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 시장에서 가파른 성장세를 이어가던 글로벌 스포츠웨어 브랜드 '룰루레몬'이 만리장성에서 개최한 대형 프로모션 행사로 인해 창사 이래 최대 위기에 직면했다. 행사 도중 사용된 북이 일본 북과 유사하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중국 내 거센 민족주의 여론에 밀려 결국 고개를 숙였다.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미국 CNN 등에 따르면 룰루레몬은 지난 5월 30일 만리장성에서 중국 문화와 웰빙을 홍보하는 요가 축제를 개최했다. 당일 행사에는 현지 인플루언서와 소비자 등 2000여명이 참석했으며, 현지에서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중국 유명 배우 주이룽이 참석해 북 연주단과 함께 무대에 오르며 큰 화제를 모았다.
그러나 행사가 끝난 직후 소셜 미디어를 중심으로 주이룽과 연주단이 사용한 대형 북이 중국 전통 악기가 아닌 일본의 전통 북인 '태고(타이코)'와 유사하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분위기는 급반전됐다.
현지 타악기 전문가들과 네티즌들은 북의 형태와 가죽을 고정하는 방식 등이 일본식 연주 스타일에 가깝다며, 국가적 상징인 만리장성에서 일본풍 북을 두드린 것은 용납할 수 없다고 거세게 반발했다.
일부 네티즌들은 과거 일본 제국주의 시절의 침략 역사를 언급하며 이번 행사가 중국인들의 역사적 상처와 민족 자존심을 건드렸다고 주장했다. 해당 논란은 중국 최대 소셜 미디어 플랫폼인 웨이보에서만 5000만 회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하며 순식간에 불매 운동 조짐으로 확산됐다.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함께 무대에 올랐던 배우 주이룽의 소속사 측은 즉각 룰루레몬 측에 전면적인 경위 조사와 후속 조치를 촉구하며 선 긋기에 나섰다.
중국 시장에 대한 의존도가 높았던 만큼 룰루레몬의 대응도 이례적으로 신속했다. 룰루레몬은 논란이 불거진 직후 공식 성명을 통해 이번 행사는 중국 문화에 대한 변함없는 존경을 표하고자 기획되었으나 전문 지식의 한계로 인해 잠재적 논란을 사전에 파악하지 못했다고 고개를 숙였다. 이어 북 공연 기획과 검토 과정에서 신중하지 못했던 점을 깊이 반성하며 배우와 관객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한다고 밝혔다.
룰루레몬은 사과문 발표와 동시에 공식 웹사이트 및 소셜 미디어에서 해당 행사와 관련된 모든 홍보 콘텐츠와 보도자료를 전면 삭제했다. 협연했던 드럼 연주단 역시 자체 사과문을 내고 해당 악기의 사용 및 외부 홍보를 전면 중단했다.
유통업계에서는 이번 사태를 두고 시진핑 국가주석 집권 이후 극단적으로 고조된 중국 내 민족주의 성향이 글로벌 브랜드를 삼킨 또 하나의 대표적 사례라고 분석하고 있다. 중국 소비 시장은 거대한 규모를 자랑하지만, 역사적·지정학적 '레드라인'을 건드릴 경우 단 하루 만에 전 국민적 공분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특히 일본과 관련된 이슈는 중국 내에서 가장 민감한 휘발성 주제로 꼽힌다. 전문가들은 만리장성과 같은 상징적인 유적지에서 행사를 진행할 때는 사소한 소품 하나까지 철저한 검증을 거쳐야 한다며, 룰루레몬이 이번 사건으로 실추된 브랜드 이미지를 회복하고 돌아선 중국 소비자들의 마음을 되돌리기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으로 내다봤다.
서희원 기자 shw@et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