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의 넥스트 거버넌스] 〈27〉르네상스와 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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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 KAIST 문술미래전략대학원 초빙석학교수·前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요즘 어디를 가도 인공지능(AI) 이야기다. AI는 하루가 다르게 진화하며 인간이 사고하고 일하는 방식 자체를 흔들고 있다. 그 충격이 어디까지 미칠지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우리는 이 거대한 변화에 어떻게 대비해야 할까. 대한민국은 과연 AI 강국이 될 수 있을까.

인류의 역사를 돌아보면 이처럼 인간이 세상을 이해하고 살아가는 방식까지 바꾼 거대한 전환이 있었다. 르네상스다. 물론 두 전환의 출발점은 다르다. 르네상스가 인간과 세계를 바라보는 인식의 변화에서 출발했다면, AI는 기술에서 시작됐다. 그러나 그 파장은 닮아 있다. 르네상스가 사상과 과학, 예술과 경제를 바꾸었듯 AI 역시 산업을 넘어 교육과 문화, 노동과 창작, 나아가 인간의 역할과 존재 의미까지 다시 묻게 하고 있다.

그렇다면 르네상스는 어떻게 가능했을까. 당시 이탈리아는 하나의 통일국가가 아니었다. 피렌체, 베네치아, 밀라노 등 도시국가들은 인재와 부를 놓고 치열하게 경쟁했다. 대학의 지식은 공방의 기술과 만났고, 상인의 자본은 예술가와 학자의 새로운 시도를 후원했다. 지식은 책장에 갇히지 않고 예술과 건축, 천문학과 금융, 정치와 기술의 경계를 넘나들었다.

그 토양에서 페트라르카는 인문주의의 문을 열었고, 마키아벨리는 권력과 국가를 현실의 눈으로 새롭게 보았다. 다빈치와 미켈란젤로는 인간 자체를 탐구와 표현의 중심에 놓았고, 뒤이어 과학자들은 인간이 서 있는 우주의 자리까지 흔들었다. 천재들이 르네상스를 이끌었지만, 오랜 시간 축적된 학문과 교육, 예술과 철학, 질문하는 자유와 새로운 생각을 받아들이는 사회가 그 천재들을 길러냈다. 눈에 보이는 위대한 성취 뒤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의 오랜 축적이 있었다.

다시 AI로 돌아와 보자. 대한민국은 AI 강국을 외치며 GPU 수급에 사활을 걸고, 데이터센터를 짓고, 지역마다 메가 클러스터를 추진한다. 제조업 강국인 대한민국에 피지컬 AI는 놓쳐서는 안 될 기회다. 모두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은 AI 강국으로 가는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니다.

AI 강국은 단지 앞선 AI 기술을 보유한 나라가 아니라, 그 기술로 새로운 지식을 발견하고 산업과 문화를 창조하며 인간의 삶을 발전시키는 나라여야 한다. 그렇다면 중요한 것은 기술의 성능만이 아니다. 그 기술로 무엇을 질문하고, 무엇을 창조하며, 어떤 사회를 향해 나아갈 것인가를 결정하는 인간과 사회의 내적 역량이다.

대한민국은 압축성장으로 산업화의 시간을 단축했다. 자본과 속도로 많은 격차를 따라잡았다. 그러나 모든 것을 압축할 수는 없다. 깊이 생각하는 시간, 실패를 견디는 연구문화, 사람을 길러내는 교육, 학문의 전통, 문화와 예술의 상상력, 기술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묻는 철학은 돈을 쏟아붓는다고 단기간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AI의 능력이 커질수록 오히려 무엇을 묻고 무엇을 창조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인간의 사고와 통찰은 중요해진다. 산업화 시대에는 '빨리'가 추격의 무기였다면, AI 시대에는 '깊이'가 선도의 조건이다.

르네상스를 이끈 주인공은 결국 사람이었다. 축적된 지식과 서로 다른 분야가 자유롭게 만나는 개방성, 그리고 새로운 시도와 혁신을 받아들이는 사회의 힘이 그들을 만들었다. AI 강국을 꿈꾸는 대한민국에도 이러한 보이지 않는 자산의 축적이 필요하다.

역사가 우리에게 남긴 통찰은 분명하다. 미래의 주인공이 등장할 토양을 만드는 것이 국가의 역할이다. 대한민국은 보이는 것을 빠르게 쌓아 산업 강국이 되었다. 이제 보이지 않는 것을 깊게 쌓아야 한다. 그 가치를 발견하고 축적해 국가의 힘으로 만드는 것, 그것이 AI 시대의 넥스트 거버넌스가 요구하는 새로운 리더십이다.

이영 KAIST 문술미래전략대학원 초빙석학교수·前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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