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자동차 운송 선박 부족 현상이 극심해지면서 자동차 해상운송 역할의 중요성이 재조명되고 있다. 국내 자동차 산업은 생산액이 연간 200조원에 이르러 제조업 생산의 12.7%, 고용의 11.5%를 차지하는 국가 핵심 산업이다. 국내에서 생산된 자동차 가운데에서 60~70%는 수출돼 판매되며, 우리나라 전체 수출액의 12.1%를 차지한다. 우리나라는 현재 중국, 미국, 일본, 독일, 인도에 이어 연간 약 411만대 자동차를 생산하는 세계 6위 국가다. 특히 앞으로 성장세가 기대되는 전기차만 두고 보면 세계 5위의 자동차 생산 대국이다.
◇자동차는 반도체가 집약된 고도의 전자제품
전자제품을 대표하는 냉장고나 세탁기에 내장된 전기·전자장치 부품의 생산원가 비중은 30~35% 수준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내비게이션 옵션을 추가한 중형 승용차의 비중은 이미 35%를 넘어선다. BMW7 시리즈나 폭스바겐 파이톤 등 수입 고급차의 비중은 50%, 하이브리드 차량은 70%에 이른다니 비중만 보더라도 전자제품 가운데에서도 복잡한 디지털 TV 수준을 능가한다. 최근 기술 개발 속도가 비약적으로 발달하고 있는 자동차 자율주행 기능이 탑재된다면 자동차는 실로 움직이는 고도화된 전자제품이라 할 수 있다.
◇해상운송 부문의 중요성이 증대되는 자동차 수출
전기차 등 친환경차 중심 자동차 생산·내수·수출이 7개월째 연속 성장하고 있다. 특히 지난 2월 자동차 수출액은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그러나 국내 완성차업계는 호황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있어 우려된다.
그동안 글로벌 코로나 팬데믹 영향으로 자동차 판매가 부진한 것은 이해할 수 있다 하더라도 차량용 반도체 부품의 수급 부족 현상이 발생, 포스트 팬데믹 특수를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
올해 반도체 수급이 다소 풀리면서 자동차 생산량을 늘리려 부단히 노력하고 있지만 이번엔 수출 선박을 구할 수 없어 발을 구르고 있다.
팬데믹 기간 자동차 운반 선사들이 노후 운반선을 2020년에만 22척을 폐선 처리하면서 선박 공급이 줄어든 반면에 올해 들어 중국 자동차 수출은 전년 대비 54%나 급증하면서 선박 운임이 2019년 대비 3배 이상 급등했기 때문이다.
코로나19와 글로벌 반도체 부품 공급 부족, 원부자재 가격 급상승, 우크라이나 전쟁 이슈 등으로 우리나라 자동차 수출은 직접적 위기를 맞고 있다. 여기에 협력 업체는 생존을 위협받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
지금처럼 중국의 전기차 수출이 지속해서 늘고, 점차 완성차 운반선 수요까지 중국이 잠식해 나가면 장기적으로 국내 자동차 운송 선사의 수출 경쟁력을 위협하는 수준에 이르지나 않을까 하는 노파심이 생긴다. 최근 중국이 완성차 운반선 30여척을 새로 발주했다는 뉴스가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 이유다.
◇달인에 의존하는 자동차 선박하역 체계
선박 안으로 차량을 싣는 일은 운전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할 수 있다지만 운전자 한 명이 하루 9시간, 시간당 10대 남짓한 차량을 주차선도 그어져 있지 않은 선박 안에서 운전하고 사이드미러도 접은 채 후진해서 옆 차와의 간격 20㎝, 앞뒤 간격 30㎝를 단박에 맞게 해야 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그러나 이렇듯 자동차 선박 하역작업은 수십 년째 사람이 직접 운전해서 배에 싣고 내리는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이러한 방식은 다른 나라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오히려 동일 면적 내에서 차량을 빠르고 더 조밀하게 선적하는 기술은 우리나라를 따라올 국가가 없다. 그러나 문제는 어느 곳에 가는 어떤 차량을 선박 어디에다 실어야 하는지 하는 선적계획 또한 전적으로 달인에 의한 수작업으로 이루어진다는 데 있다. 선적계획이 수립된 결과가 엑셀 시트 형태로 출력되어 그 뒤에 복잡한 계산 과정이 있는 것 아니냐고 오해하는 때도 많은데 정작 엑셀 프로그램은 공간을 구분하는 색을 칠하는 도구로밖에 활용되지 않고 있다. 물론 선적계획 수립 과정에 고려해야 할 요소가 많고 수시로 선적계획이 변동되는 등 최적의 선적계획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쉬운 일도 아닐 뿐만 아니라 여러 번 시도했지만 번번이 실패도 거듭하고 있다. 그러나 그럴수록 제대로 된 사물인터넷(IoT) 기술 개발에 열중해야 하는 것 아닌가.
◇자율차 상용화…선박하역은?
미래차 기술개발과 관련해 구글, 제너럴모터스(GM) 등 글로벌 자동차 제조사들은 완전 자율주행차 개발 완료를 2023년이라 발표했고 윤석열 대통령이 국정과제로 제시한 우리나라의 완전 자율주행차 상용화 목표 시점도 2027년이지만 로보택시 유료영업은 이미 지난해 말 세계 곳곳에서 시작됐다.
이제는 도로는 물론 건물 내부에 자율주행차를 주차할 목적으로 자율주행기술도 어느 정도 완성된 것으로 파악된다. 이렇듯 상용화된 자율주행차의 수출입 시점이 눈앞까지 다가왔는데 선박하역은 과연 언제까지 인력에만 의존해야 할 것인가. 자율주행차는 정작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 차량 아닌가?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항만과 선박이라는 특수한 환경 아래에서 자율주행차의 선적을 돕기 위한 '수출입 자율주행차량 자동하역지원시스템' 기술이 해양수산부의 지원으로 교통연구원 컨소시엄에 의해 2021년 세계 최초로 국내에서 개발됐다.
◇자율차 선박하역 연구, 세계 최초 추진
자율주행차 기술은 앞으로 다양한 물류 활동에 활용되어 화물을 필요한 곳까지 옮길 수 있는 수단으로도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기대하는 바가 크다.
그러나 자율주행차 수출입을 위해 반드시 진입해야 할 선박 내 차량의 주행환경은 안타깝게도 육상 주차장과 사뭇 다르다. 기존 도로 주행 기술이나 주차빌딩 내 주차 기술은 선박 내 자율주행차를 주행하게 하거나 적재하는 것과는 다르다. 선박 데크(갑판)에는 일반 주차장과 달리 주차 공간과 통로를 구분하는 선이 그어져 있지 않고, 적재하는 차량의 종류에 맞추어 데크 높이가 조정되면 데크 및 램프(층간 이동통로) 크기나 위치가 수시로 변화하며, 선박이 강철로 만들어져 있어 롱텀에벌루션(LTE) 통신과 위성항법장치(GPS) 전파의 송수신 자체도 불가능하다.
이렇듯 자율주행차 개발자들은 상상도 하지 못하는 가혹한 환경이지만 수출입을 위해서는 반드시 극복해야만 하는 환경에서 자율주행차를 주행시키는 첨단기술을 우리나라가 세계 최초로 개발한다는 것은 의미가 크다. 해당 연구에는 앞에서 설명한 선적계획을 자동으로 실시간 수립하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자동차 운송 분야에서는 국내 기업인 현대글로비스가 최근 5년 새 선박 수를 급격히 늘려 95척이 넘는 선박을 보유, 일본의 NYK에 이어 글로벌 2위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글로벌 완성차 업체의 중국 생산 완성차 유럽 운송권도 따내고, 독일에 전용 자동차터미널을 확보하는 등 성장세도 뚜렷하다. 이처럼 글로벌 자동차 제조기업과 자동차 운송기업을 모두 보유한 몇 안 되는 나라 가운데 하나인 우리나라가 IoT 기술 경쟁력 날개까지 갖추고 자율주행차를 만드는 자동차 제조사 및 물류기업들이 IoT 기술 투자, 시장 확보에 지금보다 더 높은 관심을 지속해서 기울일 수 있다면 미래 자율주행차 시대의 글로벌 자동차 운송시장을 주도할 공산이 상당히 크다.
노홍승 한국교통연구원 물류연구본부 선임연구위원 rohhs@koti.re.kr
〈필자〉노홍승 박사는 한국해양대에서 해운경영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부산시 정책개발실에서 항만도시정책을 수립했다. 영국 웨일스 카디프대에서 물류산업정책학을 전공, 두 번째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정부출연연구기관인 한국교통연구원의 물류연구본부에서 물류정책기술본부장을 지낸 뒤 현재 선임연구위원으로 있다. 각종 국가 물류정책 수립뿐만 아니라 실질적 물류기술 연구개발(R&D) 연구책임을 맡아 개발한 물류 기술의 특허를 출원하고 실용화한 경험도 다수 있다. 최근 국토교통부 R&D '인터모달 자동화물 운송시스템 기술개발' 연구단장직을 맡아 기술개발에 성공했고, 해양수산부 R&D '수출입 자율주행차량 자동하역지원시스템 기술개발' 연구책임을 맡는 등 최근에는 물류 수단 간 화물운송을 효율적으로 연계하는 인터모달 운송 분야의 신기술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