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초 진행된 한중 정상회담이 훈훈한 분위기 속에 종료됐다. 국빈 자격으로 중국을 방문한 이재명 대통령은 중국 권력 서열의 최정점에 있는 시진핑 주석, 리창 국무원 총리, 자오러지 전인대 상무위원장과 차세대 유력 정치인 중 한 명인 천지닝 상하이 당서기를 만났다. 공식적인 행사 외에도 지난 APEC 회담 때 시진핑 주석이 선물한 샤오미 폰으로 양국 정상 부부가 함께 셀피를 찍는 모습이 틱톡, 웨이보, 웨이신 등 중국 온라인 플랫폼에 널리 유포됐다. 국가 지도자의 권위와 위신을 중시해 사진과 영상 배포를 엄격히 통제하는 중국 정부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비공식적인 셀피가 확산하는 것을 묵인한 사실은 이번 회담을 계기로 중국이 한국과의 관계 개선에 지닌 기대의 정도를 반영하는 지표로 볼 수 있다.
지난해 11월 경주에서의 회동 이후 두 달 만에 두 나라 정상이 다시 만난 배경에는 태평양 지역에 짙게 드리워진 불확실성의 그림자를 옅게 해야 한다는 일치된 공감대 때문이었다. 갈수록 치열해지는 미국과의 경쟁과 일본 다카이시 사나에 총리의 대만 유사 발언에 자극받은 중국 측은 한국을 미국의 인태전략에서 이완시키거나 최소한 중간지대에 묶어 두어야 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한국도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미국의 경제통상 압박이 과도해지고 중일 간의 긴장이 높아지는 국면에서 중국과의 관계를 재점검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정상회담 결과 경제, 산업, 기후, 교통 분야에서 15건의 양해각서 체결, 한한령의 점진적 해제 가능성 시사, 정상 간의 정기적 만남의 필요성 인정, 인문학술 교류의 증진 등 오랜 기간 정체된 한중 관계에 전환점이 될 계기를 마련했다. 관건은 이런 희망을 구체적인 성과로 연결할 모멘텀을 계속해서 빌드업하는 것이다. 현재 한중관계를 정상으로 복원하는데 가장 큰 장애물은 양국 국민 사이에 존재하는 정서적 이질감이다. 특히 한국에서는 중국 정치체제, 전랑외교, 한한령에 대한 반감으로 중국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어느 국가보다 높은 비중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는 시진핑 정부 출범 이후 중국이 전략적 역량을 집중해온 공공외교가 한국 사회에서 호응을 얻는 데 실패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하지만 한중 양국이 이사할 수 없는 이웃으로 서로의 차이를 극복하고 평화와 발전을 위해 함께 협력해야 할 파트너임을 부정할 수 없다. 그렇다면 양국 국민이 서로에 대한 감정적 반목을 극복하고 정서적 유대를 강화할 방안은 무엇일까. 필자는 차기 한중 정상회담을 베이징이 아닌 동베이 지역에서 개최하는 것을 통해 이 문제를 상당 부분 해소하리라 확신한다.
중국의 동베이 지역은 한반도의 머리 부분을 감싸고 있는 랴오닝, 지린, 헤이룽장의 세 성을 일컫는다. 이 지역은 중국의 다른 어떤 영역보다 역사적, 안보적, 경제적, 민족적 맥락에서 남북을 포괄한 한반도 전체의 과거, 현재, 미래의 서사를 씨줄과 날줄로 겹겹이 이어주는 핵심 거점이다. 이곳에서 한중 정상이 만나 역사적 유대를 확인하고 동북아 지역 공동체의 평화와 번영을 구현할 수 있는 공동 구상을 제시한다면 국제 사회의 큰 호응과 지지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동베이 지역에서 한중 정상회담이 개최돼야 할 이유를 당면한 국제정치적 맥락에서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첫째, 동베이 지역에는 한중 두 나라 근대사에서 일본의 침략으로 초래된 고통과 저항의 기억이 선명히 아로새겨져 있다. 과거 만주로 불린 동베이 지역은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위치했던 상하이, 항저우, 충칭 등에 비해 독립운동 유산이 더 광범위하게 자리하고 있다. 신흥무관학교가 설립된 옌벤 조선족 자치주, 안중군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척살하고 순국한 하얼빈 기차역과 뤼순 감옥, 김좌진 장군 기념관이 위치한 하이린시 등을 대표적인 유적지로 언급할 수 있다.
중국 정부는 그동안 한국 독립운동 유적지를 복원하는 작업에 협력해왔다. 하지만 한국인의 가장 큰 숙원이라 할 수 있는 안중근 의사 유해 발굴과 송환 작업은 여전히 진척이 없는 상황이다. 안중근 의사는 순국 직전 자신의 유해를 하얼빈 자오린 공원(당시 하얼빈 공원)에 묻은 후 조국이 해방되는 날 본국으로 송환할 것을 당부했다. 하지만 선진국으로 진입한 대한민국이 아직 안중근 의사의 유해조차 발굴하지 못한 것은 후손으로서 고개조차 들 수 없는 부끄러운 일이다.
안중근 의사의 고향이 황해도 해주임을 고려할 때 한국, 북한, 중국, 그리고 안중근 의사 유해와 관련된 핵심 정보를 쥐고 있을 일본을 설득해 네 나라가 공동 발굴 작업에 나선다면 일제 침략의 피해국과 가해국이 협력할 수 있는 초석으로 작용할 것이다. 특히 안중근 의사가 수감 생활 중 집필하다 미완으로 남긴 동양평화론을 주제로 네 나라가 참여하는 국제학술회의를 하얼빈 혹은 뤼순에서 개최한다면 이재명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이 합의한 인문학술 교류를 꽃피우는 최선의 결과물이 될 것이다. 이처럼 동베이 지역은 한국과 중국이 역사적 유대를 강화해 동아시아 평화의 근간을 마련하고 이를 통해 한국에서 중국의 이미지를 개선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다.
둘째, 동베이 지역은 동북아시아 관련국들이 화해와 협력, 평화와 번영을 추진할 수 있는 지리적 공간으로서의 의미가 있다. 이 지역은 오랜 과거부터 인접국 간의 협력과 갈등이 동시에 존재했고 현재도 동북아에서 가장 낙후한 지역으로 머물러 있다. 이를 의식해 시진핑 주석도 출범 초기부터 '동베이진흥' 계획을 발표하고 지린성의 핵심 도시인 창춘-지린-투먼을 연결하는 창지투 개발을 추진해 동베이 지역 곳곳을 연결하는 인프라를 확충한 지 오래다. 한때 광의의 만주에 속했던 러시아의 연해주도 지금은 군사 용도만의 가치를 입증받을 뿐 경제적으로는 쇠퇴일로를 걷고 있다. 하지만 동베이 지역은 광활한 면적과 풍부한 자원, 러시아의 연해주와 북한을 배후에 두고 있어 성장 잠재력이 매우 높은 지역이다. 이에 주목해 1990년대 초부터 유엔개발계획(UNDP) 주도로 광역두만강개발계획(GTI)이라는 다자협력이 추진된 전력이 있다. 현재는 원안에서 북한이 탈퇴했고 정치적, 경제적 원인으로 프로젝트가 사실상 중단된 상황이다. 그렇지만 한중 정상과 UNDP가 공동으로 국제개발지구 계획을 선포하고 북한, 일본, 러시아와의 공동 개발을 설득한다면 동북아지역의 평화와 번영에 큰 진전을 이룰 것이다.
셋째, 동베이 지역에서의 한중 정상회담은 개혁개방 이후 근 50여년간 고도로 발전해온 중국 경제발전의 서사를 완수하는 촉매제로 기능할 수 있다. 경제성장의 혜택에서 소외되면서 이 지역의 많은 도시는 노후화와 쇠퇴 현상을 겪고 있다. 예를 들어, 지린성과 헤이룽장성의 연간 GDP는 중국에서 최하위권에 속하며 노동 가능 인구의 대도시나 동남부 연해 지역으로의 지속적인 유출로 성장 동력을 상실하고 있다.
하지만 동베이 지역이 원래 주변화를 상징하는 지역은 아니었다. 마오쩌둥 집권 기간 동베이 지역은 중국 국유기업과 기간 산업의 중심지였으며 헤이룽장성의 다칭 유전은 전국 산업 시설에 동력을 제공하는 배후지 역할을 했다. 동베이 지역 몰락의 신호탄은 아이러니하게도 오늘날 중국의 근대화를 가져온 개혁개방의 시작이었다. 국유기업의 밀집, 내륙 깊숙한 곳에 자리 잡은 지리적 불리함, 변경지역의 속성인 폐쇄적 관료주의와 이데올로기적 경직성, 북한, 시베리안 러시아, 몽골 같은 주변국의 저발전은 동베이 지역을 자유주의 국제무역질서에서 멀어지게 하는 장애물로 작용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올해 11월 광둥성 선전에서 개최되는 APEC 정상회담 참석을 위해 다시 중국을 방문할 예정이다. 선전은 덩샤오핑 시기 전면적인 개혁개방 결정 이후 서구의 자본주의경제를 시범적으로 도입한 첫 번째 도시다. 또한, 천안문 사태 이후 개혁파의 입지가 크게 위축된 상황에서 덩샤오핑 총서기가 개혁개방의 지속적인 실천 의지를 대내외에 과시하기 위해 시동을 건 1992년 남순강화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그 결과 선전은 오늘날 베이징, 상하이, 광저우와 함께 중국 4개 일선 도시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요약하면, 선전은 중국 경제발전의 기관차이자 최고 수혜지로서 개혁개방의 성과를 상징하는 장소다. 동베이 지역에서의 차기 정상회담 개최는 1978년 개혁개방, 1992년 남순강화, 2026년 APEC으로 이어지는 경제발전의 염원과 의지를 대척점의 낙후 지역까지 확산하고 그 결과를 다시 중국 전역으로 선순환시키는 대동맥을 완공하는 작업이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동베이 지역에서 정상회담 개최는 사드 사태, 코로나 펜데믹 이후 위축된 한국 교민과 동포 사회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것이다. 현재 동베이에 위치한 선양, 다롄, 창춘 등의 도시에서는 한국 교민이 급격히 감소하고 있다. 그 결과 동베이 지역의 가장 큰 도시인 선양에서는 북한 노동자의 규모가 한국 교민의 수를 능가하는 현상이 발생했다. 대표적인 한인 타운인 시타를 뒤덮었던 한국 관련 상점과 식당은 오랜 기간 영업난으로 고전하고 있다. 동베이 지역의 조선족 공동체도 조선족 학교에서의 한국어 교육 대폭 축소로 정체성 유지에 위기를 겪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상회담을 통해 단동, 옌벤, 훈춘 등의 도시에 한국, 북한, 중국, 일본, 러시아가 합작하는 무역 특구, 관광특구 등을 개설한다면 교민과 동포 사회의 자존감 회복과 경제 활성화에 커다란 도움을 제공할 것이다.
현재 북한과 러시아에는 핵실험과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해 경제제재가 시행 중이다. 그러나 경제제재와 별도로 북한과 러시아는 실질적인 교역 상황이며 중국에서도 다수의 북한, 러시아 출신자들이 경제 행위를 수행하는 것 또한 직시해야 할 현실이다. 재집권 이후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과의 양자 협상을 통해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일방적인 외교 행보를 걷고 있다. 이미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요동치는 국제정치 국면에서 동베이 지역에서 개최되는 정상회담은 동북아 지역안정과 번영을 촉진하고 초강대국들의 압박에서 외교의 자율성을 증진할 수 있는 고도의 전략적 행위가 될 것이다.
함명식 길림외국어대 지역국별연구원 및 국제상학원 교수 asymmetryir@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