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건설·EPC(설계·조달·시공) 산업에서 인공지능(AI) 도입 논의가 활발하다. 그런데 정작 현장에서는 AI가 기대만큼의 성과를 내지 못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맥킨지 조사에 따르면 기업들의 AI 도입은 빠르게 늘고 있지만, 개별 업무 영역에서 AI 에이전트를 실제로 확장하고 있다고 답한 비율은 10%를 넘지 않는다. 기술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접근 방식이 잘못됐기 때문이다.
EPC 프로젝트에서는 하나의 계약에서도 수만 페이지의 문서와 방대한 설계 데이터가 서로 연결돼 오간다. 계약서, 시방서, 설계기준서 등에 정의된 조건과 요구사항은 평면도·입면도 등 2D 도면과, 구조물·설비의 형상과 속성을 담은 3D 건설정보모델링(BIM)으로 구체화된다. 설계·시공 과정의 변경사항은 다시 문서와 도면, BIM에 함께 반영된다. 즉 문서와 BIM·도면은 독립된 정보가 아니라 하나의 프로젝트 안에서 끊임없이 연결되고 변화하며, 버전·언어·용어의 차이까지 더해져 복잡성이 커진다. 실제로 해외 대형 EPC 프로젝트에서는 5조원 규모 사업에서 1조원, 7조원대 사업에서 1조3000억원의 손실이 발생한 사례가 있다. 문서 하나를 놓치거나 잘못 읽은 결과가 조 단위 손실로 이어진 것이다.
이런 환경에서 기존의 벡터 기반 검색증강생성(RAG)은 한계가 명확하다. 문서를 단순한 텍스트 뭉치로 나눠 검색할 뿐, 문서의 조건이 BIM과 도면의 어떤 설계 요소로 이어지는지, 그 정보가 변경 과정에서 어떻게 함께 변화했는지까지 이해하기 어렵다. 도면과 BIM 역시 포맷이 벤더별로 제각각이고, IFC 파일 변환 과정에서 속성과 관계 정보가 유실되는 경우가 많다. 도면은 검토 대상일 뿐 판단 기준을 담고 있지 않고, 계약 조건이나 법규는 별도 문서에 흩어져 있어 도면만 봐서는 무엇이 맞는 설계인지 확인할 수 없다. 현장 실무자가 필요로 하는 것은 요약된 답변이 아니라 근거를 추적할 수 있는 검증 가능한 결과다. '이 조항이 최신본인지' '이전 버전과 무엇이 달라졌는지'를 확인할 수 있어야 실무에 쓸 수 있다.
서치독은 이 지점에 주목했다. 검색 기술을 도메인 문서에 맞게 재설계해 조항·표·도면 객체와 참조 관계를 구조화하고 산업 용어와 개정 이력의 의미 변화까지 추적하도록 만들었다. 이 기술을 문서에서 도면·BIM으로 확장해 형상·속성·텍스트를 추출하고 객체와 메타데이터로 구조화했다. 부재 간 관계와 변경 이력까지 연결하는 단계를 거쳐 도면과 BIM을 검색 가능한 데이터로 만들었다. 이렇게 쌓은 데이터를 문서와 함께 분석하면 시방서·계약 요구사항과 도면·BIM 사이의 불일치나 설계 변경 미반영을 자동 검출한다. 법규 위반 항목을 찾아내고, 발주사 요청사항의 반영 여부까지 추적할 수 있다. 서치독은 국내 대형 건설사와의 실증을 통해 이 접근이 현장에서 실제로 작동한다는 것을 확인했다.
AI 도입에 성공하는 기업들의 공통점은 분명하다. AI를 기존 업무에 단순히 얹지 않고 업무 흐름 자체를 재설계하며, AI에 판단을 전적으로 맡기지 않고 사람이 언제 어떻게 검증할지를 명확히 정한다. 건설·EPC 산업의 AI 도입도 이 원칙에서 시작해야 한다. 답을 만드는 AI가 아니라, 근거를 운영하는 AI가 필요한 이유다.
백준선 서치독 대표 joonsun@searchdoc.a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