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시론] 환경영향평가, 규제가 아닌 기술로 돌아가야

Photo Image
박민대 한국환경기술사회 환경평가센터장(前 한국환경영향평가협회장)

정부가 지역 균형성장을 위한 '5극3특' 체제 구축에 속도를 내고 있다. 수도권과 동남권, 대경권, 중부권, 호남권의 5개 초광역권과 제주·강원·전북 3개 특별자치도의 자치권한과 경쟁력을 강화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 과정에서 환경영향평가 협의권한의 지방 이양도 중요한 과제로 떠올랐다.

한편 수도권에서는 주택 공급 확대가 시급한 현안이다. 단순히 공급 물량을 늘리는 것을 넘어 재개발·재건축 사업의 행정절차를 개선해 실제 착공과 입주 시점을 앞당기는 실행력이 중요해졌다. 환경영향평가 역시 이러한 변화 속에서 제도의 목적을 지키면서도 보다 효율적으로 작동할 방법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환경영향평가는 개발사업을 막기 위한 제도가 아니다. 사업 시행을 전제로 환경에 미칠 영향을 사전에 검토하고 필요한 저감 방안을 설계와 사업계획에 반영함으로써 환경과 개발의 조화를 찾는 제도다. 자연환경을 보전하고 쾌적한 생활환경을 확보하는 동시에 사회·경제적 기반과 조화를 이루도록 하는 것이 본질이다.

따라서 환경영향평가 협의기간을 단축한다고 해서 평가를 느슨하게 하거나 절차를 생략해서는 안 된다. 반대로 평가항목을 무작정 늘리고 획일적인 기준을 적용하는 것 역시 환경영향평가의 취지와 거리가 있다. 필요한 것을 제대로 평가하고 불필요한 절차와 중복을 걷어내는 것이 진정한 제도 개선이다.

서울시 환경영향평가 사례는 이러한 과제를 잘 보여준다. 서울시는 환경영향평가 심의위원회를 운영하고 있지만 현장 경험을 가진 평가기술자보다 대학과 연구기관 전문가 중심으로 심의가 이뤄지는 구조다. 환경영향평가는 학술적 기반에 기초해 사업 현장에서 악영향을 예측하고 실현 가능한 저감 대책을 찾아내야 하는 기술적 절차다. 현장성과 기술성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는다면 심의 과정에서 실천하기 어려운 요구가 나오거나 사업마다 서로 다른 잣대가 적용될 가능성이 있다.

생태면적률이 대표적이다. 환경영향평가 관련 기후에너지환경부 고시는 구도심 개발사업에 대해 생태면적률 권장달성목표를 30% 이상으로 정하고, 사업과 지역 특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목표를 조정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반면 서울시 환경영향평가 심의기준은 정비사업에 45% 이상을 적용한다.

실제 잠실주공5단지 주택재건축정비사업은 환경영향평가 협의 과정에서 생태면적률 31.92%로 협의를 완료한 반면, 은마아파트 재건축정비사업은 서울시 심의에서 46.92%로 협의를 마쳤다. 제도의 운영 주체에 따라 사업자가 충족해야 할 기준에 상당한 차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의미다.

지하수 조사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나타난다. 서울시 심의 사례를 보면 어떤 사업에는 지하수 유동방향을 고려해 2개 지점을 추가하도록 했고, 다른 사업에는 별도의 추가 의견이 없었다. 또 다른 사업에서는 축구장 면적 0.75㏊당 1개소 이상, 약 33개 지점을 추가하도록 요구했다. 사업의 입지와 규모에 따른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조사 목적과 필요성을 중심으로 일관되고 예측 가능한 기술적 판단이 이뤄지는지는 점검할 필요가 있다.

환경영향평가의 신뢰를 높이고 협의기간도 줄이려면 첫째, 심의체계를 '기술심의' 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 환경영향평가는 대기·수환경·토지환경·자연생태·생활환경 등 다양한 분야를 다룬다. 평가계획 수립부터 현황조사, 영향 예측, 저감 대책 마련과 사후관리까지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된다. 환경영향평가 업무를 수행하는 분야별 평가기술자가 시작단계에서 마무리 단계까지 지속적으로 참여해야 하는 이유다. 특히 환경영향평가서 작성내용과 방향을 결정하는 평가준비서 심의 단계인 환경영향평가협의회 운영에 평가기술자 참여가 평가서의 질 뿐만 아니라, 기간 단축의 승패를 가르는 핵심이다.

Photo Image
환경영향평가 협의기간 단축을 위한 협의회 운영 방향. 자료 출처 : 한국환경기술사회 환경평가센터

서울시의 경우 심의위원 풀을 확대하고 평가기술자와 대학·연구기관, 공공기관 전문가가 균형 있게 참여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 평가 분야별로 복수의 전문가가 참여한다면 학술적 전문성과 현장 기술성을 함께 확보할 수 있다.

둘째, 중복 심의를 줄여야 한다. 재개발·재건축 사업은 환경영향평가뿐 아니라 건축통합심의 등 여러 행정절차를 거친다. 서울시는 신속통합기획을 통해 건축통합심의에 환경 분야를 포함하고 있지만 환경영향평가와 보다 긴밀하게 연계할 여지가 있다. 환경영향평가 초안 단계에서 충분한 전문심의를 거친 내용을 건축통합심의에 반영하고, 동일한 사안을 후속 단계에서 반복적으로 심의하지 않는 방식으로 절차를 설계할 수 있다.

셋째, 획일적 기준보다 사업 특성을 반영할 수 있는 합리적 기준이 필요하다. 생태면적률과 자연지반녹지, 굴착 깊이, 일조 영향 등은 서로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 한 요소의 기준을 일률적으로 높이면 다른 계획 요소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사업 규모와 입지, 주변 환경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환경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기술적 조정의 여지를 열어둬야 한다.

이러한 개선은 환경영향평가 협의권한의 지방 이양을 앞두고 더욱 중요하다. 중앙정부의 권한을 지방정부로 옮기는 것만으로 협의기간이 저절로 단축되는 것은 아니다. 현재의 검토 방식과 심의 구조를 그대로 둔 채 담당 기관만 바꾼다면 같은 문제가 지역마다 반복될 수 있다.

환경영향평가는 환경 현황을 정확히 진단하고, 사업으로 발생할 영향을 과학적으로 예측한 뒤, 목표 기준을 달성하기 위한 저감 대책을 마련하고 그 효과를 검증하는 전문적인 기술 시스템이다. 따라서 권한 이양에 앞서 누가 무엇을 평가하고 판단하며 그 결과에 어떤 책임을 질 것인지부터 명확히 해야 한다.

협의기간 단축과 환경성 강화는 서로 반대되는 목표가 아니다. 전문성이 부족하면 불필요한 자료 요구와 반복적인 보완이 늘어나고 협의기간도 길어진다. 반대로 평가의 목적과 항목을 명확히 하고 해당 분야의 기술전문가가 책임 있게 판단하면 꼭 필요한 환경보전 대책에 역량을 집중하면서 행정절차도 줄일 수 있다.

이제 환경영향평가도 '얼마나 많이 검토했느냐'에서 '얼마나 정확하게 평가하고 실현 가능한 대책을 만들었느냐'로 무게중심을 옮겨야 한다. 협의권한 지방 이양도 이러한 제도 혁신과 함께 이뤄져야 한다. 환경영향평가의 전문성을 높이는 것, 그것이 환경을 지키면서 개발사업의 속도까지 높이는 가장 확실한 길이다.

박민대 한국환경기술사회 환경평가센터장·前 한국환경영향평가협회장 eiapmd@naver.com

〈필자〉환경오염 진단과 수치모델을 활용한 수질변화 예측 분야에서 전문성을 쌓았으며, 30년 넘게 환경영향평가 기술자로 활동했다. 1998년 수질관리기술사를 취득했으며 한국환경영향평가협회 교육위원장과 부회장을 거쳐 2019년부터 협회 10·11대 회장을 연임했다. 현재 중천엔지니어링 대표이사와 한국환경영향평가학회 부회장을 맡고 있다.

  • 놓치면 아쉬운 정보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