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총파업 눈앞]“지금 당장이냐, 미래투자냐”…'선배분' 싸움으로 번진 성과급 갈등

삼성전자 노조 갈등의 핵심은 성과급 규모가 아니다. 배분 순서의 문제다.

인공지능(AI) 슈퍼 싸이클에 올라탄 반도체 업황이 이어질 2~3년간 벌어들일 막대한 재원을 어디에 먼저 투입하느냐에 대한 중대한 분수령 한 가운데에 삼성전자 노사 갈등이 위치해 있다는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시각이다.

AI 메모리 경쟁이 투자 속도전으로 전개되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영업이익 일부를 선배분하는 방식으로는 절대로 미래에 대응할 수 없다는 지적이 쏟아진다.

13일 새벽 3시까지 17시간에 걸쳐 이어졌던 노사의 사후조정이 결국 불발로 돌아간 주된 원인은 '성과보상 체계 제도화'에 대한 노사간 이견 때문이다. 삼성전자 사측은 “노조는 경영실적에 따른 회사 측의 유연한 제도화를 거부하며 경직된 제도화만을 시종 고수하고 있다”고 교섭 불발 이유를 전했다.

노조 역시 “성과급 상한 폐지와 투명화·제도화를 요구했으나 이 부분이 관철되지 않은 것”이라고 결렬 선언 이유를 밝혔다. 또한 “SK하이닉스는 영업이익 10%를 고정했고 이를 10년 제도화했다”며 사측의 제안은 제도화가 아닌 일회성 포상이라고 반박했다.

경쟁사와 마찬가지로 직원들에게 성과보상을 우선한 뒤 미래 투자를 고민하라는 노조의 입장과 미래사업에 대비하기 위한 투자를 뺀 나머지 금액으로 성과급을 배분하겠다는 사측의 갈등이 좁혀지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결국 기업이 벌어들인 이익을 어떤 순서로 배분할 것인가에 대한 논쟁이다. 기업이 벌어들인 이익은 임직원 보상은 물론 연구개발(R&D), 설비투자, 인수합병(M&A), 배당, 자사주 매입, 재무 안정성 확보 사이에서 배분된다.

김기승 부산대 교수는 “경제적 부가가치(EVA) 등 자본비용을 반영한 기준 없이 영업이익을 직접 배분할 경우 R&D·배당·성과급 재원이 동시에 부족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반도체처럼 대규모 선투자가 필요한 산업에서는 회계상 영업이익과 실제 가용 현금 사이에 차이가 크다는 설명이다. 영업이익의 일정 비율을 성과급으로 고정해버리면 호황기에는 거액의 현금이 빠져나가고 불황기에는 기준 변경을 둘러싼 노사 갈등이 반복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러한 반도체 호황이 계속되지 않는다는 점도 갈등을 키우는 요인으로 꼽힌다. 이미 시장에서는 고대역폭메모리(HBM) 중심의 슈퍼 싸이클이 2~3년이면 종료될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중국 등 경쟁국가가 10년 안팎이면 시장을 장악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메모리 중심의 국내 반도체 생태계가 새로운 변화에 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이어진다.

이병헌 광운대 교수는 “지금의 슈퍼 싸이클이 2~3년 이후면 종료될 것으로 관측되는 만큼 삼성전자 입장에서도 지금이야 말로 메모리 중심에서 시스템 반도체 등 고부가가치 영역으로 체질을 개선해야 할 중대한 시기”라며 “스타트업 발굴과 M&A 등 미래의 산업 변화에 대비하기 위한 투자가 시급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AI 메모리 호황기에 발생한 이익을 단기 보상으로 소진하면 다음 기술 사이클에서 경쟁력을 잃을 수 있다는 취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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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후조정 결렬 후 협상장 떠나는 삼성전자 김형로 부사장 (세종=연합뉴스) 김주성 기자 = 삼성전자 대표교섭위원인 김형로 부사장이 13일 새벽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중앙노동위원회에서 열린 2026년 임금협약 체결을 위한 2차 사후조정이 결렬된 후 협상장을 떠나고 있다. 2026.5.13 utzza@yna.co.kr(끝)

전문가들은 지금 당장의 성과 배분에 급급하기보다는 장기적 성장 동력 확보라는 차원에서 산업계의 성과 보상 체제 전반을 다시 들여다봐야 한다고 말한다. 실적 보상은 필요하지만 미래 투자 재원을 먼저 잠식하는 구조로 굳어져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다.

이종호 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지금 좋은 시기에 R&D에 집중 투자하거나 우량 기업을 M&A해서 지속가능한 수월성을 만들어야 한다”며 “단기간의 이익보다는 장기적으로 더 큰 이익을 얻을 수 있는 대안을 노사가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류근일 기자 ryuryu@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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