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누가 고르고, 무엇으로 검증하는가

영국 임페리얼 칼리지 런던 연구진은 항생제 내성 유전자를 세균 사이로 옮기는 유전물질이 어떻게 종의 벽을 넘는지 10년에 걸쳐 밝혀냈다. 아직 발표하지 않은 이 문제를 구글의 인공지능(AI) 공동과학자에게 던지자 답은 이틀 만에 돌아왔다. 연구 결과는 지난해 국제학술지 '셀(Cell)'에 실렸다.

보통 여기까지 인용된다. 그런데 논문을 펼쳐보면 다른 대목이 있다. AI가 내놓은 것은 하나의 답이 아니라, 여섯 갈래의 가설과 연구 방향이었다. AI는 이들을 순위화했고, 그 점수에서 실제 정답에 해당하는 가설과 실험으로 주된 경로가 아님이 확인된 가설이 똑같은 점수를 받았다. 여섯 갈래 가운데 어느 것이 답인지 가려낸 것은 이미 실험으로 답을 확인해 둔 연구진이었다.

연구진은 자신들이 왜 늦었는지도 함께 밝혔다. 이런 유전물질은 바이러스에 전적으로 의존한다는 오랜 통념에 매여 다른 가능성을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AI는 그 통념에 매이지 않았다. 사람과 AI는 서로 다른 것을 못 본다.

AI는 가설의 순위를 매길 수는 있었다. 그러나 무엇이 과학적 답인지 판정하지는 못했다. 어느 것을 검증할지는 연구자의 몫이었다. 그래서 문제는 AI의 성능만이 아니라, 쏟아지는 가설을 누가 고르고 무엇으로 검증하는가로 옮겨간다.

올해 '네이처'에 실린 한 분석 글은 자연과학 논문 4130만편을 검토했다. AI를 활용한 연구자는 그렇지 않은 연구자보다 논문을 3.02배 많이 냈고, 인용은 4.84배 많았다. 반면 AI를 쓴 연구가 다루는 주제의 폭은 그렇지 않은 연구보다 4.63% 좁았고, 과학자들이 서로의 연구에 관여하는 정도는 22% 낮았다.

이유는 데이터에 있다. AI의 성과는 데이터가 풍부한 영역에서 더 쉽게 나타난다. 밤에 잃어버린 열쇠를 가로등 밑에서만 찾는 것과 비슷하다. 밝은 곳이라 잘 보이지만, 열쇠가 거기 있다는 보장은 없다. 그리고 데이터가 많은 영역으로 쏠리는 경향은 점점 강해지고 있다. 연구자 개인에게 AI 활용은 합리적인 선택이다. 그러나 그런 선택이 모이면 연구 전체의 다양성이 줄어들 수 있다. 개인의 선택만으로는 풀기 어렵다. 제도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제도의 출발점은 학회여야 한다. 물리학과 의학, 수학과 공학이 다루는 자료와 연구 방법은 서로 다르다. AI가 쓴 코드를 논문에 어떻게 밝힐 것인지, AI가 세운 가설의 공로를 어떻게 다룰 것인지, 같은 결과가 다시 나오는지를 무엇으로 확인할 것인지는 이미 학술지 편집 현장의 문제다. 셀 논문의 저자들도 AI가 만든 가설을 어떻게 선별할지, 공로와 저자 표기를 어떻게 할지, 동료 심사와 연구비 지원 방식을 어떻게 바꿀지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이런 기준을 정부가 일괄적으로 만들 수는 없다. 분야의 사정은 그 분야의 연구자가 가장 잘 안다. 정부와 기업은 연구자가 자료와 계산 자원에 접근하도록 뒷받침하고, 자료가 부족해 AI가 잘 닿지 않는 영역을 의도적으로 지원하는 역할을 맡으면 된다.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과총)의 역할이 여기에 있다. 올해 창립 60주년을 맞은 과총에는 과학기술 전 분야에 걸쳐 600여개 회원단체가 있다. 지난 60년이 남긴 것을 하나만 꼽으라면 이 학회들이다. 한 분야가 먼저 마련한 기준이 다른 분야로 건너가게 하고, 분야마다 다른 경험과 고민이 한자리에 모이게 하고, 연구 현장의 판단이 국가 정책에 닿게 하는 일이다. 전 분야의 학회가 모인 조직이 아니면 하기 어렵다.

내년은 우리나라에 과학기술 전담 부처가 생긴 지 60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1967년 과학기술처로 출발한 과학기술 행정도 새로운 60년을 준비할 때다. 과총은 미래전략위원회를 통해 다음 60년의 정책 방향을 준비하고 있다.

지난 60년 대한민국은 과학기술의 힘으로 산업과 경제의 지형을 바꿨다. 다음 60년에는 과학의 내용뿐 아니라 과학하는 방식도 다시 설계해야 한다. 그 변화의 출발점은 정책 문서가 아니라 연구 현장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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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남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회장(서울대 수학교육과 교수)

권오남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회장·서울대 수학교육과 교수 president@kof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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