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톡] 껍데기만 남은 가전 강국

일본은 한때 세계 가전의 상징이었다. 파나소닉, 히타치, 도시바, 산요, 샤프는 기술과 품질의 대명사였다. 하지만 현재 일본 시장은 다르다. 냉장고는 물론 세탁기까지 중국 제품이 점령하고 있다.

단순한 시장 점유율 변화의 문제가 아니다. 아쿠아(AQUA)·레그자(REGZA) 등 브랜드는 남았지만 제조 라인과 공급망이 통째로 이동했다. 히타치와 파나소닉은 저수익 소비자 가전에서 힘을 빼고 냉난방공조(HVAC), 기업간거래(B2B), 홈오토메이션 등으로 사업의 무게 중심을 옮기고 있다.

지금 우리나라도 일본과 같은 질문 앞에 서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달 중국 본토에서 TV·생활가전 판매 중단을 결정했다. LG전자는 조만간 출시할 청소로봇을 시작으로 중국 제조 생태계를 활용하는 방안을 선택했다. 삼성전자와 LG전자도 일본과 마찬가지로 HVAC, B2B가 새 먹거리다.

자체 개발·생산만으로는 가격 경쟁력과 속도를 바탕으로 빠르게 시장을 공략하는 중국 기업에 대응할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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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대표 전자기업 샤프가 폭스콘에 매각된 지도 벌써 10년이다. 샤프를 시작으로 세계 가전 시장을 넘보던 중국 가전 기업은 이제 중저가 제품뿐만 아니라 프리미엄 제품, 스마트홈 시장까지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제조 생태계를 잃어버린 10년 동안 일본은 소비자 접점도 잃었다. 스마트홈 경쟁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글로벌 가전 제조사들이 클라우드 간 연동을 추진하는 HCA에도 일본 가전 기업은 없다.

우리나라 가전 기업은 일본과는 다른 길을 걸어야 한다. 백색가전이 저수익 완제품 사업으로 치부되던 10년 전과는 다르다. 이제 냉장고와 세탁기, 로봇청소기는 AI홈 시대 최전방을 책임지는 엣지 단말이자 센서다. 제조 경쟁력을 잃는 순간 AI홈의 주도권도 사라진다. 시장의 모든 관심이 반도체에 쏠려 있는 지금이 한국 가전 산업·제조업의 차별화된 경쟁력을 보여 줄 수 있는 중요한 분기점이다.


류근일 기자 ryuryu@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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