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 칼럼] 원전 감발의 보이지 않는 청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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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진 KIS자산평가 ESG사업본부장

태양광 발전은 대기오염, 물 부족, 온실가스 배출 문제를 완화 또는 해결할 수 있는 중요한 지속가능한 발전수단이다. 한편으로 태양광 발전이 늘어나면서 과거에는 크게 생각하지 못한 문제도 발생한다. 봄가을 맑은 날 오후처럼 태양광은 쏟아지고 전력수요는 상대적으로 낮아지는 시간에, 전력거래소는 특정 발전사업자에게 발전량을 줄이라고 지시한다. 지시를 받은 재생에너지 사업자는 출력을 제한하고, 때로는 원자력발전소가 발전 출력을 낮춘다. 전력계통은 언제나 공급과 수요가 일치해야 하는데, 이러한 '유연성 서비스'를 제공한 자에게 정당한 대가가 지불되고 있는가? 최근 '지산지소', 지역에서 생산한 에너지를 지역에서 소비하자는 논의가 활발하다. 지산지소는 송전망 건설의 부담을 덜어 주지만, 그 대신 수급을 맞추는 부담을 지역 안에 남긴다.

잉여전력이 발생했을 때 광역 전력계통망은 전력을 다른 지역으로 내보낸다. 그리고 원칙적으로 지역 내 전력 수급 불균형 문제는 그 지역 안에서 처리해야 한다. 그런데 유연하게 조정 가능한 발전 자원이 경우에 따라 그 지역에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 그런 상황이다보니 우리나라에서 재생에너지 밀집지역과 원전 입지지역은 상당 부분 겹치기 때문에, 재생에너지가 늘어나면 원자력발전소가 출력을 줄여야 하는 문제가 생긴다. 반대로 다른 발전소의 출력을 줄여도 밀려드는 태양광 전력을 감당할 수 없으면 태양광 발전출력을 제한하게 된다. 결국 재생에너지와 원전 밀집 지역 안에서 해결하려 하면, 그 지역 원전과 태양광의 출력제한이 사실상 우선 해법이 된다. 그런데 이 유연성 수요를 발생시킨 것은 계통 전체의 재생에너지 확대 정책이다 보니, 비용을 유발한 주체와 부담하는 주체가 어긋나 있는 것이다.

이러한 구조에서 지산지소로 송전망을 건설하지 않아 절약한 비용은 사라지지 않고 출력제어와 감발, 저효율 운전으로 모습을 바꾸어 나타난다. 유연성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업자에게 대가를 주지 않거나, 이런 상태를 초래한 원인 유발자에게 비용을 청구하지 않게 되면, 각 사업자들 사이에 지속적인 갈등이 벌어진다. 비용이 드러나지 않으면 그 부담은 경제적인 원인이 아니라 협상력의 크기로 정해지므로 누가 문제를 유발했는가가 아니라 누구 목소리가 크냐로 비용이 귀착될 가능성이 높다.

원자력발전은 기술적으로 출력조정이 불가능하지 않다. 발전량의 약 70%를 원전이 감당하는 프랑스에서는 원전이 설계 단계부터 계절과 요일, 시간대에 따른 출력조정을 전제로 건설 및 운영되고 있다. 그러나 국내 원전은 연중 일정한 발전, 즉 기저부하를 전제로 운영되어 왔다. 잦은 출력변동은 증기발생기와 배관, 밸브에 부담을 누적시키고 설비의 수명관리 부담을 키워 안전을 위한 정비, 수리 비용이 높아지지만, 이 비용은 어디에도 가시적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원전 출력제어 건수는 2020년 2건에 불과했지만, 2025년에는 27건으로 증가하였다. 그리고 그 비용은 소리없이 발생하고 있고 발전 사업자에게 청구되고 있다.

이러한 기술적 문제를 해결하려면 에너지저장장치와 양수발전처럼 유연하게 전력 수급을 맞추기 위한 장치가 필요하다. 이외에도 송전망을 보강하는 것, 수요를 이동시켜 공급과 일치시키는 것, 재생에너지를 출력제어하는 것, 원전을 감발하는 것 가운데 어느 조합이 가장 저렴하고 사회적으로 바람직한지 논의하는 것은 때로는 이익 집단과 정치적인 논쟁으로 번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은 '가격' 즉 청구서가 정하게 해야 한다. 다행히 올해부터 재생에너지 입찰제도가 제주를 거쳐 육지로 확대되면서 태양광 출력제어에 대한 보상 경로가 열리고 있다. 계통의 요청으로 출력을 낮추는 원전에 대해 그런 경로를 만드는 것이 논의되고 있지만 아직은 불명확하다. 같은 이유로 발전을 줄이는데 한쪽에만 값이 매겨진다면, 유연성의 비용은 제도적인 공백이 있는 쪽으로 청구될 수밖에 없다. 원칙적으로 계통의 요청으로 발전을 줄이는 모든 자원에는 그 대가가 지불되어야 하고, 계통에 비용을 유발하는 행위에는 그 비용이 청구되어야 한다. 그래야 각 자원이 공정한 선상에서 경쟁할 수 있다.

유연성 서비스에 대한 지불은 지산지소나 재생에너지 확대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며, 송전망 건설의 현실적 어려움을 도외시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그 어려움을 피해 얻은 이익이 누군가의 설비에 보이지 않게 쌓이고 있다면, 우리는 정당한 값을 치르지 않는 것이다. 비용 유발과 가치 제공에 대해 '오고 가는 현금 속에'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에너지 믹스에 대한 '신뢰'가 싹틀 수 있다.

박용진 KIS자산평가 ESG사업본부장 yongjin.park@kisprici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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