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시론] 유망 실험실의 결실이 국가 성장으로:연구개발특구가 여는 '기술 강국'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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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권 연구개발특구진흥재단 이사장

최근 유망 실험실에서 탄생한 딥테크(Deep-tech) 창업 기업들이 국가 경제 성장의 새로운 지도를 그려나가고 있다. 이들은 단순한 신생기업이 아니라, 장기간 축적된 과학적으로 탁월한 기초·원천 연구성과가 산업과 자본, 글로벌 시장으로 연결된 대표적 사례라는 점에서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대한민국 '국가과학자 1호'로 선정된 신희섭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박사가 수십년간 축적해 온 연구를 기반으로 설립된 연구소기업 큐어버스는 창업 3년 만에 알츠하이머 신약 후보 물질을 글로벌 제약사에 5000억원 규모로 기술 수출하는 성과를 거뒀다. 이는 오랜 기초연구가 산업적 가치로 전환된 상징적 사례다.

대한민국 최초 이족보행 로봇 '휴보(HUBO)'를 개발하고, 세계 최고 로봇 경진대회인 미국 DARPA 로봇 챌린지에 우승을 거머쥐었던 오준호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수는 압도적인 기술력과 그간의 연구를 바탕으로 레인보우로보틱스를 창업했다. 현재 시가총액 15조6000억원(3일 기준)대 기업으로 성장시키며 국내 로봇 산업 지형을 바꾸고 있다. 오 교수 사례는 대학 실험실의 원천기술이 어떻게 제조업의 혁신과 국가 산업 경쟁력 강화로 이어지는지를 명확히 보여준다.

바이오 딥테크 분야의 새로운 성공 신화를 쓰고 있는 프로티나와 소바젠 역시 그 뿌리는 국가적 지원을 바탕으로 한 유망 실험실에 깊이 닿아 있다. 프로티나의 윤태영 서울대 교수(전 KAIST 교수)와 소바젠의 이정호 KAIST 교수는 모두 기초연구단계부터 시작해 중규모 과제를 거쳐 최종적으로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리더 연구 과제'라는 대형 국가 연구개발(R&D) 사업을 토대로 결실을 보았다는 공통점이 있다.

리더 연구는 국내 0.3% 이내에 속하는 세계적 수준의 연구자를 집중 지원하는 사업으로 윤 교수는 2021년 분자생명 분야에서, 이 교수는 2019년 의약학 분야에서 각각 과제에 선정돼 독자적인 신기술의 토대를 닦았다. 이들이 실험실에서 흘린 땀방울은 프로티나의 시가총액 8500억원대 안착, 소바젠의 7500억원 규모 기술 수출이라는 성과로 돌아왔다.

◇왜 딥테크 창업인가…기술이전에서 기술창업으로

이러한 성공 사례들은 모두 국가적으로 기술의 혁신성을 인정받아 R&D 투자를 받은 공공 연구성과에 기반한 '딥테크 창업'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글로벌 기술패권 경쟁과 공급망 재편이 가속화되는 오늘날, 독자적 원천기술을 확보하지 못한 국가는 산업 주도권을 지키기 어렵다. 기술은 더 이상 선택적 경쟁력이 아니라 안보이자 국력의 핵심 요소다. 이러한 시대적 전환 속에서 딥테크 창업의 전략적 가치는 더욱 커지고 있다.

장기간 공공 투자로 축적된 원천기술인 딥테크는 기술적 진입장벽이 매우 높고 모방이 어려워 사업화에 성공할 경우 새로운 시장을 만들고 산업 구조를 바꿀 만큼 강력한 파급력을 갖는다. 특히 국가가 검증하고 투자한 딥테크 창업은 고부가 가치 일자리 창출, 신산업 형성, 글로벌 기술 경쟁력 확보라는 복합적 효과를 동시에 창출한다.

그동안 공공기술 사업화는 기술이전을 중심으로 추진돼 왔다. 그러나 딥테크 산업의 파급력이 날로 커지고 있는 현 시점에서 기술이전만으로는 연구 성과 잠재 가치를 충분히 실현하기 어렵다. 기존 기업으로의 기술이전은 안정적인 성과 창출에는 유리하지만, 혁신 기술 방향성과 확장성을 온전히 구현하는 데에는 구조적 한계가 존재한다.

반면 기술창업은 연구자가 축적한 기술 이해도와 비전을 바탕으로 기술의 진화를 지속적으로 주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전략적 가치가 크다.

특히 공공연구기관이 기술을 출자해 설립하는 연구소기업은 공공성과 시장성을 동시에 담보하는 대표적인 기술사업화 모델이다. 공공연구기관과 창업기업 간의 지속적이고 긴밀한 협력 구조를 기반으로 후속 연구, 실증, 스케일업이 병행되며 기술 완성도를 지속적으로 높일 수 있다.

기술이전이 '권리의 이동'이라면, 기술창업은 '산업의 탄생'에 가깝다. 기술성이 우수하고 국가적으로 검증된 연구 성과일수록 기술창업을 통한 사업화 효과가 극대화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기초·원천 연구성과 발굴과 인내 자본의 결합

딥테크 창업의 성공 가능성을 높이고 이러한 성공 사례를 지속적으로 배출하기 위해서는 두 축이 필수적이다. 우수한 기초·원천 연구 성과들을 선제적으로 발굴·육성하고, 이를 지탱할 '인내자본(Patient Capital)'의 전략적 공급이다.

첫째, 국가전략기술과 연계된 원천기술을 정밀하게 타깃팅해 관리·육성해야 한다. 주요 출연연이 보유한 세계 최고 수준 기초·원천 연구성과가 실험실에만 머물다 사장되는 것은 국가적으로 막대한 손실이다. 이에 우수한 원천기술이 사업화 단계로 넘어올 수 있도록 기술성숙도(TRL)를 기반으로 시장 적합성을 조기에 진단하고, 후속 공동연구 및 실용화 연구를 장기적·안정적으로 지원하는 생태계를 강화해 실험실과 시장 사이의 간극을 체계적으로 줄여야 한다.

둘째, 딥테크 특성을 고려한 '인내 자본'이 필요하다. 딥테크 기업은 기술 검증, 실증, 인허가, 글로벌 시장 진입에 이르기까지 긴 개발 주기를 거치며, 이 과정에서 이른바 '데스밸리(Death Valley)'를 통과해야 한다. 단기 수익 회수를 전제로 하는 자본 구조로는 이러한 장기적 기술 사업화 과정을 충분히 견뎌내기 어렵다.

인내 자본은 단기 회수가 아닌 기술의 장기적 성장 가능성에 투자하는 자본으로, 국가가 장기간 축적한 연구성과가 산업적 결실로 이어질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한다. 특히 대규모 국가 R&D 투자가 이루어진 원천기술일수록 상용화까지의 기간이 길고 기술 난이도가 높기 때문에, 장기적인 인내자본의 전략적 공급이 정책적 인프라로 작동해야 한다.

◇딥테크 창업의 최적지 '연구개발특구'

이러한 측면에서 연구개발특구는 대한민국 딥테크 창업의 최적 플랫폼이자 혁신 생태계의 거점이다. 특구는 대학, 출연연, 투자기관, 기업이 유기적으로 밀집되어 있으며, 수십 년간 축적해 온 제도와 인프라, 연구자들의 기업가 정신이 결합한 곳이다.

특히 대덕특구는 바이오, 반도체, 로봇 등 전략 분야의 기술사업화 중심지로 자리매김했으며, 실제 지난해 말 기준 코스닥 시가총액 상위 10개 기업 중 4개 기업이 대덕특구를 기반으로 성장했다. 여기에 연구소 보유 기업과 출연연 기술을 이전받아 성장한 기업까지 포함하면 총 7개사가 특구를 기반으로 시장에서 그 파괴력을 증명하고 있다.

연구개발특구진흥재단은 이 거대한 엔진이 멈추지 않고 돌아가도록 딥테크 기술사업화의 전 주기를 지원하는 최적화된 전담 기관이다. 특구재단은 연구 성과가 단순한 기술이전에 그치지 않고 기술창업으로 확장되며, 실증·스케일업과 투자 연계, 글로벌 진출 등 딥테크 기업의 데스밸리 극복 가능성을 실질적으로 높이고 있다.

최근에는 딥테크 기업에게 필수적인 인내 자본 마련을 위해 최대 12년의 운용 기간을 가진 200억원 규모의 딥테크 전용 펀드를 신규로 조성하고 있다. 또 기초과학연구원(IBS) 등이 보유한 세계 최고 수준의 기초·원천 연구 성과가 사장되지 않도록 후속 공동연구와 본격적인 실용화를 지원하는 사업도 중점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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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개발특구 업무 흐름도

이제 기술은 단순한 경제적 수단을 넘어 안보이자 국력 그 자체가 됐다. 유망 실험실에서 시작된 작은 아이디어가 기업이 되고 산업이 되며, 마침내 국가 경제를 지탱하는 거대한 기둥으로 성장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일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니다.

혁신은 결코 우연의 산물이 아니다. 그것은 수십년 간 묵묵히 쌓아 올린 연구자의 땀방울과 이를 사업화로 연결하는 정교한 생태계, 그리고 그 시간을 견뎌내는 인내 자본이 결합할 때 비로소 일어나는 폭발적인 반응이다. 특구는 그 반응을 안정적으로 가동하는 엔진이며, 특구재단은 그 엔진이 지치지 않고 더 먼 미래를 향해 나아갈 수 있도록 길을 닦는 주체다.

실험실에서 시작된 기술 혁신의 불꽃이 대한민국 경제 전체를 밝히는 등불이 될 때, 우리는 비로소 진정한 기술 주도권을 확보한 선도 국가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정희권 연구개발특구진흥재단 이사장 hkjung90@innopolis.or.kr

정희권 연구개발특구진흥재단 이사장은 서울대에서 국제경제학을 전공하고 미국 미주리 콜롬비아대에서 행정학 석사를 취득했다. 제38회 행정고시로 공직에 입문한 후 과학기술 분야 정부 부처에서 28년간 근무하며 국제협력관, 과학기술정책국장, 과학기술혁신조정관 등을 역임했으며, 기술사업화와 산학협력, 국제협력, 국가전략기술 육성 정책 등을 이끌었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2024년 7월 3일 연구개발특구진흥재단 제7대 이사장으로 취임했으며, 연구개발특구를 딥테크의 전진기지이자 한국형 실리콘밸리로 발전시키기 위해 딥테크 중심 기술사업화, 글로벌 협력 강화, 협업 기반의 혁신생태계 조성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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