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 트럼프 2기 '플랫폼 국가'의 약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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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배 서울대 교수

트럼프 2기 미국의 '플랫폼 정책'은 자국 빅테크에 대한 규제를 풀고, 그 경쟁력 제고를 위한 지원책을 펼칠 것으로 보인다. 대외적으로는 '안보 프레임'을 앞세워 중국의 기술 추격에 대한 견제의 고삐를 조이고, 미국에 진출한 중국 플랫폼도 강하게 몰아세울 가능성이 있다. 미국의 동맹국들도 예외가 아닐 것 같다. 벌써 이런 기세에 눌려서인지 유럽연합(EU)이 미국 빅테크를 겨누었던 규제를 재검토한다는 전언마저 있다. '자국 우선주의'의 기치 아래 국내적으로 규제를 완화하지만 대외적으로 제재를 강화하는 '외강내유(外剛內柔)'의 행보가 예견된다.

트럼프 2기에는 빅테크 플랫폼과 이를 지원하는 국가 정책이 긴밀히 결합하는 '플랫폼 국가'가 약진할 것이다. 플랫폼 국가의 개념은 디지털 경제 시대를 맞은 새로운 경쟁 양식의 출현을 잘 보여준다. 플랫폼 자본은 초국적으로 활동하며 탈(脫)영토적 권력을 행사하지만, 자국 국가기관 및 제도에 기대어 활동할 수밖에 없다. 결국 플랫폼 자본은 국내 데이터 및 시장에 대한 특권적 접근과 해외에서의 지원을 대가로 정부의 정책에 순응하게 된다. '미국형 플랫폼 국가'는 '규제국가'와 '발전국가' '안보국가'의 세 차원이 복합적으로 연계되며 작동한다.

미국은 자유방임의 전통하에 시장의 공정경쟁을 관리하는 '규제국가'의 전통을 가진 나라다. 역사적으로 반독점을 명분으로 시장에 개입하는 정책을 펼쳐왔고, 이는 역설적으로 해당 산업의 혁신 동력으로 작용했다. AT&T, IBM, 마이크로소프트(MS) 등의 대기업을 제소했고 현재 구글과 메타도 소송 중이다. 바이든 행정부의 플랫폼 규제는 한때 '글로벌 스탠더드'로 일국 단위를 넘어서 국제적으로 전파되기도 했다. 트럼프 2기에도 '규제국가'의 기조는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표현의 자유' 보호를 내세워 플랫폼에 대한 반독점 규제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트럼프 2기에는 AI 분야를 중심으로 빅테크에 대한 규제가 완화될 것이다. 취임 직후 트럼프 대통령은 기업혁신을 저해한다며 기존의 'AI 규제 행정명령'도 폐기했으며, AI 인프라 구축을 위한 초대형 프로젝트인 '스타게이트'를 발표했다. 바이든 행정부 말기에도 국가 자산인 플랫폼 기업의 경쟁력 약화를 우려해 플랫폼 규제 법안이 철회된 바 있다. 이른바 '발전국가'의 진흥 정책을 미국에서 보는 듯하다. 이러한 정책은 바이든 시기에 미국의 산업부흥을 노린 반도체 분야에서 출현했으며 이제는 AI와 플랫폼 분야로 옮겨가고 있다.

여기에 데이터 분야를 중심으로 부상한 '안보국가'의 면모가 가세했다. 국가안보를 빌미로 한 대중국 제재는 5G 이동통신 분야에서 시작됐고 최근에는 플랫폼 분야에서도 나타났다. 데이터의 초국적 자유유통을 옹호하면서도, 자국 시장에 진출한 중국 플랫폼에 의한 자국민 데이터의 유출은 개인정보 보호와 사이버·데이터 안보를 이유로 제재한다. 중국계 동영상 플랫폼인 틱톡의 사용을 금지하고, 테무, 쉬인 등 중국 이커머스 플랫폼에 대한 제재가 거론된다. 앞으로 중국을 상대로 미국이 벌일 '플랫폼 지정학'의 공세가 더 거세질 가능성이 있다.

트럼프 2기 플랫폼 국가의 약진은 한국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올해 국내에서 플랫폼 규제 법안이 실행되어 미국 빅테크가 반발하면 미국과 통상마찰 가능성이 있다. 국내 플랫폼만 규제하면 자칫 국내 기업의 경쟁력이 하락할 우려가 있다. 진흥책 없는 규제책의 역효과가 발생할지도 모른다. 이런 상황에서 환경 안전성과 데이터 안보의 우려를 안고도, 최근 국내에서 급속히 성장 중인 중국 플랫폼 기업들만 반사이익을 볼 수도 있다. 규제-진흥-안보를 복합적으로 챙기는 '한국형 플랫폼 국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

김상배 서울대 정치외교학부교수 sangkim@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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