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 리커머스, 이제는 '산업'으로 육성할 때다

Photo Image
김주희 동덕여대 문화예술경영학과 교수

요즘 2030세대는 새 옷을 사면서 동시에 '이거 나중에 얼마에 팔 수 있을까'를 계산한다. 한정판 스니커즈를 사는 것은 소유가 아니라 투자이고, 입던 재킷을 파는 것은 처분이 아니라 다음 취향으로 가는 자금 마련이다. 중고 거래가 '절약'의 언어에서 '취향'의 언어로 바뀐 것이다.

이러한 변화의 흐름은 시장에서도 포착된다. 롯데쇼핑은 2021년 중고나라 인수 컨소시엄에 투자자로 참여했고, 신세계그룹은 2022년 번개장터에 투자했다. 현대백화점은 중고 패션 바이백 서비스를 시작했고, 무신사는 2025년 '무신사 유즈드'를 론칭했다.

유통 대기업과 패션 플랫폼이 한꺼번에 뛰어드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한국인터넷진흥원(KISA)에 따르면 국내 리커머스 시장은 2008년 4조원에서 2025년 43조원으로 추산될 정도로 급격히 성장하고 있다. 그런데 43조원짜리 시장에 아직 제대로 된 산업 이름이 없다. 정책당국이 여전히 이 시장을 '규제 대상'으로 좁게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시장이 먼저 움직인 것과 대조적이다.

글로벌에서도 리커머스 시장의 성장이라는 흐름은 같다. IDC는 2026년 전 세계 중고 스마트폰 시장가치를 999억달러로 전망한다. 스마트폰만의 수치다. 의류·명품·가전을 포함한 전체 리커머스 시장은 그 몇 배를 훌쩍 넘는다. 리커머스 시장이 주목받으면서, '중고'를 카테고리별로 전문화하는 양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미국의 스워플(Swappa)은 중고 전자기기에, 포시마크(Poshmark)는 패션에 특화했고, 악기 전문 리커머스 리버브(Reverb)는 뮤지션들의 거래 플랫폼으로 자리 잡았다.

주목할 것은 카테고리별로 리커머스의 공식이 달라진다는 점이다. 패션은 브랜드 희소성과 트렌드 사이클이 가격을 결정하는 '취향 감정(感定)' 구조고, 스마트폰은 스펙·배터리·외관 등급이 가격을 결정하는 '스펙 기반 감정' 구조다. 카테고리가 다르면 플랫폼 설계도, 필요한 제도도 달라진다. 카테고리 개척과 함께 리커머스 생태계에 새로운 경영 메커니즘을 제공하는 기업들도 증가하고 있다. 프랑스의 백마켓(Back Market)은 리퍼비시 제품이 신제품 대비 탄소 배출을 크게 줄인다는 점을 마케팅과 환경·사회·지배구조(ESG) 메시지에 적극 활용하며 유럽·미국·일본 시장을 빠르게 확장했고, 일본의 메루카리(Mercari)는 플리마켓 전반을 표준화한 복합 리커머스 생태계로 진화했다.

이 흐름은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당근은 지역 기반 거래로 생활 밀착형 플랫폼을 구축했고, 번개장터는 MZ세대 취향 소비 플랫폼으로 진화해 이용자의 60% 이상이 2030세대다. 크림(KREAM)은 한정판 스니커즈·스트리트 패션의 정품 검수 거래 플랫폼으로 자리 잡았고, SK텔레콤이 운영하는 민팃(Mintit)은 전국 3300여개 거점에 인공지능(AI) 기반 무인 매입기를 운영하며 중고 스마트폰 전문 리커머스의 표준을 만들어가고 있다. 번개장터의 글로벌 역직구 서비스 '번장 글로벌'은 60개국 이상, MAU 100만명을 돌파했으며 이베이와 연동한 이후 해외 판매 거래액은 1105% 급증했다. 플랫폼마다 전략과 이용자층이 다르지만, 공통점은 하나다. 더 이상 '중고'가 아니라 하나의 독자적인 산업 생태계로 작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제도는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국내 리커머스 플랫폼은 통신판매업자로 분류될 뿐이다. 세제 인센티브도 체계적으로 정비되지 않았다. 휴대폰의 경우, 정부가 2024년 '안심거래 사업자' 인증 제도를 도입한 것은 긍정적이나 'S급' 'A+' 같은 민간 표기는 여전히 플랫폼마다 제각각이다. 해외는 다르다. 유럽연합(EU)은 에코디자인 규정(ESPR)으로 수리 가능성을 법제화했고, 프랑스는 2020년 AGEC를 통해 리커머스와 순환경제 정책의 법적 기반을 마련해 미판매 소비재의 파기를 금지해 재사용·기부·재활용을 의무화했으며, 스마트폰·노트북 등에는 수리용이성 지수(Repairability Index) 표시를 도입했다. 일본은 중고품 거래업에 세제 혜택을 부여한다. 우리도 더 늦기 전에 KS 규격에 준하는 품질 등급 기준 의무화, 공인 플랫폼 거래에 탄소 포인트·소득공제 연동,세제 혜택 등을 본격 검토할 필요성이 있다. 리커머스는 성숙 사회의 산물이다. 소비가 '소유'에서 '경험'으로, '신품'에서 '가치'로 전환되는 흐름 위에 리커머스가 있다. 혁신 생태계의 한 축으로, 수출 산업의 새 영역으로 리커머스를 재정의해야 할 때다.

김주희 동덕여대 문화예술경영학과 교수 kimjh@dongduk.ac.kr

브랜드 뉴스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