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도체 장비에 들어가는 필수 부품의 납기가 2배로 늘며 장비 업계가 수급난에 빠졌다.
인공지능(AI) 확산으로 반도체와 제조 설비 수요는 급증했지만, 부품 공급망은 한정된 생산 능력 탓에 수요에 대응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반도체 산업 전반의 투자 기조를 발목 잡는 요인이 될 것이란 우려가 커졌다.
16일 업계에 따르면, 반도체 제조용 장비에 들어가는 필수 부품 납품 기간(리드 타임)이 2배 이상으로 늘어났다. 증착 장비를 만드는 국내 A 장비사 고위 관계자는 “부품 수급에 난항을 겪고 있다”며 “주문 후 4개월이면 증착 장비용 부품을 받을 수 있었지만, 최근에는 10개월까지 늘었다”고 말했다.
반도체 레이저 공정 장비를 제조하는 B사는 일본산 핵심 부품을 받는데 최대 40개월까지 걸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B사 관계자는 “웃돈을 주더라도 빨리 납품받길 원하지만 부품 공급사의 생산 능력(캐퍼)이 제한적이라 리드타임을 앞당기기 어렵다는 통보를 받았다”며 “대체 공급망을 확보하지 않으면 당장 장비 제조가 어려운 상황”이라고 전했다.
패키징 장비 업체 C사는 국내에 부품 공급망을 구축했지만, 이 또한 납품이 지연되고 있다. C사 임원은 “해외에서 수급하는 것보다 상황이 좋은 편이지만, 그래도 평소보다 부품을 확보하는데 시간이 50% 정도 더 걸리고 있다”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4개월이면 받았던 패키징 장비 제조용 부품이 지금은 6개월 이상 돼야 납품된다는 의미다.
부품 수급난의 가장 큰 요인은 수요 폭증이다. AI 확산과 인프라 투자 급증으로 AI 반도체와 메모리 수가 대폭 늘었기 때문이다. 반도체를 제조하려면 장비가 필요하고, 장비를 만들려면 모듈 등 핵심 부품이 필수다.
부품 제조사들이 'AI 붐'에 대비하지 못해 미리 생산 능력을 확충하지 못한 것이 수급난을 야기했다는 게 중론이다.
업계 관계자는 “부품 업계가 지금 생산 능력을 키운다고 하더라도 현재 수요에 대응하기엔 늦었다”며 “여기에 AI로 인한 반도체 슈퍼사이클이 언제 꺾일지 몰라 생산 확대 투자마저 적극적이지 못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특히 반도체 장비 제조 주축인 일본 부품 업계가 생산 능력 투자에 보수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산 부품을 꺼리는 업계 분위기도 한몫하고 있다. 미·중 무역 갈등 탓이다. 첨단 반도체를 만드는 핵심 부품 공급망에 중국산이 끼어들 경우, 미국 반도체 제조사와의 거래 제한 가능성도 제기된다. 반도체 장비용 부품 시장에서 가격 경쟁력으로 급성장한 중국산을 배제하니 대안 마련이 쉽지 않다.
부품 수급난이 반도체 장비 납기 지연을 가중시킬 것이란 우려도 제기된다. 현재 반도체 제조사가 장비를 납품받는 기간도 평시와 견줘 2배로 늘어난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설비 투자가 한창인 글로벌 반도체 제조사향 납기가 더 걸리는 것으로 파악된다.
반도체 장비 업계 관계자는 “반도체 장비 납기 지연에 이어 장비용 부품 수급난까지 더해지면서 세계적인 반도체 생산 인프라 투자가 늦춰질 가능성이 커졌다”며 “현재 평택·용인 등에 투자를 추진하는 삼성전자·SK하이닉스도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권동준 기자 djkwon@et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