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프트웨어(SW) '단가 후려치기' 관행이 최근 하드웨어(HW) 가격 급등과 맞물려 공공 정보기술(IT)사업 현장에서 다시 기승을 부린다.
사업 예산은 한정된 상황에서 인공지능(AI) 관련 수요 급증에 따른 메모리 가격 상승으로 장비 가격이 폭등하자, 사업자가 부족분을 SW 공급가에서 깎아 메꾸는 '땜질식' 처방으로 대응하고 있다.
18일 업계에 따르면 공공 IT사업 현장에서 “HW 값이 올랐으니 SW 개발비를 깎아라”는 식의 압박이 이어지고 있다.
SW기업 A사는 최근 공공 IT사업을 수주한 기업으로부터 관련 SW 가격을 절반 이하로 낮춰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HW 가격이 상승함에 따라 손실이 커져, SW 가격을 낮춰 손실분을 메우겠다는 것이었다. A사는 손해를 감수하고 사업에 참여했다.
A사 대표는 “사업 수주 전부터 가격을 맞추지 못하면 경쟁사 제품으로 대체될 수 있다는 불안감이 크다”며 “이미 우리 제품을 사용 중인 곳에서도 윈백 위험 때문에 마진 없이, 혹은 적자를 보면서도 울며 겨자 먹기로 공급할 수밖에 없는 처지”라고 토로했다. 국내 중소 SW기업이 공공사업의 HW 가격 인상분을 받아내는 '완충재' 역할을 강요받고 있는 셈이다.
B사의 상황도 다르지 않다. B사 대표는 “주 사업자의 SW 단가 인하 압박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최근에는 HW 가격 급등 부담을 상쇄하려는 압박이 거세다”며 “SW가 포함된 사업 전반에서 이런 현상이 심화하고 있으며, 이 같은 사례를 업계와 공유하고 있다”고 전했다.
통상 공공사업 예산은 사업 수행 전년도 하반기에 편성된다. 지난해 10월에 잡힌 100억원 규모 프로젝트에서 HW 비중이 20억원이었다면, 최근 공급망 불안과 환율 변동으로 인해 해당 장비값이 40억원으로 두 배 이상 뛰는 일이 허다하다.
한국IT서비스산업협회(ITSA) 조사에 따르면 대표적 장비인 x86 서버 가격은 1년 사이 약 3.5배 인상되는 등 HW 전반에 걸쳐 가격이 오르고 있다.
하지만 예산 증액이 사실상 불가능한 공공사업의 특성상, 사업자는 HW 비용 대신 '조정 가능한' SW 라이선스비나 개발 인건비에서 이 차액을 메우고 있다.
'비용 전가'는 주로 국내 중소 SW기업에 집중되는 양상이다. 글로벌 독점 지위를 가진 외산 SW기업은 단가 협상 자체를 거부하는 반면, 국내 기업은 대형 사업자나 발주처 요구에 취약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주무 부처인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대응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올해 초부터 HW 가격 상승에 따른 공공 IT사업 점검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았지만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고 결국 SW까지 영향을 받는 상황까지 치달았다”고 말했다. 이어 “원인이 HW 가격 상승과 경직된 입찰 제도에 있는 만큼 정부의 신속한 대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현행 예산 체계의 전면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힘을 얻고 있다.
급격한 물가 상승이나 환율 변동 등 외부 요인이 발생했을 때, 추경 등을 통해 사업비를 유연하게 증액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분석이다. 또 공정계약을 유도하기 위한 제도 정비를 병행해야 한다는 주문도 나온다.
김숙경 KAIST 교수는 “사업자 간 계약의 불합리성을 제거하기 위해 10년 전부터 표준 계약서를 만들어 권고하고 있지만 강제성이 없다 보니 현장에서는 여전히 이중 계약이나 가격 인하 압박 등이 횡행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김 교수는 “표준 계약서를 성실히 이행하고 상생 협력을 실천한 기업에 대해 평가 가점을 대폭 확대하는 등 당국이 할 수 있는 실질적인 유인책과 규제 장치를 강화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최호 기자 snoop@et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