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플러스] 공정위 vs 이통사 담합 개념, 규제권한 정면충돌…분쟁 장기화 불가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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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통신 3사의 번호이동 가입자 조정 담합에 과징금 1천140억 (세종=연합뉴스) 배재만 기자 = 공정거래위원회 문재호 카르텔조사국장이 12일 정부세종청사 공정위 기자실에서 이동통신 3사가 2015년 11월부터 2022년 9월까지 번호이동 순증감 건수가 특정 사업자에게 편중되지 않도록 상호 조정하기로 합의하고 실행한 것에 대해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 총 1천140억원(잠정)을 부과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히고 있다. 2025.3.12 scoop@yna.co.kr(끝)

공정거래위원회는 SK텔레콤·KT·LG유플러스에 과징금 총 1140억원을 부과하며, 번호이동 가입자 정보 공유와 합의 등 행위를 담합 증거로 제시했다. 이에 대해 이동통신사는 방송통신위원회의 법집행 지시에 근거해 정보를 공유한 것은 담합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이동통신단말기 유통구조개선법과 공정거래법 등 소관법률, 규제기관의 권한에 양측은 완전히 상반된 입장이다. 결론은 법원의 판결에 맡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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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이통 3사 공정위 과징금 규모

◇담합 핵심 구성요소 '합의' 성립되나

담합으로 인한 공정거래법 위반을 판단하기 위한 이번 사건 핵심 쟁점 중 하나는 이통 3사간 '합의' 실행 여부다. 합의는 공정위가 사건을 담합으로 판단한 '과정'에서 제시된 핵심 근거다.

공정위는 이통 3사가 한국정보통신진흥협회(KAIT)와 구성한 상황반에서 합의를 형성하고 실행했다고 봤다. 구체적으로 △특정 이통사의 번호이동이 순감할 경우 다른 사업자들은 판매장려금 인하를 합의 △번호이동 순감 사업자의 판매장려금 인상 합의 △순증 사업자가 순감 사업자에 대한 사과가 법위반에 해당한다고 제시했다. 실제 공정위가 상황반 단톡방에서 수집한 증거 자료에는 '3사 팀장 협의에 따라 조정', 'S와 공동으로 진행하기로 합의' 등 문구가 수차례 등장한다.

하지만, 이통사는 문구 작성 주체와 상황, 법률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해당 단톡방 문구는 KAIT관계자가 이통사 관계자와 대화를 나눈 후 방통위에 보고한 내용이다. KAIT 관계자가 대화 자체를 편의상 합의로 표현했을 수 있으며, 문구 자체만으로 합의 여부를 판단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이통사는 근본적으로 상황반 운영이 방통위 지시에 근거한 이동통신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단통법) 집행 과정의 정보공유 행위였다고 주장했다. 방통위는 상황반 단톡방에 직접 참여했으며, 정부예산을 사용하는 법정협회인 KAIT를 통해 실무를 맡겼다. 번호이동을 관리하라고 지시하고 시장이 과열될 경우, 벌점부과, 임원소환 등 페널티를 부과한 것은 휴대폰 시장에서 불법보조금이 발생해 이용자 차별이 발생하는 것을 막는 단통법 집행 행위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이통사는 방통위의 단통법 집행 행위임을 입증하기 위해 방통위 담당자가 번호이동 조정을 지시하는 내용이 담긴 자료도 심결에서 제시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담합의 결과물이 경쟁구도 변화?

또, 이통사는 법률상 '합의' 개념을 명확하게 해석해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공정거래법상 공급제한을 위한 합의는 생산량, 판매량, 출고량, 거래량 등을 조정하는 행위로 유형이 정리된다. 유통점에 대한 판매장려금은 번호이동 건수에 큰 영향을 끼치는 건 사실이지만, 직접적으로 판매량과 거래량을 조정할 순 없다. 판매장려금 조정은 담합 유형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게 이통사 입장이다.

공정위는 담합 '결과'에 해당하는 경쟁 제한효과와 관련, 이 사건 합의 이후 이동통신 시장에서의 가입자 유치 경쟁이 제한됐다고 봤다. 이동통신 3사의 일평균 번호이동 순증감 변동폭은 2014년 3000여건에서 2016년 이후에는 200여건 이내로 안정적으로 유지됐다는 점을 근거로 제시했다. 이통 3사간 일평균 번호이동 총 건수는 2014년 2만8872건에서 2022년에는 7210건으로 75% 감소했다는 데이터도 제시했다.

번호이동 건 수의 변화는 일견 경쟁이 줄어든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번호이동 감소는 2014년 단통법 시행 이후 방통위가 불법보조금으로 인한 시장과열에 대해 8차례 이상 약 1400억원 규모 과징금 징계를 부과하는 등 시장 안정화에 따른 결과이지, 담합의 결과물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실제 이통 3사의 시장 점유율은 2015년말 SK텔레콤이 48.7%, KT가 33.6%, LG유플러스가 17.6%를 기록했지만, 2023년에는 SK텔레콤 40.5%, KT 23.5%, LG유플러스 19.2%로 시장집중도가 완화됐다. 담합이 소비자를 배제시킨 채 공동의 이익을 취하기 위해 경쟁하지 않는 행위라면, 시장집중도 완화 현상을 설명할 수 없다는 게 이통사 입장이다.

◇법정에서 결론 불가피... 논쟁 장기화 전망

공정위는 해당사건을 시장 내 경쟁자들이 공동으로 가격이나 생산량을 제한하는 경성담합에 해당한다고 봤지만, 과징금 부과 기준은 매우 낮은 수준인 관련매출의 1%로 책정했다. 방통위의 행정지도 등을 감안했다는 입장이다. 최초 이통 3사에 5조원대 과징금이 부과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데 비해 낮아진 것은 맞지만, 단통법 준수 행위에 대한 공정위의 잣대를 여전히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에 따라 이통3사 모두 법적대응을 시사하며, 사실상 행정소송에 돌입할 계획임을 시사했다.

한 이통사 관계자는 “공정위의 의결 보도자료 등에는 이통사의 입장이 전혀 반영되지 않았고 심사보고서 내용을 일방적으로 반복했다”고 전했다. 방통위 관계자의 상황반 단톡방 참여 사실 등도 의도적으로 배제된 것 아니냐고 의심했다.

이번 사건에서 부처간 규제권한도 충돌을 피하기 어렵다. 방통위는 2014년 이후 이통사의 과도한 판매장려금에 지급 등에 대해 1464억원의 누적 과징금을 부과했다. 방통위 관계자는 이번 공정위 전원회의에도 참여해 번호이동, 판매장려금 조정 등과 관련해 단통법 집행과정이자 지시임을 설명했다. 공정위는 행정지도를 벗어난 행위에 대해 제재한다고 했지만, 이통시장에 대한 방통위의 규제권한을 인정하지 않았다는 논란이 지속된다.

무엇보다도 하나의 정부에서 부처간 다른 결론이 나오는 상황에 대해 기업의 불확실성이 가중된다는 지적이다. 이성엽 고려대 교수는 “이통 입장에선 방통위를 따랐다가 공정위의 제재를 받는 모순적 상황으로 보인다”며 “통신 뿐만 아니라, 해운, 금융 등 다양한 개별 시장에서 유사한 논쟁이 발생하고 있는 만큼, 정부기관간의 명확한 협의와 가이드라인 제시가 필요해보인다”고 말했다.


박지성 기자 jisung@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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