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일주일 새 폐쇄된 세 번째 미국 은행 ‘시그니처은행’에서 하루 10조원이 넘는 뱅크런(대량 인출 사태)가 벌어졌다. 실리콘밸리은행(SVB) 발 공포 심리가 번진 것으로 보인다.
13일(현지시간) CNBC 방송에 따르면, 시그니처은행 이사인 바니 프랭크 전 하원의원은 지난 10일 하루에만 100억 달러(약 13조원) 이상의 예금이 빠져나간 사실을 전했다.
프랭크 이사는 “이날 늦게 예금 인출 사태를 당하기 전까지 우리는 어떠한 문제의 조짐도 없었다”며 시그니처은행에 발생한 뱅크런에 대해 “순전히 SVB 사태에서 전염된 것”이라고 말했다.
시그니처은행은 지난해 연말 기준 40개 지점을 운영하며 총차산 1103억 6000만 달러(약 144조원), 총예금 885억 9000만달러(약 116조원)를 보유 중이었다.
지난 2001년 뉴욕주에서 설립된 이 은행은 부동산, 법조계와 주로 거래하며 대형 시중은행과 달리 '기업 친화적'으로 운영됐다.
뉴욕에서 부동산 개발업에 종사하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집안과도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사업 자금을 제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2021년 1월 트럼프 지지자들의 연방의회 폭동 사태 이후 관계를 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서부로도 진출한 시그니처은행은 2018년 가상화폐 사업에 적극적으로 발을 담그면서 사세를 급속 확장했다. 가상화폐를 이용하는 고객들을 위해 365일 하루 24시간 결제 시스템을 구축했고, 디지털 자산과 관련해 165억달러(약 21조5천억원)의 예금을 유치한 것으로 집계됐다.
다만 발 빠른 가상화폐 진출이 되레 시그니처은행의 발목을 잡았다. 지난 1년간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공격적으로 금리를 인상한 여파로 실리콘밸리의 테크 업계와 가상화폐 등 '거품이 많이 낀' 자산에 많이 노출된 중소 규모 은행들이 잇따라 무너진 것이 악재가 된 것이다.
가상화폐 전문 은행 실버게이트는 지난 9일 자체 청산을 발표한 데 이어 지난 10일 미 금융당국의 개입으로 SVB가 전격 파산 절차에 돌입했다. 대형 은행이 잇따라 무너지면서 공포 심리가 확산해 이번 시그니처은행의 뱅크런을 촉발한 것으로 보인다.
프랭크 이사는 SVB로 인한 여파를 진정시키기 위해 추가 자본 조달과 잠재적 인수자를 물색하는 등 ‘모든 수단’을 동원했고, 주말 들어 상황이 안정되는 것처럼 보였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12일 뉴욕주 금융서비스부가 시그니처은행을 폐쇄하고 연방예금보험공사(FDIC)를 파산관재인으로 임명하면서 이 은행은 SVB의 전철을 그대로 밟게 됐다.
프랭크 이사는 당국의 압류 조치에 반발하며 “규제당국이 매우 강력한 '반(反) 가상화폐' 메시지를 전달하기를 원했던 것이다. 펀더멘털을 고려할 때 지급불능 가능성이 없었지만 우리는 시범 케이스가 됐다”고 말했다.
이에 에이드리엔 해리스 뉴욕주 금융서비스국장은 "금요일(10일)에 목격한 자금 유출의 규모 때문에 주말에 조치를 취해야 했다"고 설명했다.
전자신문인터넷 서희원 기자 (shw@etnews.com)