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수의예과 지원자들의 생기부를 볼 때마다 같은 장면을 떠올린다. 진료실에서 수의사는 환자에게 묻지 못한다. “어디가 아프니?”라는 질문 대신, 눈빛과 체온, 혈액 수치와 미세한 행동 변화를 읽어야 한다. 말 없는 환자의 고통을 과학의 언어로 번역하는 사람. 그것이 수의사다. 따라서 대학이 생기부에서 찾는 것은 '동물을 좋아합니다'라는 고백이 아니다. 이 학생은 정확히 문제의 원인을 추론할 수 있는가이다.
수의예 지망생의 생기부에는 흔히 이런 활동이 반복된다. 유기견 봉사, 반려동물 보호 캠페인, 동물 관련 독서. 물론 의미가 있다. 그러나 수의예 합격 학생의 생기부에는 이렇게 적힌다.
이 학생은 처음에는 정신과 의사를 꿈꿨다. 그러다 인간의 고독 심리 문제를 파고들면서, “반려동물이 인간의 고독 정서에 기여할 수 있다”는 사고의 확장을 경험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동물 사랑'이 아니다. 인간-동물-사회라는 연결 구조를 사유한 흔적이다.
한편으로, 또 다른 건국대 수의예 합격자의 경우를 보자.
이 학생은 공장식 축산의 실태를 조사하고, 동물복지 농장을 직접 방문했다. 견학 후 감정적 분노에 머물지 않았다. 국토 구조, 인구밀도, 육류 소비 문제까지 연결하여 현실적 한계를 분석했다.
둘 다 개인적 경험에서 출발하되, 사회로 확장되는가. 그렇지 않으면 멈추는가. 이런 모습을 공통으로 합격자의 생기부에서 확인한다. 수의예과는 '동물 애호가'를 선발하지 않는다. 생명을 과학적으로 또는 사회적으로 다룰 준비가 된 탐구자를 선발한다.
① 1학년: 사소한 질문의 시작
서울대 수의예 지원 학생은 수학을 '신발 속의 모래'라고 표현했다. 어려웠지만 도망치지 않았다. 개념을 집요하게 붙들었다. 수의예 준비의 첫 단계도 다르지 않다. 생명과학을 '외우는 과목'으로 두는 학생이 있고, '질문하는 과목'으로 만드는 학생이 있다. “왜 고양이는 특정 약물에 치명적인가. 왜 조류 인플루엔자는 인간에게 위협이 되는가. 종 간 면역 반응의 차이는 어디서 오는가.” 이처럼 1학년은 지식을 쌓는 시기이지만, 동시에 질문을 생성하는 시기다.
② 2학년: 이종 학문의 결합(이종 교배)
건국대 수의예 합격 학생은 화학 실험에서 예상과 다른 결과를 만났다.
HCl 농도 실험에서 오차가 발생하자, 즉각 설계를 수정하고 농도 범위를 재설정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정답을 맞혔다'가 아니다. 오차를 인정하고, 변수 통제를 다시 설계했다는 점이다. 수의학은 아니 대다수의 학문의 다학제적 공부이다. 생명과학과 화학이 만나면 약물 대사가 된다. 생명과학과 통계가 만나면 역학 조사가 된다. 생명과학과 윤리가 만나면 동물복지 정책이 된다. 2학년 생기부에서 빛나는 것은 단일 교과 우수도 있겠지만, 그것이 시험의 능력이라면, 교과 사이의 결합은 자기주도적인 탐구의 노력이다.

③ 3학년: 명사형 희망이 아닌 형용사형 정체성으로
“수의사가 되고 싶습니다”는 명사형 희망이다. 서울대 지원 학생은 진로 고민 끝에 인간과 반려동물의 정서적 상호작용을 사유했다고 했다. 건국대 지원 학생은 종 복원 기술과 게놈 분석까지 확장했다고 했다. 이것이 형용사형 정체성이다. “공중보건 관점의 수의사. 멸종위기종 복원 전문가. 인수공통감염병 역학 분석가” 즉 어떤 구체적인(형용사) 수의사인가를 말할 수 있어야 한다.
3년간의 생기부는 바로 그 구체화의 기록이어야 한다.
나는 수의예 지망생이라면 이런 세특 문장을 갖추라고 말한다.
'생명과학 실험에서 발생한 오차의 원인을 변수 통제 관점에서 끝까지 반복하여 재설계함'
“종 간 대사 차이에 대한 탐구를 통해 약물 반응 차이를 분석하고 세세한 탐구보고서를 완성함.”
“동물복지 정책의 현실적 한계를 통계 자료로 직접 찾아 검토하고 사회문제를 탐구로 나아감.”
행동 특성 역시 마찬가지다.
“따뜻한 공감 능력을 지녔으나 판단의 순간에는 데이터를 근거로 결론을 도출하는 학생.” 이 한 문장이 수의예과가 원하는 인재상을 압축한다.
수의예로 가는 길은 동물을 좋아하는 마음에서 시작할 수 있다. 그러나 합격을 결정하는 것은 명사형 희망이 아니라, 형용사형 정체성을 수립하고 그것을 3년간 실천으로 증명한 생기부이다.
그러니 오늘의 작은 질문 하나를 가볍게 넘기지 말고, 끝까지 파고들어 보자. 그 집요한 탐구의 습관이 결국 당신을 말 못 하는 생명의 대변인으로 성장하게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