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 물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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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올해도 벌써 5월에 접어들었다.

농촌에서 5월은 모내기를 준비하는 바쁜 달이다. 모내기는 모를 심기 전부터 많은 준비 작업이 필요하다. 모내기에 쓸 모를 기르기 위해 못자리를 설치하고, 모판에서 모를 길러야 한다. 이후 모내기 날짜를 정하고, 날짜에 맞춰 논 상태를 모를 심기 적합하게 만들어야 한다. 이때 중요한 일이 논의 물꼬를 트는 것이다.

논에 물을 채워뒀다 모내기 전에 물이 오가는 길인 물꼬를 터서 물을 내보낸다. 논 바닥을 마치 갯벌처럼 만들어야 모를 잘 심을 수 있다. 모내기 이후에도 물꼬를 잘 관리하는 것은 벼농사에서 매우 중요한 일이다. 논에 물이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아야 한다. 여름 홍수철에는 물꼬를 더 터서 물이 잘 빠져나가게 해야 하고, 가뭄에는 물꼬를 막아서 논에 물이 고여 있도록 해야 한다.

물꼬가 과거 농경사회에서 정말 중요한 역할을 한 만큼 비유적인 표현으로도 자주 사용된다. 국어사전에는 물꼬에 대한 다른 의미를 '어떤 일의 시작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고 설명돼 있다. 흔히 쓰는 “대화의 물꼬를 트다” 같은 경우가 이 의미다.

지난달 29일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만났다. 윤 대통령 취임 이후 2년 만의 첫 만남이다. 여야 영수회담 이전부터 윤 대통령과 이 대표가 만나 '대화의 물꼬'를 트고, 협치를 시작해야 한다는 여론이 많았다. 마침내 이뤄진 만남은 의미가 있었고, 곧바로 결과도 나왔다.

여야는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이태원 참사 특별법'을 수정하기로 합의하고, 본회의에서 처리했다. 여야 모두 협치의 결실이라며 환영했다. 정치권뿐만 아니라 일반 국민도 여야가 대립을 멈추고, 대화를 통해 논의를 진전시켜가는 것을 반기고 있다. 이 진전의 시작은 영수회담, 즉 대화의 물꼬를 트는 일이었다.

지금 대화의 물꼬를 시급히 터야 하는 곳이 또 하나 있다. 의대 정원 확대 문제로 전공의가 이탈하고, 교수들까지 반발하고 있는 의료계다. 의대 증원에 반대하며 전공의들이 진료 현장을 이탈한 지 벌써 두 달도 훌쩍 넘었다. 의대 교수들도 사직서를 제출했고, 주1회 휴진도 하고 있다. 조만간 실제 사직하는 교수들도 나올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의료 현장은 대혼란이다. 빅5를 비롯한 대형 병원에서는 외래진료와 수술, 입원 등을 대폭 축소했다. 환자와 보호자들은 속이 타들어간다. 전공의가 이탈한 자리를 메우는 의대교수와 간호사, 공중보건의사(공보의) 등 의료진 피로도도 극에 달했다.

현재와 같은 상황이 계속되면 병원 경영난 심화는 물론이고, 연관된 제약과 의료산업계까지 타격이 불가피하다.

문제는 아직까지 제대로된 '대화의 물꼬' 조차 트지 못했다는 점이다. 정부와 의료계는 각자 입장만 주장하는 강대강 대치만 이어가고 있다. 대통령 직속 의료개혁특별위원회가 출범했지만 당사자인 의료계가 불참했다. 최근에는 의료계 내부인 대한의사협회와 전공의협의회 목소리도 엇박자가 난다.

이 상태로는 해결책을 찾을 수 없다. 정부도 의료계도 이를 알고 있을 것이다. 이제는 함께 모여 머리를 맞대고 이 상황을 끝낼 방안을 찾아야 한다. 그 시작은 '대화의 물꼬'를 트는 것이다.


권건호 기자 wingh1@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