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보이스 전자의무기록(EMR) 솔루션 시장이 개화 조짐을 보인다. 지난해 의정갈등 발발 이후 의료진 업무 부담이 늘면서 자동화 솔루션 도입 수요가 급격히 커졌기 때문이다. 외래뿐 아니라 수술, 응급실 등 병원 전역으로 음성 인공지능(AI)을 접목, 디지털전환에 속도가 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16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수도권 '빅5' 병원을 포함해 국내 주요 대형병원이 대거 보이스 EMR 솔루션을 도입했거나 도입을 추진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중소병원까지 합치면 올해만 300곳이 넘는 의료기관이 이 솔루션을 도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보이스 EMR는 의료진이 음성으로 진단 혹은 판독하면 AI가 이를 듣고 분석해 텍스트로 전환해 준다. 이 텍스트는 의료 용어로 변환, EMR에 자동 기록돼 업무 부담을 크게 줄여준다.

현재 가장 많이 쓰이는 영역은 영상의학과나 핵의학과 등 검사 결과를 판독하는 진료과다. 영상 판독 시 의료진이 직접 수기로 결과를 입력하거나 판독 내용을 다른 의료진이 대신 타이핑하는데, 이를 AI가 자동으로 처리해주기 때문이다.
수도권 '빅5' 중에선 세브란스(신촌), 삼성서울, 서울성모병원이 영상의학과, 핵의학과 등에 보이스 EMR를 적용했다. 서울아산병원은 올해 도입을 목표로 전문 업체와 공동 개발을 진행 중이며, 서울대병원도 적용 시점을 조율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고대의료원, 일산차병원, 한양대병원 등 수도권 대형병원들도 일부 진료과를 대상으로 보이스 EMR를 적용했다.
업계는 현재 국내 1~3차 의료기관 중 보이스 EMR를 도입한 곳은 250곳 내외일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90% 이상이 지난해 도입했다. 올해 역시 도입 수요가 지속돼 300곳 이상이 구축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여기에 건양대병원 등 일부 병원은 자체 개발까지 나섬에 따라 보이스 EMR 열풍은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김종엽 건양대병원 의생명연구원장(대한의료정보학회 이사장)은 “현재 다양한 보이스 EMR 솔루션이 있지만 특정 진료과에 특화된 경우가 많아 다양한 영역에 활용이 쉽지 않다”면서 “이를 해소하기 위해 병원 내부 수요를 파악해 적용 가능한 솔루션을 개발 중”이라고 말했다.

보이스 EMR 수요가 급격히 커지는 이유는 대형병원 인력 부족 현상이 심화되기 때문이다. 지난해 2월 의정갈등 발발 후 수련병원 전공의 95% 이상이 병원을 떠났다. 반면 새로 충원된 의료진은 채 5%도 안됨에 따라 의료진 업무 부담이 큰 폭으로 늘었다.
보이스 EMR는 비교적 합리적인 비용으로 의료진 업무 부담을 줄여줄 수 있다는 점에서 수요가 높다. 실제 영상의학과, 핵의학과, 응급실 등에선 음성만으로 검사 결과를 자동으로 EMR에 입력할 경우 월평균 500분 이상 기록 업무를 줄일 수 있다는 연구결과도 나왔다.
시장 확대를 대비해 업체들도 분주하다. 퍼즐에이아이, 셀바스AI 등 의료 음성AI 업체들은 진료과 확대를 위해 추가 개발과 함께 대형병원과 공동 연구를 추진 중이다. AI 음성인식이 진료 전 영역으로 확대됨에 따라 이를 활용한 디지털전환 프로젝트도 활기를 띌 것으로 업계는 기대한다.
김용식 퍼즐에이아이 대표는 “병원 전 진료과에서 사용가능하도록 솔루션 업데이트를 완료했다”면서 “국내뿐 아니라 해외 의료기관과 공동 연구도 적극 모색해 올해는 작년 대비 두 배 이상 늘어난 고객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용철 기자 jungyc@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