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의 넥스트 거버넌스] 〈1〉거버넌스 리엔지니어링: 중진국 함정을 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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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 KAIST 문술미래전략대학원 초빙석학교수·前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대한민국은 세계사에 유례없는 성장 신화를 썼다. 1인당 GDP 100달러(1962년)에서 3만4000달러(2023년)로 도약하며 세계 12위 경제대국에 올랐다. 그러나 선진국 문턱인 4만달러 앞에서 성장엔진이 급격히 식고 있다. 합계출산율은 0.72명(2023년)으로 OECD 평균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고, 수도권에는 인구의 절반이 몰려 지방은 소멸 위기에 놓여 있다. 노인 빈곤율은 40%(2022년)로 OECD 평균의 세 배, 청년실업률은 전체 실업률의 2배 이상에 달한다.

교육 투자 효율성도 낮다. 사교육 시장 규모는 26조원(2022년)에 이르지만, 서울대·KAIST·포스텍 등 주요 대학의 세계 랭킹은 하락세다. 미국으로 진학하는 한국인 유학생은 4만명을 넘어(2023년) 우수 인재의 해외 유출이 가속화되고 있다.

산업 경쟁력도 약해지고 있다. 유니콘 기업(기업가치 1조원 이상) 수는 미국 490여개, 중국 170여개인데 한국은 14개에 불과하다(2023년). 미래 성장 엔진인 스타트업이 엄격한 규제와 불안정한 정책 탓에 성장 단계에서 해외로 빠져나가는 구조적 한계도 드러나고 있다.

문제의 본질은 개별 정책이 아니라 이를 기획하고 집행하는 구조다. 중국도 불과 20여년 전만 해도 반도체·전기차·인공지능(AI) 분야에서 한국보다 뒤쳐져 있었다. 그러나 '완강' 전 과기부 장관이 11년간 재직하며 장기 전략을 일관되게 추진한 결과, 반도체 자급률을 끌어올리고, 전기차 보급률 세계 1위, AI 논문 인용 세계 2위라는 성과를 만들어냈다.

싱가포르 역시 1990년대까지만 해도 작은 내수시장과 인재 부족이 고질적인 한계였다. 그러나 'Whole-of-Government' 방식으로 부처 칸막이를 없애고 총리실 주도로 국가 핵심 어젠다를 통합 실행했다. '스마트네이션 프로젝트'는 전 부처 데이터를 연결해 교통·보건·안보 효율을 높였고, 바이오 클러스터는 기초연구에서 임상·상용화까지 이어지는 원스톱 생태계를 구축해 글로벌 제약기업을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다. 두 나라 모두 출발점은 불리했지만, 전략의 지속성과 정책의 일관성을 통해 지금은 세계가 주목하는 경쟁력을 확보했다.

반면 같은 시기 한국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국정 어젠다가 흔들리고, 부처 간 이해관계에 막혀 장기 국가전략 프로젝트가 좌초됐다. 그 결과 주변국이 성과를 쌓아가는 동안, 우리는 정치적 고려가 전문성을 앞서는 구조 속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점점 잃어왔다.

이제는 정치적 직감이 아니라 데이터에 기반한 의사결정, 전문가가 주도하는 정책 설계와 집행 구조가 필요하다. 선거 주기에 맞춘 단기성과 중심의 정책 추진에서 벗어나, 장기적 비전과 지속 가능한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필자는 지난 24년간 기업 현장과 국회, 정부를 두루 경험했다. 그 과정에서 얻은 확신은 분명하다. 지금의 시스템만으로는 다가올 미래를 감당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부분적 처방이 아니라, 산업화 시대에 맞춰 설계된 기존의 국가 거버넌스 시스템을 디지털 경제 시대에 맞게 근본적으로 재설계해야 한다. 사람이 유일한 자원인 대한민국에서, 인적 자원의 효율적 배치와 활용이 새로운 패러다임의 중심이 돼야 한다.

그래서 이 연재를 시작한다. '이영의 넥스트 거버넌스'는 현장에서 얻은 문제의식과 대안을 기록하고, 경제강국을 넘어 선도국가로 도약하기 위해 개선해야 할 시스템을 함께 고민하는 장이다. 많은 이들이 필요성을 알면서도 실행력 앞에서 좌절했던 변화를 이제는 함께 실현해 나가야 한다.

거버넌스 리엔지니어링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길이다. “넥스트 거버넌스 없이는 넥스트 코리아도 없다.”

이영 KAIST 문술미래전략대학원 초빙석학교수·前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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