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대기업이 이달 개최하는 주주총회에서 미래사업을 가속화하고 주주환원을 확대한다. 국내 정치 불안정성이 높아지고 글로벌 통상이슈로 어느 해보다 경영 불확실성이 커지자 이사회 중심으로 주요 의사결정에 변화를 기하고 시장에서 신뢰도를 높이기 위한 시도로 해석된다.
특히 올해 주주총회는 정부가 기업가치 제고(밸류업) 프로그램을 지난해부터 중점 추진한 이후 처음 개최하는 것이어서 관심이 집중된다. 올해 주요 기업들이 어떤 형태의 밸류업 프로그램을 가동할지 이목이 집중된다.
밸류업 프로그램 시행으로 기업이 주주환원에 나서면서 주주 중심 단체와 행동주의펀드 활동도 활발하다. 이들은 배당금 상향은 물론 주요 경영진의 등기임원 복귀 등 중장기 기업가치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경영 안건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불확실한 경영 환경…전열 재정비해 대응력↑
올해 주총에서는 어려운 대외 경영 환경에 대응하기 위해 신규이사를 선임하거나 신사업 계획을 포함하는 등 다양한 경영 이슈를 다룬다.
사내이사로는 전영현 디바이스솔루션(DS) 부문장 부회장, 송재혁 DS부문 최고기술책임자(CTO) 겸 반도체연구소장(사장)을 선임한다.
이사회 의장은 임기 만료에 따라 새 인물로 바뀐다. 지난해 3월 이사회에 합류한 신재윤 전 금융위원장을 감사위원회 위원으로 선임하는 안건을 처리할 예정이다.
이재용 회장은 사법 리스크가 지속되면서 올해 등기임원 복귀 안건은 다루지 않는다. 4대 그룹 총수 중 미등기 임원은 이 회장이 유일하다. 대법원 판단이 언제 내려질지 알 수 없어 이재용 회장은 사법 리스크만 10년 이상 겪을 전망이다.
네이버는 26일 열리는 주총에서 이해진 창업자가 사내이사로 복귀하는 안건을 다룬다. 최수연 대표는 재신임해 사업 시너지를 노린다.
이해진 창업자는 2018년 등기이사에서 물러난 후 글로벌투자책임자(GIO)로서 경영 방향을 제시해왔다. 글로벌 AI 경쟁이 격화하는 만큼 등기이사로 복귀해 네이버의 AI 사업에 속도를 내는 동시에 글로벌 사업을 강화하며 양 부문 간 시너지를 낼 것으로 관측된다.
주총에 앞서 네이버는 주요 인사를 기용하며 신사업 추진 발판을 마련했다. 김희철 CV센터장을 신임 최고재무책임자(CFO)에 내정하고 김남선 CFO는 전략투자 대표를 맡는다. 채선주 대외·ESG 정책대표는 사우디아라비아 등 글로벌 전략 사업을 위한 신설 전략사업부문을 맡는다. 네이버 아라비아 법인도 담당한다.
같은 날 주총을 여는 카카오는 지배구조 개선과 준법경영 강화 관련 안건을 처리한다. 감사위원으로 김선욱 법무법인 세승 대표변호사를 선임해 준법경영과 경영 리스크 예방 기능 강화를 꾀한다.
현대차는 20일 주총에서 정관사업 목적에 '수소사업 및 기타 관련 사업'을 추가하는 안건을 다룬다. 정관에 수소 사업을 명시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수소 관련 사업의 확장 가능성을 염두한 결정이다.
현대차는 2028년 양산을 목표로 올해 울산 수소연료전지 공장 착공에 돌입할 계획이다.
창사 이래 첫 여성 사내이사로 진은숙 현대차 정보통신기술(ICT) 담당 부사장을 선임한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사내이사로 재선임한다.
현대모비스는 19일 주총에서 이규성 사장을 사내이사로 신규 선임한다. 지난해 역대 최대 실적인 영업이익 3조원 달성을 이끈 성과를 인정받았다. 내실 위주로 사업 체질을 개선하고 신기술 확대와 제품 고도화를 바탕으로 사업 경쟁력 확대를 이끌 적임자라는 평가를 받았다.
SK는 26일 주총에서 최태원 회장을 임기 3년 대표이사에 재선임할 예정이다.

◇밸류업 확산 원년
정부는 올해 밸류업 프로그램 참여 기업을 확대하는 데 속도를 낸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5월 기업가치 제고 계획 공시 가이드라인을 마련한 후 지난해 연말 기준 99개사, 코스피 시총 기준 약 43%의 상장기업이 밸류업 공시를 실시했다.
밸류업 프로그램 도입에 따라 지난해 12월 30일 기준으로 기업의 자사주 취득 규모는 2023년 대비 2.28배 증가한 18조7000억원으로 나타났다 자사주 소각은 13조9000억원으로 2.90배 증가했다. 현금배당은 45조7000억원으로 7.2% 증가했다.
정부는 올해도 기업의 밸류업 참여 확대 기조를 지속한다.
밸류업 프로그램에 참여한 기업에 대해 세제지원을 추진하고 기업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자본시장법 개선, 스튜어드십코드 이행점검 등 적극적인 주주권리 행사를 위한 제도개선에도 나선다. 기업 지배구조와 관련한 자본시장법 개정 논의도 국회와 논의해 나갈 계획이다.
지난해 정부의 밸류업 프로그램에 동참한 주요 기업들은 올해 더욱 적극적인 주주가치 환원 정책을 준비하고 있다. 주총을 앞두고 LG전자, 현대차, SK하이닉스 등이 이전보다 더 적극적인 주주환원 계획을 밝힌 바 있다. 삼성전자, 삼성바이오로직스, 코웨이, 이마트 등은 올해 밸류업 참여를 확정했거나 참여를 검토하고 있다.
LG전자는 밸류업 프로그램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LG전자는 지난해 두 차례에 걸쳐 밸류업 프로그램을 공시했다. 연내 자사주 약 76만1000주 소각 계획을 밝혔고 배당성향 25%, 반기배당 실시, 연 1000원 최소배당금 설정, 기존 보유한 자사주 소각 등을 검토하겠다는 계획도 공개했다.
25일 개최하는 주총은 조주완 최고경영자(CEO)를 비롯한 사업부 임원들이 직접 사업 전략을 설명하는 열린 주총 형태로 꾸린다. 밸류업에 대한 의지도 재차 피력한다.
현대차는 연간 배당을 전년 대비 5.3% 증가한 주당 1만2000원으로 책정했다. SK하이닉스는 총 현금 배당액을 연간 1조원 수준으로 확대했다. 연간 고정배당금은 기존 1200원에서 1500원으로 25% 상향 조정했다.
코웨이는 올해 새롭게 밸류업 프로그램에 참여한다. 1분기 중 관련 내용을 공개할 계획이다. 지난 1월에는 현금배당, 연내 자사주 189만486주 소각, 2027년까지 총 주주환원 재원을 연결 당기순이익 20%에서 40%로 확대 등의 방안을 담은 새로운 주주환원정책을 발표했다.
지난해 실적 호조를 달성한 현대차와 SK하이닉스는 배당금을 역대 최대 수준으로 설정했다.
이마트는 오는 26일 개최하는 주총에서 밸류업 프로그램 계획 공개 안건을 상정한다. 소수주주 플랫폼 '액트'와 경제개혁연대의 주주 제안 안건을 받아들인 사안이다.
삼성전자는 아직 구체 밸류업 방안을 마련하지 않았지만 주주가치 제고와 주가 회복을 목적으로 지난해 11월 총 10조원 규모 자사주 매입 계획을 밝혔다. 지난달 3조원 규모 1차 자사주 매입을 마쳤고 나머지 7조원 규모 자사주 추가 확보에 나설 예정이다.
또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전 사업부 임원이 참석해 주주와 대화하는 열린 주총을 운영한다. 19일 개최하는 주총 현장에 인공지능(AI) 홈, 볼리, 갤럭시 AI를 비롯해 의료기기, 차세대 디스플레이, 하만 전장·오디오 솔루션을 전시해 미래 기술 경쟁력을 강조한다.
제약·바이오 분야에서는 유한양행, JW홀딩스, JW신약, 일동홀딩스, 대원제약 등이 주총에서 투자자가 배당금을 확인하고 투자 여부를 결정할 수 있도록 배당 관련 정관 일부를 변경한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배당 예측성을 제공할 수 있도록 정관 변경을 검토하고 2025년 이후 현금배당을 고려하고 있다. 대웅과 대웅제약도 선 배당·후 투자 제도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한편, 올해 주총 표대결에서 가장 크게 희비가 교차할 기업은 경영권 분쟁을 겪고 있는 고려아연과 MBK·영풍이다.
고려아연은 28일 개최하는 주총에서 핵심 안건 중 하나로 집중투표제를 적용해 신규이사 선임 안건을 처리한다.
집중투표제는 이사 선임 시 선임하는 이사 수만큼 의결권을 주주에게 부여하고 원하는 후보에게 몰아줄 수 있는 제도다. 지분에서 열위에 놓인 최윤범 회장 측에 유리할 것이라는 시각이 나온다.
고려아연 지분은 MBK·영풍 연합 40.97%, 우호 지분을 합친 최 회장 측이 34.35%다. 고려아연 측 의장이 주총에서 영풍의 의결권 제한을 선언하면 MBK·영풍 측이 이에 반발해 파행을 맞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배옥진 기자 witho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