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시론] 민주당의 어제와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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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규백 더불어민주당 의원

'정치는 심산유곡에 핀 한 떨기의 순결한 백합이 아니라 흙탕물 속에 피어나는 연꽃입니다.'

현실정치 설명에 이보다 적확한 표현이 있을까. 학문적 진리나 종교적 신앙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 무리 가운데에서 삶을 다뤄야 하기 때문에 정치 및 정치인은 영광과 함께 오욕을 동시에 겪을 수밖에 없다. 민주당 역시 그랬다.

오늘날 더불어민주당의 원형인 민주당(民主黨)은 1955년 33인의 창당발기인과 함께 창당했다. 이른바 민주당계 정당의 시작을 알린 창당발기인 수가 일제 치하에서 분연히 우리 민족의 독립을 외친 민족대표 수와 똑같다는 것은 퍽 상징적이다. 이러한 민주당 창당의 배경에는 사사오입 개헌이 있었다. 당시 민주당 창당 과정에는 자유당에서 진보당까지 정치적 배경을 달리하는 사람들이 함께했다. 권력에 취해서 독재 체제로 치닫던 이승만 정권을 심판하려는 국민의 목소리가 이들을 하나로 뭉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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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창당된 민주당은 4·19혁명 직후 치른 국회의원 선거에서 압도적 승리를 거두며 역사의 전면에 등장했다. 58석을 뽑은 참의원 선거에서는 31석으로 53.44%, 233석을 뽑은 민의원 선거에서는 175석으로 75.10%의 의석수를 각각 확보한 것이다. 5·16군사정변으로 성세가 오래가지는 못했지만 민주당은 의원내각제를 채택한 제2공화국에서 최초로 집권 여당이 됐다.

민주당 역사에는 수많은 영광의 순간이 있었다. 1988년에 치른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평화민주당은 70석을 확보하며 제1야당이 됐고, 1997년 제15대 대통령 선거에서 새정치국민회의는 헌정사상 처음으로 평화적인 정권교체를 이룩했다. 2002년 새천년민주당 노무현 대통령,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의 열린우리당 압승(152석, 전체 의석의 50.83%) 등이 그것이다.

더불어민주당 출범 이후로는 역대 최고의 성세를 누리기도 하였다.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세간의 예상을 뒤엎고 123석, 전체 의석의 41.0%를 확보하며 원내 1당이 됐고, 2017년 제19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2위 후보와 압도적 표 차를 기록하며 민주정권을 재창출했다.

2018년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는 17개 광역자치단체 가운데 14개(82.35%) 단체장, 226개 기초자치단체 가운데 151개(66.81%) 단체장, 광역의회의원 824명 가운데 652석(79.13%), 기초의회의원 2926명 가운데 1639석(56.02%)을 확보하며 명실상부한 전국정당이 됐다. 서울에서는 시장은 물론 서울시의원 102석(총 110석), 기초자치단체장 24석(총 25석), 기초의회의원 250석(총 424석)을 확보하는 대승을 거뒀다. 당시 필자는 더불어민주당 서울시당위원장으로서 선거를 이끌었기 때문에 더욱 인상적인 기억으로 남아 있다. 2020년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더불어시민당과 함께 180석을 확보하며 20대 총선, 19대 대선, 7회 지선, 21대 총선까지 네 차례 승리의 기록을 이어 갔다.

민주당의 역사는 한국 근대사와 궤를 함께하는 영욕의 역사이다. 실패와 좌절의 시간 역시 많았던 것이 사실이다. 필자에게 가장 가슴 아픈 기억으로 남은 순간은 새천년민주당과 열린우리당 분당이었다. 당원으로서, 당료로서 청춘을 오롯이 바친 당이 둘로 나누어지는 고통은 살을 찢는 그것에 비견할 만했다. 보수는 부패로 망하고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는 오랜 격언을 되새기지 않더라도 어제까지 동지이던 사람들이 서로를 공격하고 비난하는 모습을 국민과 당원들이 이해할 수 있을 리 없었다. 남은 새천년민주당은 분당의 혼란을 극복하지 못했고, 떨어져 나간 열린우리당은 급격한 개혁노선 속에 국민의 공감대를 얻지 못했다. 결국 2006년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은 광역자치단체장 3석, 광역의회의원 역시 약 18%를 얻는 데 그쳤다. 이는 2007년 대선과 2008년 총선의 패배로 이어지며 민주당계 정당의 오랜 침체로 이어졌다.

2015년 말께부터 진행된 새정치민주연합 분당 사태 역시 괴로운 기억이었다. 결과적으로는 당시 분당이 더불어민주당의 전국 정당화에 기여한 셈이었지만 이념적·사상적 갈등보다는 세력의 유불리를 좇아 이루어진 분당은 당에 많은 생채기를 남겼다. 국민의당 사태 이후 많은 당원이 탈당과 복당 과정을 거쳐야 했고, 민주당을 중심으로 한 지역사회가 둘로 쪼개져 불필요한 갈등을 겪어야 했다.

돌아보면 민주당의 성세도, 침체도 갑작스럽게 온 것은 아니었다. 짧게는 수년, 길게는 수십 년의 시간 동안 쌓인 축적이 바탕으로 작용한 것이었다. 그 축적의 내용은 바로 민의(民意)와 단합이었다. 민주당은 민의라는 내용을 단합이라는 수단으로 실천할 때 승리할 수 있었다. 당장 최근의 경험만 놓고 보더라도 그 점은 명확하다. 적폐청산(제19대 대선), 한반도 평화와 지방분권(제7회 지선), 코로나 위기 극복(제21대 총선) 등 우리 당은 시대정신을 선도할 때 승리했고, 거듭된 분열과 이합집산으로 축적의 시간을 가지지 못한 때 또는 국민의 목소리와 우리가 바라보는 지향점이 달랐을 때 선택받지 못했다.

네 번의 승리, 5년의 여당을 뒤로한 채 야당으로서 제21대 국회 후반기를 보내고 있는 당이 혼란스럽다. 다름을 이유로 지지자와 정치인, 제 세력 사이에 서로를 비난하는 모습이 우려스럽다. 사람들이 필자에게 더불어민주당 사무총장으로 재직하던 시절 기억에 가장 남는 일이 무엇이냐고 물을 때마다 필자는 당사 매입을 꼽는다. 당의 인적·물적 자산이 분산되어 안정을 유지하지 못하고서야 일관되고 안정된 당력을 유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반대도 있었지만 당력 집중의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는 신념으로 설득하고 추진했다.

더불어민주당에는 아직 기회가 있다. 원내 1당으로 입법 정책을 가다듬고 정부를 감시·견제할 힘이 있다. 다만 그 전제는 당내 정치 지형이나 정치적 유불리를 가지고 이러쿵저러쿵할 것이 아니라 단결된 힘을 바탕으로 시대정신을 좇아야 한다는 점이다. 흙탕물 속 연꽃으로 다시 아름답게 피어날 더불어민주당의 도전을 지켜봐 주실 것을 부탁 드린다.

안규백 더불어민주당 의원 intoan429@gmail.com

〈필자〉안규백 의원은 전북 고창 출신으로, 성균관대에서 철학을 전공했다. 18~21대 국회의원을 이어 오고 있다. 외교안보 분야 전문가로 현재 국방 위원회로 활동하고 있다. 민주당 전신인 평화민주당 공채 1기로 정치에 입문해 원내수석부대표, 전략홍보본부장, 서울시당위원장, 사무총장 등을 지냈다. 15대 대선에서 김대중 대통령 후보 선거대책본부 조직2국장, 19대 대선에서 문재인 대통령 후보 중앙선거대책위원회 총무본부장을 지냈다. 국회 활동을 하면서 해외 의회와의 친선 교류에도 힘썼다. 20대 국회에선 한·베네수엘라 국회의원 친선협회장, 한·중 국회의원 외교협의회 부회장, 한·노르웨이 국회의원 친선협회 이사로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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