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는 하늘이니 높고 둥글어야 하고 해와 달은 눈이니 맑고 빛나야 하며 이마와 코는 산악이니 보기 좋게 솟아야 하고 나무와 풀은 머리카락과 수염이니 맑고 수려해야 한다. 이렇듯 사람의 얼굴에는 자연의 이치 그대로 세상 삼라만상이 모두 담겨 있으니 그 자체로 우주다.”
영화 '관상'의 내경의 대사다. 내경은 얼굴을 보면 그 사람의 모든 것을 꿰뚫어보는 천재 관상가다. 처남 '팽헌', 아들 '진형'과 산속에 칩거하고 있던 그는 관상 보는 기생 '연홍'의 제안으로 한양으로 향하고, 연홍의 기방에서 사람들의 관상을 봐주는 일을 하게 된다. 용한 관상쟁이로 한양 바닥에 소문이 돌던 무렵, 내경은 '김종서'로부터 사헌부를 도와 인재를 등용하라는 명을 받아 궁으로 들어간다. '수양대군'이 역모를 꾀하고 있음을 알게 된 그는 위태로운 조선의 운명을 바꾸려 한다.
관상학은 인간의 얼굴 등 외양을 관찰해 사람의 운명을 판단하고 그 얻어진 결론을 가지고 피흉추길의 방법을 강구하는 학문이다. 유사과학으로 여겨지기도 하지만 현실에 근거를 두고 통계학적 방법에 따르는 등 과학적인 방법으로 판단하기 때문에 옛날부터 전해지는 다른 점술과는 유례가 다르다는 평가도 있다.
관상학은 중국에서 시작됐다. 춘추시대 진나라의 고포자경이 공자의 얼굴을 보고 장차 대성인이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남북조시대에는 남인도에서 달마가 중국으로 들어와 선종(禪宗)을 일으키는 동시에 '달마상법'을 후세에 전했다. 그 후 송나라 때 마의도사가 남긴 '마의상법'에서 관상학의 체계가 확립됐다. 달마상법과 마의상법은 관상학의 양대산맥이다.
관상학이 한국에 들어온 것은 신라시대 선덕여왕 시절이라고 한다. 고려시대에는 혜징이 상술로 유명했다. 조선시대에도 유행했다. 조선시대는 영화 '관상'의 배경이기도 하다.
조선시대에 이어 지금도 관상 인기는 여전하다. 지금도 관상을 믿고 있고 관상의 영향을 받고 있다. 취업, 이직, 결혼 등을 인생의 중대사를 앞두고 길흉화복을 점치기 위해 관상을 보는 사람이 많다. 관상이 운명을 가른다면 성형수술로도 운명이 바뀔까. 관상에 적합하게 바꾸기 위해 '관상성형'을 한다는 이야기도 심심찮게 들려 온다.
그러나 2009년 뉴사이언스지는 관상과 사람의 성격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는 점을 밝히며, 관상학이 유사과학이라고 밝혔다. 그럼에도 유사과학은 한 시대의 문화 전반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치는 만큼 관상에 대한 관심은 영화 '관상' 속 이야기만은 아닐 것이다.
다만 외생변수는 있다. '관상' 내경은 마지막 이렇게 읊조린다. “난 사람의 얼굴을 봤을 뿐, 시대의 모습을 보지 못했소. 시시각각 변하는 파도만 본 격이지. 바람을 보아야 하는데. 당신들은 그냥 높은 파도를 잠시 탔을 뿐이오. 우린 그저 낮게 쓸려가고 있는 중이었소만. 뭐 언젠간 오를 날이 있지 않겠소. 높이 오른 파도가 언젠간 부서지듯이 말이오.”
권혜미기자 hyemi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