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대전환 너머 '바이오 시대'의 본격화
모방 넘은 초격차 원천기술 확보에 사활 걸어야
생명연, 전략연구단 중심 국가 혁신 생태계 주도

대한민국은 지금 또 한 번 거대한 전환의 문턱에 서 있다. 디지털 기술이 산업과 일상을 재편해 온 시대를 넘어, 이제는 생명의 기본 단위인 유전자와 세포를 직접 설계하고 제어하는 '바이오 대전환'이 본격화하고 있다. 과거 산업화와 디지털 전환이 국가 경쟁력의 축을 형성해 왔다면, 앞으로의 경쟁력은 바이오 기술이 좌우할 것으로 예상된다. 기술 패러다임의 중심축이 '정보'에서 '생명'으로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우리 바이오 산업은 제네릭과 바이오시밀러를 중심으로 빠르게 성장하며 글로벌 제조 역량을 입증해 왔다. 그러나 추격형 전략만으로는 더 이상 한계를 돌파하기 어렵다. 이제는 누구도 쉽게 모방할 수 없는 '초격차 원천기술'을 확보해야 한다. 고령화 가속화, 감염병의 반복적 위협, 만성질환 증가 등 복합적 도전 속에서 첨단바이오는 국민 생명과 직결된 핵심 산업이자 국가 안보의 중요한 축으로 자리 잡고 있다. 바이오 기술은 더 이상 선택 가능한 산업이 아니라 반드시 확보해야 할 전략 자산이다.
◇첨단바이오, 기술 패권과 국가 안보의 중심
이미 주요국들은 첨단바이오를 반도체에 버금가는 전략 산업으로 규정하고 국가적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미국은 '국가 바이오테크놀로지 및 바이오 제조 이니셔티브'를 통해 공급망과 기술 주도권 확보에 나섰다. 유럽과 일본 역시 유전자·세포치료 분야에 대규모 투자를 확대하며 미래 시장 선점에 속도를 내고 있다. 중국 또한 막대한 자본과 인력을 바탕으로 기술 격차를 빠르게 좁히고 있다. 이제 경쟁의 본질은 단순한 신약 개발 건수가 아니라 생명 정보를 얼마나 정밀하게 제어하고 실제 치료로 연결할 수 있는지, 즉 '기술 플랫폼'을 누가 선점하는지에 달려 있다. 연구 속도뿐 아니라 성과를 환자 치료로 연결하는 전환 능력 자체가 경쟁력이 되는 시대다.
◇유전자·세포치료 전략연구단이라는 국가적 해법
이러한 흐름 속에서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유전자·세포치료 전략연구단'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는 대학·연구소·병원·기업에 흩어진 역량을 하나로 결집하는 국가 단위의 End-to-End 플랫폼으로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이 중심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전략연구단은 단순한 연구사업이 아니라 기초연구부터 임상, 제조, 사업화까지 전 주기를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국가 혁신 체계를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동안 분절적으로 운영되던 연구개발(R&D) 구조를 하나의 흐름으로 통합한다는 점에서 그 의미는 더욱 크다.
앞으로의 방향은 분명하다. 첫째, 원천기술 주권을 확보해야 한다. 유전자와 세포를 정밀하게 제어하고 전달하는 기술은 차세대 치료제 경쟁력의 핵심이며, 이를 확보하지 못하면 글로벌 시장에서 종속적 위치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전달체 기술, 유전자 편집 기술, 다양한 치료 모달리티는 단순한 연구 주제를 넘어 국가 전략 자산이다. 특히 이러한 핵심 기술은 한 번 격차가 벌어지면 따라잡기 어려운 특성을 갖고 있어 선제적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둘째, 연구 성과를 임상과 산업으로 빠르게 연결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연구실의 성과가 논문에 머무르지 않고 실제 환자 치료와 산업화로 이어지는 'Lab-to-Bedside' 전환 속도가 곧 국가 경쟁력을 좌우한다. 이를 위해서는 기술이전, 창업, 임상 연계, 생산까지 이어지는 전주기 혁신 생태계 구축이 필수다. 특히 공공연구기관은 이러한 연결 구조를 설계하고 촉진하는 핵심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셋째, 제조와 규제 경쟁력을 동시에 확보해야 한다. 유전자·세포치료제는 생산 공정 자체가 기술이며, 글로벌 시장 진출을 위해서는 제조 표준과 규제 대응 역량이 핵심 경쟁 요소로 작용한다. 국제 기준에 부합하는 생산 시스템과 품질 관리 체계, 규제 대응 역량을 선제적으로 확보해야 한다. 이는 단순한 제도 정비를 넘어 산업 경쟁력을 결정짓는 핵심 인프라다.
특히 주목해야 할 변화는 인공지능(AI)과의 결합이다. AI는 신약 설계, 생산 공정 최적화, 임상 데이터 분석 등 바이오 혁신 전 과정의 효율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리고 있다. 과거에는 수년이 걸리던 후보물질 탐색 과정이 AI를 통해 획기적으로 단축되고 있으며,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이 R&D의 새로운 표준으로 자리 잡고 있다. 디지털과 바이오의 융합, 즉 '디지털 바이오'로의 전환은 단순한 기술 결합을 넘어 산업 구조 자체를 재편하는 변화다.

◇AI와 바이오의 결합, 그리고 바이오 주권
이제 바이오는 단순한 산업 영역을 넘어 국가 주권의 문제로 확장되고 있다. 유전자·세포치료 원천기술을 확보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국민의 건강을 지키는 핵심 기술을 외부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이는 곧 국가 안보의 취약성으로 이어질 수 있다. 반대로 기술 주권을 확보한다면 바이오는 미래 성장과 국민 삶의 질을 동시에 견인하는 전략 자산이 될 것이다. 바이오 주권은 경제적 선택이 아니라 국가 생존과 직결된 필수 조건이다.
◇미래 의료 주권을 결정할 골든타임
첨단바이오는 단기간에 성과를 내기 어려운 분야지만, 한 번 경쟁력을 확보하면 장기간 국가 경제를 이끄는 핵심 산업으로 자리 잡는다. 지금이 바로 그 전환을 결정짓는 '골든타임'이다. 이 시기를 놓친다면 우리는 다시 추격자의 위치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유전자·세포치료 전략연구단은 대한민국이 바이오 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한 국가적 선언이자 실행 플랫폼이다. 산·학·연·병의 유기적 협력과 전략적 투자가 결합될 때 우리는 글로벌 바이오 경쟁에서 주도권을 확보할 수 있다. 특히 공공연구기관을 중심으로 한 개방형 협력 생태계는 이러한 전환을 가속화하는 핵심 동력이 될 것이다.
앞으로의 10년은 대한민국 바이오 경쟁력의 향방을 가르는 결정적 시기가 될 것이다. 지금 이 순간의 선택과 실행이 미래 산업의 위치를 결정짓는다. 유전자·세포치료를 중심으로 한 바이오 주권 확보는 더 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 과제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은 국가 바이오 혁신의 중심에서 그 길을 책임 있게 열어갈 것이다.
권석윤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원장 sykwon@kribb.re.kr
〈필자〉서울대에서 생물학을 전공해 학사·석사·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1년 한국생명공학연구원에 입사해 30년 이상 연구와 조직 운영을 함께 수행한 연구자 출신 기관장이다. 유전체 해독·분석 연구로 학문적 성과를 축적했으며, 생명공학 분야 기술 실용화에도 기여했다. 식물유전체연구센터장, 식물시스템공학연구센터장, 기술사업화센터장, 융합생물소재연구부장, 부원장 등을 역임했다. 국가 바이오 정책 기획·자문에도 참여하며 첨단바이오 분야 정책 수립과 연구 생태계 조성에 기여해 왔으며, 과학기술진흥 유공 장관상을 수상했다. 현재는 생명연 원장으로서 연구 현장 중심 혁신과 개방형 협력, AI 기반 디지털 바이오 전환을 이끌며 국가 바이오 연구 생태계 고도화와 글로벌 경쟁력 확보에 힘쓰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