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환경규제 'DPP' 2026년 도입 추진
獨 카테나-X 연동…데이터 주권 확보를
韓기업 94%, 공급망 실사 행동수칙 마련
원재료 추적가능성 확보 등 실행력 필요
ESG는 지속성장 기회…회의론 일시적
EU 그린딜·美 IRA 등 투자 환경 구축
#최근 유럽연합(EU)에서 탄소국경조정제도(CBAM)가 시행돼 탄소 배출량 보고가 의무화됐다. 그러면서 글로벌 국부펀드는 환경파괴·노동착취 기업 투자를 배제하고 있다. 글로벌 공급망에서 재생에너지 100% 사용(RE100) 이행을 요구받는 기업도 확대되면서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규제가 강화하고 있다. 국제전쟁이 장기화하고 글로벌 경기침체가 지속되며 기업 경영환경도 악화, ESG 회의론도 등장했지만 지구온난화가 야기할 인류 대재앙을 막기 위해 ESG는 지구촌 모든 기업의 생존 전략이라는 주장이 지배적이다. 본지는 '공급망 플랫폼' '이차전지 순환이용성' 등을 주제로 '2050 탄소중립' 목표 달성을 이끌 'ESG 테크'기업을 발굴·육성하고자 '2024 ESG 테크 포럼'을 개최했다.
◇EU, DPP 시행 임박…“수출 경쟁력 강화, 데이터 주권 확보해야”
이정준 LS일렉트릭 기술고문은 EU가 환경규제 차원에서 오는 2026년 추진하는 디지털제품여권(DPP)에 대응해야 한다고 했다. 이를 위해 우리 기업과 무역이 활발한 독일의 공급망 데이터 플랫폼인 '카테나엑스(Catena-X)'와 연동하고 궁극적으로 그를 대체할 '글로벌 공급망 데이터 플랫폼'을 구축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를 통해 배터리, 그린수소 등 국가 주력산업의 수출 경쟁력을 강화하는 동시에 데이터 주권을 확보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독일은 제조업 디지털 전환 과정에서 실시간으로 제품에 사용하는 부품과 제조과정 정보를 담은 'Catena-X'를 구축했다. 이후 ESG 경영 전환 과정에서 전 산업에 Catena-X를 접목해 탄소중립 목표 달성을 위한 '공급망 데이터 플랫폼'으로 진화시켰다.
이 고문은 “유럽 정부의 ESG관련 움직임은 DPP와 같은 데이터에 기반한 규제로 다가올 것”이라며 “수출 중심 우리 경제에 엄청난 영향력이 있을 것으로 예측된다”고 말했다. 한국 정부와 기업들의 철저한 대비가 있어한다는 지적이다.
EU '에코디자인 규정개정안(ESPR)에 따르면 연내 EU 이사회와 의회 최종 승인을 거쳐 발효된 후 이르면 2026년 DPP 제도가 도입된다. DPP는 EU에서 유통되는 모든 제품의 생애 주기 정보를 디지털로 수집·저장해 공유하는 게 핵심이다. 원자재 공급, 유통 관련 정보뿐 아니라 제품 내구성, 재활용·수리 가능성, 재활용 원재료 비율, 환경 발자국 등 제품의 지속가능성 정보를 포함한다.
이 고문은 “DPP가 시행되면 EU에 제품을 판매하거나 공급망에 참여하는 우리나라 기업은 사전에 철저히 준비해야한다”면서 “탄소발자국(PCF) 데이터, 리사이클 원자재 추적 데이터 등 자사 공장에서 수집·계산한 데이터뿐 아니라 원료단계부터 전체 공급망의 표준화된 데이터를 필요로 한다”고 설명했다.
다만, 독일 자동차 기업에 데이터를 제공해야하는 제3국 배터리 기업의 경우 리사이클 데이터 제공 과정에서 리튬 등 희귀금속 함량 등을 공유해야하는데 자칫 제조기술 노하우가 유출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 고문은 “Catena-X 같은 플랫폼은 개별 회사나 산업이 주도할 수 있는 기술이 아니다. 특히 중소기업은 대응 여력이 전무하다”면서 “일본이 독일 Catena-X에 대응해 자체 공급망 데이터 플랫폼 '우라노스'를 구축한 사례를 참고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 또한 배터리, 그린수소 등 국가전략산업 제조 노하우가 유출되지 않고 제조 데이터 주권을 유지하기 위해 자체 공급망 데이터 플랫폼을 구축해야만 한다”고 제언했다.
◇DPP, 관건은 원재료 추적가능성 확보
우리나라 기업들의 공급망 실사 행동수칙 자체는 충분하지만, 대응 체계가 미흡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최영락 한국생산성본부 지속가능경영본부장은 “지난해 국내 상위 50대 기업 중 공급망 관련 행동수칙을 마련한 기업은 94.7%나 되지만 행동수칙을 제대로 실천하는 기업은 50.9%에 불과했다”면서 “공급망 현황을 분석하고 사전적 리스크를 파악하는 기업은 단 15.8%에 그쳤다”고 말했다.
이어 “많은 기업을 실사하고 확인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업의 공급망 리스크가 어디에 있고, 기업이 집중적으로 검토해야 하는 이슈가 무엇인가에 대해 여전히 해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면서 “원재료에 대한 추적가능성을 확보하고 국내 기업에 적합한 대응 체계를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ESG는 지속성장 기회…회의론은 일시적
러시아-우크라이나, 이스라엘-팔래스타인 전쟁이 장기화하며 경기침체가 길어지자 지난해부터 ESG 투자 우선순위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EU 그린딜, 미국 IRA 등 ESG 투자를 촉진하는 제도적 환경이 구축되며, 거시적 관점에서 자금 흐름은 분명 ESG로 나아가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왕겸 미래에셋자산운용 책임투자전략센터장은 “ESG 투자에 자금이 들어가려면 제도·규제가 매우 중요한데 국내외 모두 ESG 제도가 만들어지고 있다”면서 “국내 채권시장의 경우, GSS(녹색·사회적·지속가능)채권 발행량, 발행 기관 모두 두자리 성장률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유럽은 ESG펀드 성장세가 둔화되긴 했지만 견고한 자금 유입을 보이고 있다”면서 “월간 단위로 보면 작년 일부 구간에서 유출이 발생했으나 유럽의 전체 펀드플로우에 비교하면 상당히 양호하다”고 분석했다.
장현숙 한국무역협회 그린전환팀장은 “EU 탄소국경조정제(CBAM), ESPR 등 보호무역기조가 확대하며 기후기술 패권 경쟁이 벌어지고 있고 구속력있는 첫 플라스틱 국제협약까지 올해 말 성안될 수가 있다”면서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기후공시를 시행하면 포스코, 한국전력공사, SK텔레콤, KT, LG디스플레이, 쿠팡 등 우리 기업들도 당장 ESG 대응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SG 중 사회(S) 요소 핵심가치 '인권'에 주목해야
ESG 중 사회(S) 요소의 핵심가치인 '인권'에 주목하고 관련 공급망 전체에 걸쳐 관련 데이터를 정확히 측정해야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미중 패권전쟁 등 공급망 재편이 전례없이 치열하게 전개되는 가운데 인권이 중요한 통상 기준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오지헌 법무법인 원 변호사는 “인권은 세계무역기구(WTO) 협약상 비차별 예외사유에 해당하며 유엔(UN)이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일찍이 인권경영 관련 규범을 만들어왔고 최근 논의되고 있는 인권실사도 가이드라인까지 만들었다”면서 “미국은 '위구르 강제노동금지법(UFLPA)'을 만들어 위법 기업의 미국 수출을 제한하고 독일은 지난해 기업실사의무화법을 시행했다. EU는 최근 EU의회의 종료를 앞두고 치열한 논의 끝에 기업지속가능성 실사지침(CSDDD)을 통과시켰다”고 설명했다.
이어 “수출을 기반으로 하는 우리나라 산업계는 반드시 인권에 대한 이해를 제고하고 대비해야 한다”면서 “인적자원개발(HRD)부서 역량을 강화해 자사는 물론 공급망 내 인권영향을 정확히 평가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준희 기자 jh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