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칼럼] EU PPWR, 포장 무역의 새 규칙…韓 표준·데이터 선점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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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라 한국환경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유럽연합(EU)의 포장 및 포장폐기물 규정(PPWR)이 지난 8월 12일 본격 시행에 들어갔다. 이제 EU 시장에 포장된 제품을 내놓으려면 포장별 적합성 선언서와 기술문서를 갖춰야 한다. 2028년에는 소재별 분리배출 라벨과 국가 등록부 신고가, 2030년에는 재활용성 등급과 포장 최소화 증명이 뒤따른다. 관세가 아니라 '포장'이 시장 진입의 조건이 되는 새로운 무역 규칙이 시작된 것이다.

이달 초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국제 포장 지속가능성 회의(Sustainability in Packaging Europe)에서 강조한 것은 이 규칙이 두 개의 축 위에서 움직인다는 점이다. 하나는 '무엇이 재활용 가능한가'를 정하는 표준이고, 다른 하나는 이를 증명하는 데이터다.

먼저 표준이다. EU 집행위원회는 재활용 가능성 판정 기준을 위임법령으로 정해야 하고, 이를 위해 유럽표준화위원회(CEN)가 34개 표준·기술사양을 마련했다. 이를 1년간 검토한 EU 공동연구센터(JRC)는 표준을 큰 진전으로 평가하면서도 날카로운 문제를 짚었다. 현행 재활용성 시험은 시험할 포장을 잘게 부숴 재생원료를 만들고, 이것으로 새 제품을 성형해 품질을 확인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현행 방식은 시험 재료를 새 원료와 두 번 섞는다. 먼저 25대 75로 섞고, 그 결과물을 다시 50대 50으로 섞는다. 그 결과 최종 제품에 남는 시험 재료는 8분의 1(12.5%)에 불과하다. 잉크 한 방울이 물을 흐리는지 보려고 양동이에 떨어뜨리는 것과 다르지 않다. 재활용을 방해하는 포장이라도 이렇게 묽어지면 시험을 통과할 수 있다. JRC가 “재활용을 위한 설계가 희석을 위한 설계가 되어선 안 된다”고 지적한 이유다. JRC는 시험 재료의 비중을 높이고 비교 기준을 새 원료로 통일해, 시험하는 사람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여지를 줄이라고 권고했다. 최종 위임법령은 CEN 표준을 대부분 따르되 약 15%는 이런 권고를 반영해 달라질 전망이다.

다음은 요금이다. 유럽에는 포장 생산자책임재활용(EPR) 제도만 100개가 넘는다. 같은 화분이 독일에서는 포장이지만 오스트리아에서는 크기에 따라 제품이 되고, 같은 10ℓ 우유도 스웨덴과 벨기에에서 가정용·산업용 분류가 갈린다. 조건을 충족한 플라스틱 포장에 ㎏당 최대 0.6유로를 깎아주는 네덜란드처럼 요율 차등도 커지고 있다.

결국 두 축을 잇는 것은 데이터다. 국가마다 다른 기준에 대응하려면 구성요소별 소재와 중량, 내용물, 판매 국가와 물량, 라벨 면적 비율까지 정량 데이터가 필요하다. 공급업체에 '예·아니오'가 아니라 수치로 물어야 여러 시장에 다시 쓸 수 있다는 조언이 나온 이유다. 스웨덴에서는 같은 음료 카톤을 생산자책임기구에는 한 덩어리 중량으로, 국가 등록부에는 섬유·알루미늄·폴리에틸렌으로 나눠 신고해야 한다.

우리 현실은 어떤가. 올해 1분기 중소기업 화장품 수출은 역대 분기 최고를 기록했고 유럽 수출은 43.7% 늘었다. 그러나 업계는 전담 인력과 시험비용, 영문 기술문서 역량 부족을 호소하며 상시 지원체계를 요구하고 있다. 대응이 늦으면 납품 지연과 거래처 이탈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경고다. 수출이 가장 빠르게 느는 곳이 규제에 가장 많이 노출된 곳이다.

국내 제도도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정부는 2028~2032년 재활용 목표율을 정하면서 EPR 개편을 검토하고 있다. 의무량 중심의 재활용을 넘어 실제 재활용 성과를 높이려는 취지로, 종이팩처럼 재활용률 개선이 필요한 품목에 의미 있는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재활용이 어렵거나 비용이 많이 드는 포장을 순비용 기반 EPR 분담금으로 다루라는 JRC의 권고와도 맥을 같이한다. 알루미늄박 종이팩의 재활용 용이성 등급 표시를 3년간 유예한 것도 국내 수거·재활용 인프라 여건을 고려한 조치다. 다만 EU가 기준을 구체화하고 있는 만큼, 유예 기간 동안 인프라 확충과 기준 정비를 함께 추진해 국내 기준과 수출 기준의 간극이 벌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재활용성과 재생원료를 데이터로 증명하는 방식은 곧 국제 무역의 공통 언어가 될 것이다. 우리도 국내 재활용 용이성 등급평가를 EU 재활용성 등급과 비교·정합화하고, EPR 분담금을 순비용과 재활용 성능에 연동해 기업이 설계 단계에서 신호를 받도록 해야 한다. 중소기업이 구성요소 단위 포장 데이터를 한 번 구축해 여러 시장에 쓸 수 있도록 공통 데이터 체계와 지원 창구도 마련해야 한다. 지난 7월 법적 근거가 마련된 제품포장관리지원센터의 기능을 넓히는 것이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이제 포장 규제는 환경정책을 넘어 무역 규칙이다. 표준과 데이터를 먼저 갖춘 나라가 새 규칙의 수혜자가 된다.

이소라 한국환경연구원 선임연구위원 sryi@kei.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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