수입 제품이라도 본국제품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면 우대를 받지 못한다. '중국에서 통관되지 않은 제품'과 '중국산으로 인정되는 제품'은 다른 개념이다.

본국제품은 어떻게 판정하나

첫 번째 기준은 중국 내 생산이다. 원재료·부품이 제조·가공·조립을 거쳐 새로운 명칭과 용도를 가진 제품으로 바뀌는 '속성 변화'가 있어야 한다. 단순 포장·라벨 부착·도색·분할은 생산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보세구역에서 만들었더라도 이 조건을 충족하면 중국 내 생산으로 볼 수 있다.

두 번째는 중국 내 생산 부품 원가비율이다. 재료·부품과 제조원가 가운데 중국에서 생산된 부분이 품목별 최소비율을 넘어야 한다. 정부는 시행 후 5년 안에 업종별 의견을 수렴해 비율을 단계적으로 정하고, 개별 기준에는 3~5년의 전환기간을 둘 수 있다.

세 번째는 핵심부품과 핵심공정이다. 전략성이 높은 제품은 전체 원가비율만으로 판단하지 않고 특정 부품이 중국에서 생산됐는지, 핵심 제조·가공 단계가 중국 안에서 이뤄졌는지를 본다. 첨단장비·정보통신·의료기기·에너지 분야에서 중요한 문턱이 될 수 있다.

네 번째는 증빙과 책임이다. 제조사는 원가와 생산공정을 계산하고 공급자는 입찰서에 본국제품 여부를 선언해야 한다. 구매기관은 증빙을 요구하고 허위신고가 확인되면 입찰취소·제재와 손해책임이 발생할 수 있다. 중국 내 생산 부품의 원가를 누가 어떤 회계기준으로 확인할지가 실무의 핵심이다.

외국인투자기업도 중국산이 될 수 있다

중국 재정부는 기업 소유형태, 조직형태, 지분구조와 투자자 국적을 이유로 차별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반복해서 밝혔다. 외국기업이 100% 지분을 보유한 중국법인도 제품이 본국제품 기준을 충족하면 20% 가격평가 우대를 받을 수 있다. 반대로 중국 국유기업 제품이라도 해외에서 생산해 수입했다면 본국제품으로 인정되지 않을 수 있다.

이는 한국 기업에 중요한 변화다. 중국 현지공장이 있는 기업은 '외국기업이라 조달이 어렵다'는 접근보다 제품별 중국 내 생산비율과 핵심공정, 증빙체계를 먼저 봐야 한다. 현지 협력사를 활용해 부품비율을 높이거나 중국법인이 제조·품질과 사후서비스를 맡는 구조를 설계할 수 있다.

하지만 동등대우가 자동 수주를 뜻하지는 않는다. 보안·암호·데이터·군민겸용과 중요 정보인프라 분야에는 별도 규제와 안전·신뢰성 요건이 적용될 수 있다. 지방 구매기관의 기술사양과 납품실적, 유지보수망이 사실상 장벽이 될 수 있다. 법적 국산판정과 실제 조달경쟁력은 다르다.

이 변화는 중국 외국인투자 정책과도 연결된다. 중국은 외자 R&D센터와 첨단제조 현지화를 장려하면서 정부조달에서 투자자 국적을 이유로 배제하지 않겠다고 한다. 외국기업이 연구·생산·공급업체와 서비스를 중국에 배치하면 조달시장과 산업정책에 더 깊게 들어갈 수 있다. 반대로 단순 수입판매 모델은 가격평가에서 구조적으로 불리해진다. 시장개방의 조건이 관세 인하에서 현지 가치창출로 이동하는 것이다.

구매기관 책임도 커진다. 과거에는 수입제품 불허 여부만 판단하면 됐지만 새 제도에서는 중국에서 생산된 제품도 본국제품 기준을 충족하는지 확인해야 한다. 여러 제조사의 장비와 소프트웨어·서비스를 묶는 사업은 구성품별 판정과 입찰서에 제시된 비용비율을 적용해야 한다.

중국은 2026년 정부조달 집행을 점검하면서 외국인투자기업·민영기업을 지분과 국적으로 차별하는 관행을 단속하고 있다. 그러나 동등대우를 확인하려면 입찰 결과와 이의제기, 계약변경 데이터를 공개해야 한다. 법령의 문구만으로는 기술사양과 평가위원의 재량에서 발생하는 차별을 확인하기 어렵다.

한국 기업 선택은 세 가지다. 첫째, 수입제품으로 고부가 민간시장에 집중하고 조달우대 없이 경쟁한다. 둘째, 최종 조립과 서비스부터 단계적으로 현지화해 본국제품 자격을 확보한다. 셋째, 현지 제조사와 공동생산·라이선스를 통해 조달시장에 들어간다. 각 방식은 투자비·지식재산권·품질·고객통제 수준이 다르다. 정부 지원이나 20% 평가우대만 보고 현지화를 결정하면 장기비용을 놓칠 수 있다.

의료기기와 시스템조달 특수성

의료기기는 현지 생산과 등록이 연결된다. 중국 내 생산하고 중국 의료기기 등록증을 보유한 제품은 본국제품 판정에서 유리할 수 있지만 핵심부품과 원가비율 기준이 제품별로 세분화될 가능성이 있다. 수입등록 제품을 중국법인이 판매하는 것만으로는 중국산이 되지 않는다.

정보시스템·스마트병원·도시 인프라처럼 하드웨어·소프트웨어·서비스를 묶는 사업은 본국제품 비중과 구성품별 판정이 중요하다. 공급자는 어떤 장비와 라이선스, 설치·운영서비스를 비용계산에 포함할 수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해외 핵심장비 한 개가 전체 원가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면 나머지를 현지화해도 전체 우대가 달라질 수 있다.

대리점과 시스템통합기업 선언만 믿어서는 안 된다. 제조사별 원가증명, 공급망 변경, 모델별 생산지와 소프트웨어 라이선스를 추적해야 한다. 조달계약 뒤 부품이 바뀌면 본국제품 자격과 계약이 흔들릴 수 있다.

전환기간은 기회이자 불확실성이다

품목별 부품비율과 핵심공정 기준이 모두 정해지기 전까지는 중국 내 생산이라는 비교적 넓은 기준이 적용된다. 외국기업에는 현지 생산라인과 공급망을 조정할 준비기간이다. 동시에 기준이 어떻게 높아질지는 불확실하다. 단순 최종 조립만으로 시작했다가 몇 년 뒤 핵심부품이나 핵심공정의 중국 내 수행을 요구받을 수 있으므로, 기업은 최신 품목기준과 입찰서식을 계속 확인해야 한다.

중국 정부는 내·외자 기업과 협회 의견을 수렴하고 3~5년 전환기간을 주겠다고 밝혔지만, 전략산업의 기준은 빠르게 강화될 수 있다. 기업은 현재 기준에만 맞추지 말고 제품별 원가·부품·공정을 시뮬레이션해야 한다.

공급망 현지화가 지나치면 기술과 품질, 글로벌 효율을 훼손할 수도 있다. 현지조달 비중을 높이기 위해 검증되지 않은 부품을 사용하거나 핵심기술을 이전하면 장기경쟁력이 낮아질 수 있다. 조달시장 규모와 기술보호 균형이 필요하다.

병목은 원가증명과 지방집행이다

첫째, 부품원가 계산이 복잡하다. 다단계 공급망에서 부품의 생산지와 비용을 확인하고, 환율·내부거래·소프트웨어와 연구개발비를 어떤 방식으로 반영할지 논쟁이 생길 수 있다. 중소기업에는 증빙비용이 큰 장벽이다.

둘째, 품목별 기준이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전환기간 동안 구매기관 해석이 다를 수 있고, 기업은 향후 기준을 예측하기 어렵다. 표준화된 자기신고서와 제3자 검증, 이의제기 절차가 필요하다.

셋째, 지방보호주의가 기술사양으로 이동할 수 있다. 국적과 지분을 직접 조건으로 넣지 못하더라도 특정 지역의 실적·인증·서비스망을 요구할 수 있다. 공정경쟁 심사와 전국 통일 대시장 정책이 실제 입찰서까지 작동해야 한다.

넷째, 현지화와 안보 경계다. 중국산으로 인정돼도 데이터·사이버보안·암호와 핵심 정보인프라 심사를 통과해야 하는 제품이 있다. 조달혜택과 규제비용을 함께 계산해야 한다.

한국 기업은 부품명세서(BOM)와 공정을 조달전략으로 관리해야 한다

한국 정부와 무역지원기관은 중국 정부조달을 수출시장과 현지 생산시장으로 나눠 지원해야 한다. 품목별 본국제품 기준, 20% 가격우대, 등록·보안·표준과 지역 입찰관행을 연결한 데이터베이스가 필요하다.

대기업과 중견기업은 중국법인의 지분구조보다 제품 부품명세서, 원가와 생산공정을 관리해야 한다. 어떤 부품을 현지화하면 우대를 받을 수 있는지, 핵심기술과 품질이 훼손되지 않는지, 기준이 높아질 때 대응 가능한지를 시나리오별로 계산해야 한다. 현지 공급계약에는 생산지·원가증명과 기준변경 대응 의무를 넣어야 한다.

중소기업과 스타트업은 중국 유통사나 시스템통합기업이 '국산 인정'을 보장한다는 말을 그대로 믿지 말아야 한다. 제조사 확인서, 중국법인의 자격, 의료·사이버·데이터 허가와 조달 플랫폼 등록을 직접 점검해야 한다. 금융권은 현지화 투자에 대한 대출을 심사할 때 조달자격 지속성과 기술이전 위험을 함께 봐야 한다.

대학과 시험·인증기관은 중국 부품원가 계산과 생산공정 기준, 국제조달규범을 연구하고 기업 증빙을 지원할 수 있다. 중국에 이미 공장을 둔 한국 기업은 현지 공급망과 연구개발을 조달 기회로 연결할 수 있지만, 본국제품 판정을 얻기 위해 핵심기술과 데이터 통제권을 잃지 않도록 법인·라이선스 구조를 설계해야 한다.

중국의 본국제품 기준은 외국기업을 단순히 배제하는 제도도, 완전히 개방하는 제도도 아니다. 국적 대신 생산과 공급망을 기준으로 현지화의 문턱을 명문화한 것이다. 한국 산업계가 물어야 할 질문은 중국법인이 중국기업으로 보이는가가 아니다. 우리 제품의 어느 부품과 공정이 중국 조달시장에서 '중국산'으로 인정되고, 그 대가로 어떤 기술과 운영통제권을 내주게 되는가.

박지민 36kr코리아 공동 대표 3guowill@krstar.c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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