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국내 스타트업 투자는 2639억원으로 3월에 비해 22.9% 줄었다. 지난해 같은 달(1조2333억원)과 비교하면 무려 78.6%나 감소했다. 이같은 분위기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계속 이어지고 있다. 2022년 상반기까지는 그나마 괜찮았었지만 하반기부터 시리즈B 이상의 대규모 투자유치는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크런치베이스에 따르면 세계적으로도 올해 1분기에 스타트업에 투자된 벤처자금은 760억달러로, 지난 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치다.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투자기조는 고스란히 ‘드라이파우더’ 증가로 귀결됐다.
드라이파우더(Dry Powder)란 벤처캐피털(VC)이나 사모펀드가 만든 펀드 중 아직 투자가 이뤄지지 않아 당장이라도 투자에 사용할 수 있는 가용 자금을 의미한다. 총과 대포가 발명된 19세기까지 전쟁 중 병사들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는 화약을 건조한 상태로 유지하는 일이었다. 드라이파우더는 건조된 화약이라는 뜻으로 전투에서 바로 사용할 수 있도록 확보해 놓는 실탄을 의미하는 데에서 유래했다.
2022년 말 기준 국내 VC가 쌓아 둔 자금이 무려 12조원에 육박하며 사상 최고를 기록했다. 투자 시장이 가장 활발했던 2021년에 비해 오히려 17.5%나 증가한 수치다. 또한 베인앤컴퍼니와 피치북이 발표한 최근 데이터에 의하면 지난 해 기준으로 미국 VC가 갖고 있는 드라이파우더는 2901억달러(약 417조원)에 이르렀다. 2020년 팬데믹이 시작된 해에 2000억달러(약 287조원)에 가까운 자금이 모였고, 2021년에는 2300억달러(약 330조원)를 넘기더니 2022년엔 시장 상황이 좋지 않아서 투자를 줄이다 보니 더 큰 폭으로 자금이 쌓이게 된 것이다.
2021년까지는 유동성 풍년에 인수합병(M&A) 호황이 겹치며 펀드를 결성하고 자금을 소진하는 데 어려움이 없었지만 지난 해엔 시장이 침체돼 투자처를 찾기 쉽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벤처펀드는 6~10년 만기로 만들어지는데, 펀드가 결성된 후 적어도 3~5년 사이에는 투자를 완료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역대급 드라이파우더는 아주 고민스러운 대목이다. 지난 해에 이어 올해에도 전반적인 시장분위기가 나아지고 있지 않은 상태에서 돈을 쌓아만 두고 마냥 곳간만 걸어 잠그고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불안정한 세계정세와 인플레이션으로 경기 침체가 이어지고 있지만, 지금까지 움직이지 않던 VC들이 올해에는 공격적으로 투자를 늘릴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시장에서는 예상하고 있다. 그 근거는 바로 쌓이고 쌓인 드라이파우더다.
VC는 우수한 기업을 발굴해 투자하고, 성공적 결과가 나오면 투자수익을 공유해야 하는데, 엄청나게 누적된 드라이파우더를 갖고 관리보수만 챙기면서 투자를 머뭇거렸다간 펀드에 출자한 투자자들의 눈 밖에 날 가능성도 크고, 이런 시기에 실력을 발휘해야 진정한 투자자로서 자리매김할 수 있기 때문에 드라이파우더를 소진해야 한다는 강한 압박 속에서 이제는 적극적인 투자 행보에 나설 수 밖에 없다.
‘스타트업에 겨울이 왔다’, ‘강력한 혹한기가 닥쳤다’는 요란한 구호가 울려 퍼지고 거의 1년이 지나고 있다. 시장에 돈이 없어서 혹한기를 겪고 있는 걸까. 아니면 투자할 자금은 있지만 일부러 겨울잠을 자고 있는 것일까. 투자여력은 충분하지만 일단 겨울잠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거품이 모두 빠지고 투자를 재개할 더 좋은 타이밍을 보고 있었던 것이다.
스타트업의 기업가치가 하락할 만큼 하락한 상황이 된 지금, 이제 겨울잠을 끝낼 때가 왔다는 시선이 커졌다. 비즈니스 사이클은 언제나 반복된다. 영원히 올라갈 수도 영원히 내려갈 수도 없다. 그동안 골이 깊었으니 산도 높을 것이다.
최고의 와인은 척박한 땅에서 만들어지고, 최고의 수익률은 불경기에 이뤄진 투자가 기록해왔다. 이제 움츠렸던 스타트업들이 서서히 날개를 다시 펼 시간이 다가왔다. 올해가 스타트업 역사상 최고의 빈티지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유효상 유니콘경영경제연구원장 hsryou60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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