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문재인 정부를 사실상 '반국가 세력'으로 언급해 논란이 된 가운데 더불어민주당이 대응에 나섰다. 민주당은 윤 대통령의 인식이 위험하다며 통일과 외교 안보를 정쟁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고 비판했다. 당내 일각에서는 윤 대통령 탄핵을 시사하는 발언도 나왔다.
문재인 정부 청와대 출신 국회의원들은 29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윤석열 대통령이 전임 정부를 '반국가 세력'이라고 주장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당장 국민 앞에 사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고민정·김승원·김영배·김의겸·김한규·문정복·민형배·박상혁·박영순·신정훈·윤건영·윤영덕·윤영찬·이용선·이원택·이장섭·정태호·진성준·최강욱·한병도·한준호 의원 등이 이름을 올렸다.
윤 대통령은 지난 28일 보수단체인 한국자유총연맹 창립 기념식에 참석해 “반국가 세력들은 핵무장을 고도화하는 북한 공산집단에 대하여 유엔안보리 제재를 풀어달라고 읍소하고 유엔사를 해체하는 종전선언을 노래 부르고 다녔다”면서 “북한이 다시 침략해 오면 유엔사와 그 전력이 자동적으로 작동되는 것을 막기 위한 종전선언 합창이었다”고 말했다. 종전선언의 목적이 북한의 침략을 용인하기 위한 것이란 취지로 해석될 수 있는 대목이다.
민주당은 거세게 반발했다. 문 정부 청와대 출신 국회의원들은 “윤 대통령의 발언은 극우 보수 단체의 대표나 할 법한 천박한 발언이다. 극우 보수만의 대통령으로 남은 4년을 끌고 가겠다는 선전포고를 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윤 대통령 탄핵을 시사하는 발언도 나왔다. 민형배 민주당 의원은 기자회견 이후 취재진과 만나 “이런 식의 망동을 계속하면 국민 목소리가 커질 것이고 그러면 그 목소리에 힘을 더해서 우리는 대통령직에 적절치 않은 점을 조목조목 지적하면서 고민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후 '탄핵을 시사하는 것이냐'는 질문에 민 의원은 “해석을 편하게 하라. 열어두겠다”고 답변했다. 다만 김영배 민주당 의원은 이후 “오해가 있을 수 있어서 말씀드리면 탄핵은 전혀 그렇지 않다. 그렇게까지 가는 건 아니다”라고 수습했다.
문재인 정부 장관 출신 정치인들 역시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김영주·권칠승·도종환·박범계·이개호·이인영·전해철·진선미·한정애·황희 의원 등도 이날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전 정부를 국가정체성을 부정하는 반국가 세력으로 규정한 것은 진영 논리와 정치를 벗어난 심각한 일탈행위”라며 “남북관계와 한반도 통일, 외교·안보를 대통령이 나서서 정쟁의 도구로 삼아서는 안 된다”고 규탄했다.
지도부에서도 날 선 반응이 나왔다. 박광온 원내대표는 이날 열린 정책조정회의에서 “문 정부의 한반도 정책은 박정희 정부의 7.4남북공동성명, 노태우 정부의 남북기본합의서, 김대중 정부의 한반도평화정책, 노무현 정부의 10.4남북공동선언의 정신을 계승한 것”이라며 “헌법과 민주적 절차에 따라 국민의 선거로 뽑히고, 또 국민의 동의 위에서 추진된 한반도 정책을 문제 삼아서 전임 정부를 반국가세력으로 규정하는 것은 국민 통합의 정신에 정면 배치된다”고 지적했다.
최기창 기자 mobydic@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