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란 전쟁 발발 이후 일본 유조선이 처음으로 호르무즈 해협을 빠져나오면서 중동 원유 수송 정상화 가능성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이번 항해가 외교 협상의 성과라고 강조하며 이란 측에 통행료를 지불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주일 이란대사관도 양국의 오랜 우호 관계가 이번 통과에 영향을 미쳤음을 시사했다.
로이터통신과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 등에 따르면 28일(현지시간) 오전 7시께 일본 정유사 이데미쓰 코산 소유의 파나마 선적 초대형원유운반선(VLCC) '이데미쓰 마루호'가 사우디아라비아산 원유 200만 배럴을 싣고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했다.
런던증권거래소그룹(LSEG)과 선박 정보 사이트 마린트래픽 데이터에 따르면 해당 선박은 현재 오만 무스카트 북쪽 공해상을 지나 인도양 방향으로 항해 중이며, 자동식별장치(AIS)상 목적지는 일본 나고야항으로 표시돼 있다. 흘수는 20m로 대형 유조선 가운데서도 규모가 큰 편이다.
이란 국영방송 역시 같은 날 이데미쓰 마루호가 이란 당국과의 조정을 거쳐 해협을 통과했다고 보도했다.
일본 정부 고위 관계자는 이날 밤 “일본 정부가 협상한 성과”라며 “통행료는 지불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미국이 최근 이란 정부나 이슬람혁명수비대(IRGC)에 통행료를 지불할 경우 미국인은 물론 비미국인도 제재 대상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한 상황에서 나온 발언이다.
앞서 이란은 전쟁 발발 이후 호르무즈 해협을 지나는 선박에 대해 사실상 통행료를 징수하기 위한 금융 시스템을 구축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세계 각국 선사들은 항로 확보에 큰 부담을 안고 있었다.
이데미쓰 코산 측은 유조선 운항 상황에 대해 “안전상의 이유로 답변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데미쓰 마루호는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을 공격하기 3일 전인 지난 2월 25일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해 페르시아만에 진입했다. 이후 약 62일 동안 해협 밖으로 나오지 못하다가 이번에 처음으로 빠져나왔다.
이달 초에는 일본 미쓰이 OSK 라인스가 공동 소유한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소하르'와 미쓰이가 보유한 액화석유가스(LPG) 운반선 '그린 산비'가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한 바 있지만, 원유를 실은 초대형 유조선이 통과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해운·에너지 분석업체 케이플러의 분석가 토리가타 유이는 “일본 정유소가 전적으로 소유한 초대형 원유 운반선이 처음으로 해당 해협을 통과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며 “일본 선주들은 그동안 지역 안보 리스크에 대해 매우 신중한 태도를 유지해 왔다”고 평가했다.
주일 이란대사관도 29일 새벽 엑스(X·옛 트위터)에 글을 올려 1953년 '닛쇼마루호 사건'을 언급하며 양국의 역사적 관계를 강조했다.
닛쇼마루호는 당시 이란이 석유 시설 국유화 조치로 국제사회에서 고립됐을 때 일본이 비밀리에 이란산 원유를 수입하기 위해 투입한 유조선이다. 이 사건은 이란이 국제 봉쇄를 뚫을 수 있다는 상징적 사례로 평가된다.
특히 닛쇼마루호 역시 이데미쓰 코산 소유 선박이었다는 점에서 이번 이데미쓰 마루호의 항해와 역사적으로 연결된다는 해석이 나온다.
주일 이란대사관은 “닛쇼마루호 사건은 양국 간 긴 우정을 증명하는 사례이며, 그 유산은 오늘날까지도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일본 언론들은 현재 호르무즈 해협에 발이 묶여 있는 약 40척의 다른 일본 관련 선박들이 추가로 안전하게 빠져나올 수 있을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고 전망했다.
이상목 기자 mrlsm@et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